관성은 어떻게 조직을 죽이는가
조직을 멈추게 만드는 건 변화의 부재가 아니라, 변화할 수 없게 만든 ‘관성’이다.
많은 조직이 혁신을 말하고, 유연함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변화는 더디고, 결정은 어렵고, 실행은 반복적으로 지연된다.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시스템이 낡았기 때문도, 리더가 무능해서도 아니다.
그 중심엔 ‘조직 관성(Organizational Inertia)’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조직의 관성은 물리학에서의 관성과 닮아 있다. 한 번 정해진 방향, 익숙한 방법, 안전한 선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힘이다. 이 힘은 매일의 업무와 작은 선택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작은 반복이 결국엔 큰 결정의 패턴을 만들고, 조직 전체의 방향을 좌우하게 된다.
2.1 반복되는 성공 경험
놀랍게도 기존의 성공 경험은 변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과거에 잘 작동했던 방식은 쉽게 바꾸기 어렵다. 특히 리더십이 오래 유지되고, 특정 방식으로 성과를 낸 경험이 반복된 조직일수록 이 경향은 강해진다.
“예전에도 이렇게 했고 잘됐잖아.”
“지금 이 방식이 문제는 없는데 굳이?”
이러한 문장들은 조직이 변화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자기 확신의 언어다.
2.2 사람 중심의 암묵지
많은 스타트업과 조직이 문서를 만들지 않고, 사람에 의존한 업무 방식을 유지한다. 이는 업무가 특정 개인에게 귀속되고, 그 사람의 판단과 기억, 경험 자체에 의존하게 만든다.
이런 문화는 새로운 방식의 도입이나 구조의 변경을 어렵게 만든다. 조직의 흐름이 ‘사람’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2.3 리더십의 회피적 의사결정
조직의 변화는 리스크를 동반한다. 이 때문에 리더가 갈등을 피하고 싶은 순간, 변화는 더 늦어진다. 중간관리자들이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려 하거나, 구성원의 반발을 우려해 결정이 지연되기도 한다.
“이걸 바꾸자고 하면 말이 많아질 거야.”
“지금도 힘든데 괜히 혼란만 줄 수 있어.”
이런 생각이 반복될수록 조직의 구조와 시스템은 낡은 방식 위에 방치된다.
관성은 단순히 새로운 시도를 못하게 막는 힘이 아니다. 관성은 일의 품질을 낮추고, 협업을 방해하며, 결국에는 조직의 생산성을 갉아먹는다.
3.1 문서화되지 않은 프로세스
정책과 프로세스가 명문화되지 않고, 말과 암묵적 이해로 이뤄질 때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만 피드백과 회고가 기록되지 않을 때
신규 구성원이 들어와도 배울 수 있는 정보 구조가 없을 때
이런 환경은 변화의 타이밍마다 혼란과 저항을 키운다. 바꿔야 할 지점을 모호하게 만들고, 어떤 걸 바꿔야 하는지조차 모르게 만든다.
3.2 ‘우리가 늘 하던 방식’이라는 말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해왔어요”라는 말은 안전하고 익숙하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강력한 혁신의 방해자다. 이 말은 과거에 대한 충성이지 미래에 대한 전략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오히려 성실하고 착실한 팀원일수록 더 강하게 나타난다. 성실함이 변화보다 반복을 강화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3.3 의사결정이 부재한 검토와 논의 과잉
새로운 제안이 나왔을 때, 조직은 “충분한 논의”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회의와 보완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제안은 희석되고,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실행은 지연된다. 결국엔 “이건 너무 복잡해서 다음에 다시 하자”는 말로 흐지부지된다.
많은 기업들이 처음엔 혁신을 외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방어적이 되고, 안정적인 선택만을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관성은 조직을 파멸로 이끄는 3단계를 거친다.
1단계. 실행의 지연과 회피
작은 문제를 보고도 대응하지 않는다. “조금 불편하지만 참을 만하다”는 인식 아래, 문제는 방치된다. 작은 이슈는 반복되고, 사람들이 우회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되며, 시스템 외적 해법이 일상화된다.
지연된 문제는 일하는 방식의 시스템을 무능력하게 만든다. 협업의 룰은 흐려지고, 각자 방식대로 움직이며, 결정은 리더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조직은 더 많은 회의를 하지만, 더 적은 결정을 내린다.
결국 문제 해결 능력은 약화되고, 구성원은 회의감과 피로를 느낀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조직은 반응하지 못하고, 리더는 변화를 외치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직은 무기력해지고, 핵심 인재는 이탈하며, 경쟁력은 사라진다.
아무리 제도를 바꾸어도, 문화가 관성을 용인하면 조직은 변하지 않는다. 관성은 문화의 이름으로 작동한다.
업무 방식의 유연성은 있지만,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해요”라는 말이 남아있다면 인식 관성이다.
누구도 새 아이디어를 내지 않고, 침묵이 반복된다면 심리 관성이다.
할 일은 많지만 개선은 없고, 불만은 많지만 실행은 없다면 실행 관성이다.
관성은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리셋하고 교체하고 회고하는 문화를 통해 조절해야 한다. 관성이 적절히 통제된 조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검토’보다 ‘실험’으로 이어진다
문제 제기에 ‘왜?’보다 ‘어떻게?’로 반응한다
실패에 대한 벌보다 반복에 대한 경계가 강하다
리더가 자신도 바뀔 수 있음을 증명한다
리더는 관성의 생산자가 아닌, 설계자여야 한다. 조직 내 관성은 대부분 ‘리더가 만들고 방치한 결과’다. 리더는 말로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론 기존 방식을 유지한다. 이럴 때 조직은 변화하지 않는다.
리더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반복하는 결정은 무엇인가?
반복되는 이슈는 왜 개선되지 않았는가?
구성원이 가장 많이 느끼는 불필요한 일은 무엇인가?
최근 6개월간 ‘새롭게 시도된 변화’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당신은 관성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관성은 저절로 생기고,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 의도적인 구조 설계, 지속적인 문화 점검, 리더의 태도 전환이 함께 일어나야 조직은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조직은 사람이 만든 구조다.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관성은 결국 조직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관성은 강력하다. 그렇기에 변화는 일회성 프로젝트로 대응할 수 없다. 변화는 조직이 매일 반복하는 질문, 실행, 피드백의 구조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조직은 관성을 돌파하고 다시 성장할 수 있다.
조직의 적은 변화의 부재가 아니라, 관성의 지속이다.
관성은 조직을 편하게 만들지만, 그 편안함이 회사를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