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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itecture of Focus

선택과 집중은 조직의 리스크를 높이는 일이 될 수 있다.

by Nickneim
집중은 선택이 아니라, 제외에서 시작된다.


1.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빠뜨리는 것

우리는 조직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전략 회의에서도, 기획서 피드백에서도, 때로는 개인의 업무 방향을 정할 때도 이 말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 표현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다.

‘선택’은 근사한 말이지만, 실제 조직에서의 선택은 항상 불완전한 정보와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이뤄진다.

선택이라는 것은 동시에 무언가를 버린다는 뜻이며, 그것은 곧 리스크를 동반한다. 무엇을 선택했는지는 명확하지만, 무엇을 포기했는지, 그로 인해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지는 종종 생략된다.

조직은 본질적으로 리스크 회피를 지향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명확한 기준 없이 “선택하라”는 요구는 자칫 조직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더구나 선택의 책임이 리더에게만 돌아오는 구조에서는 누구도 쉽게 집중하지 못한다. 그러면 결국 ‘선택과 집중’은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으로 남는다.




2. 우리는 선택보다 제외를 설계해야 한다

집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명확히 정하는 ‘제외’의 구조에서 시작된다.

제외는 다르다. 제외는 지금 우리에게 불필요한 일을 ‘의식적으로’ 빼는 행위다.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정하고, 하지 않도록 구조를 설계하고, 하지 않기로 정한 이유를 구성원과 공유하는 것. 그것이 제외다.

제외는 선택보다 단단하다. 왜냐하면 제외는 합의 없이도 가능하며, 실행 단위에서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은 동의를 요구하지만, 제외는 기준만 명확하면 된다. 그리고 이 기준이 곧 조직의 리듬을 만든다.




3. 집중하지 못하는 조직의 공통적인 징후들

다음은 스타트업에서 자주 발견되는 ‘집중하지 못하는 조직’의 특징이다:

모든 것이 우선순위인 로드맵: 목표도 많고, 중요도도 비슷하며, “이번 분기에 다 해보자”는 말이 당연해진다.

책임 없는 요청: 누구나 요청은 하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명확하지 않다.

‘이것도 해보자’ 회의: 기획 회의가 선택의 장이 아니라 아이디어 추가의 장이 된다.

계속 바뀌는 우선순위: 매주 정리되는 업무 리스트는 항상 다시 정렬된다.

피로와 몰입 저하: 구성원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런 조직은 점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하는 일’도 많아지지만, ‘되는 일’은 줄어든다.




4. 제외의 언어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라

제외는 선언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언어로 먼저 자리 잡아야 한다.

“우리는 이 시기에 이 영역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기능은 다음 분기로 유보하고, 이번에는 리텐션 중심으로 설계합니다.”

“이번 기획에는 마케팅 요소는 제외합니다. 제품 완성도가 먼저입니다.”

이런 문장이 조직 안에서 오가는 순간, 구성원들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인지하게 된다. 제외의 언어는 우선순위보다 더 강력한 신호다. 그것은 '선택'보다 '제외'가 실행을 더 빠르게 만든다는 증거다.




5. 제외는 리더의 결단이 아니라 구조의 설계다

많은 조직이 ‘집중’이라는 것을 리더의 결단력에서 찾는다.

하지만 진짜 집중은 조직 전체의 리듬과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결과다.

예를 들어,

OKR이나 주요 전략 문서에서 제외 항목을 명시한다.

회의 안건은 3개를 넘기지 않도록 한다.

월간 목표 리뷰에서는 ‘유지할 것’보다 ‘중단할 것’을 먼저 점검한다.

우선순위 문서에는 ‘이번 분기 제외 리스트’를 첨부한다.

이런 구조적 장치들은 리더의 결단이 아니라 조직의 습관으로 작동한다. 그렇게 되면 집중은 누군가의 의지가 아니라 조직의 기본값(default)이 된다.




6. 집중은 결국 리듬이다

조직이 집중하려면 단기 몰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리듬 즉 시스템이 필요하다. 매주 반복되는 우선순위 점검, 업무 단위별 정리, 실행 후 회고. 이런 것들이 반복될 때 조직은 점점 선택이 아니라 제외를 기본값으로 갖게 된다.

리더는 이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리더가 모든 결정을 할 필요는 없지만,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명확히 하고 반복적으로 알려줄 책임은 있다. 그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7. 선택은 전략이고, 제외는 구조다

선택은 때때로 전략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제외는 일상의 구조로 자리 잡아야 한다. 우리가 하지 않을 일을 명확히 정할 수 있을 때, 진짜 중요한 일에 힘을 쏟을 수 있다.

선택은 긴 토론이 필요할 수 있지만, 제외는 기준과 반복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조직이 성장하기 위해선 먼저 ‘제외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선택은 위대한 결정을 필요로 하지만, 제외는 실행 가능한 구조를 필요로 한다.
집중은 결국, 하지 않을 것을 먼저 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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