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소개합니다, 내 수업의 정체성.

한 글자로 소개하는 나

by 조이아

나는 중학교 국어교사다.

첫시간이면 국어수업 안내를 해왔다. '국어 공부는 왜 하는가,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공책이 필요하고, 매 시간 수업일기를 쓰게 하겠다 등등 ' 그리고나면 자기소개 시간으로 이어진다. 주로 1학년 담당이기 때문에 꽤 유용하다. 어떤 내용으로 자기 소개를 할 것인지 내용을 마련하고, 종이 한 장을 여섯 칸으로 나눠 그림 및 짧은 글을 쓰는 형식을 주었다. 그리고 내가 본보기를 보여왔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얘기하고, 이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피터 레이놀즈의 <<점>>을 읽어주며 표현하고, 끝은 내 이름으로 삼행시.

다음 시간은 학생들이 나처럼 발표한다. 듣는 친구들은 표를 그려서 그 안에 친구에 대해 메모한다. 나도 같이 내 공책에 적는다. 그러면 아이들 수대로 첫인상을 기록할 수 있다. 모든 아이가 돌아가며 말하고, 끝나고 나서는 소감을 또 일곱 줄 정도 쓴다. (몇 개의 시작하는 문구를 제시하면 아이들은 한 편의 소감문을 완성하게 된다.) 몇 명의 소감을 듣다보면 서로 이름도 익힐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거의 세 시간이 소요된다. 서로를 탐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사의 특징, 수업 방식을 익히고, 말하기와 경청을 연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올해에는 좀 변화를 주려고 한다. 김소연 시인의 <<한글자 사전>>에서 착안하여, 한 글자 단어로 나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나를 대표할 수 있는 단어나, 내 마음에 드는 단어로. 다만 하나의 단어로는 시간도 짧고 알게 되는 정보가 부족하니, 손바닥을 그려서 손가락마다 한 음절의 단어를 적으려 한다. (유치원생도 그릴 수 있는 손 그림은, 젠탱글을 하기에도 좋고, 나의 정체성이면서 내 손 안에 의지가 담겨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어서 딱이다.)

예를 들면 '셋, 공, 겁, 손, 눈' 이렇게 쓰고 그 손바닥 그림을 보이며 자기를 소개하는 거다. '고양이 세 마리와 삽니다. 이름은 땡땡, 찬, 곰순이에요. '공'으로 하는 운동은 다 좋아합니다. '겁'이 많은 편인데 좋게 말하면 조심성이 많은 편입니다.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재미있습니다. 바느질이나 그리기를 특히 좋아해요. '눈'은 제 눈을 높이고 싶어서 썼습니다. 좋은 작품을 많이 보면서 안목을 높이고 만들기나 그리기의 수준도 높이고 싶고요. 또 좋은 눈으로 다정한 사람들도 알아보고 친구 삼고 싶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를 표현할 수 있다.


그러면 내가 먼저 다섯 단어로 나를 소개해 보겠다. 엄청 이상적으로 쓴 것 같지만, 국어교사로서 내가 원하는 모습과 수업에 대한 안내 효과를 위해 그렇게 썼다.

1. '책' : 책읽기를 좋아한다. (국어교사로 너무 뻔해서 하지 말까 하다가 그래도 수업 안내 효과도 있을테니까 넣었다. ) 책을 사는 것을 좋아하는데 사고나면 예쁘게 책장에 전시만 하게 되어 도서관에서도 종종 빌려 읽는다. 도서관에 '이 책 좀 사주세요' 희망도서를 신청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읽고 있을 때에는 예약해놓는다. 예약도서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으면 신이 나서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 오는데, 나를 들썩이게 하는 그 재미가 참 좋다.

책을 통해 다른 책을 소개받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별로 책을 읽기도 한다. 팟캐스트나 인스타그램 또는 친구에게 추천받은 책들도 읽는다. 그러다보면 어떤 분야의 책이나 어떤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는 색깔이 드러나면서 나만의 책 지도가 그려지는데, 여러분도 자신만의 책 내비게이터가 되어 책의 세계를 탐험하기 바란다.

나는 여러분께 한 명의 책 안내자가 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 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질 거다. 얼마 전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을 읽었는데, 작품을 설명하면서 해부하기 보다는, 통째로 맛보게 하는 방식으로서 책을 읽어주는 것을 보고 마음이 울렁였다. 그래서 책의 일부를 읽어주는 것으로 추천을 해보면 어떨까 한다.(그러고 보니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도 그랬구나.) 국어교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2. '꿈' : 밤에 꾸는 꿈을 소중히 여겨, 몇 년 간 꿈일기를 써왔다. 통째로 1-2년을 안쓰기도 했지만, 꽤 오래된 습관이 되었다. 꿈은 내가 해결해야할 주요과제를 알려주는, 무의식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라는데 아무리 일기를 써도 못 알아차릴 때가 많지만 계속 해보고 있다. 고혜경 선생님의 꿈 분석에 관한 강연을 듣고부터 관심을 가졌고 그의 저서를 찾아읽었다. 최근에는 박서영의 <<내 무의식의 방>>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프로이트와 융을 융합하여 자기 꿈을 분석하고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켜 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꿈은 또 장래에 하고 싶은 일이라는 의미도 있다. 나는 아직도 꿈꾸며 산다. 언젠가는 책을 내고 싶다. 중학생 여러분과 함께하는 책. <<어쩌다 중학생 같은 걸 하고 있을까>>라는 소설 제목이 잊히지가 않는데, 대한민국의 중학생으로서 살기 어려울 때에 빈칸을 제공하는 책을 만들고 싶다. 예전에 '나를 살리는 글쓰기' 방과후반을 만든 경험이 있다. 졸업 전의 중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특별 수업을 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좋다. '나의 첫기억', '인생곡선 그리기'로 시작하여 좋아하는 음악도 소개하고, 사진으로 글을 써보았다. '미친* 글쓰기'라는 배설과 해소의 공간도 마련해주었고, 마지막에는 <127시간>이라는 영화를 소개하면서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쓰는 편지로 과정을 마무리했었다.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숨통이 트이게끔 끄적이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일.

3. '점' : 3월마다 학생들에게 읽어주는 그림책이 있다. 피터 레이놀즈의 그림책이다. 여기 나오는 선생님처럼,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인 셈이다. 글쓰기를 종종 할텐데, 그때마다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저기 나오는 주인공처럼 점만 찍어도 좋다. 뭐든지 흔적을 남긴다면, 언젠가는 자기 속마음도 드러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나는 글쓰기가 주는 치유의 힘을 믿는데, 언젠가는 여러분이 글을 통한 자기 해방감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꼭 나와의 수업에서 완결되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은 중학교 1학년이지만, 언젠가 시간이 흐른 뒤에 예전에 누가 글쓰기를 권했는데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런 순간이 오기를 꿈꿔 본다.


4. '정' : 정을 표현하며 살고 싶다. 세상에는 숨길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가난, 기침, 사랑'. 좋아하는 글귀 중에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이라는 표현이 있다. 장영희 교수님의 책에서 본 건데, 지금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사랑을 하면, 언제 어디서든 그 사랑이 남는다는 뜻 같아서 소중하게 품고 있다. 나는 그렇게 사랑을 표현할테니 너희들도 나에게 하얀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정을 표현해 달라. 나는 수업 시간에 들어올 때 나를 환영해주면 기분 좋게 수업을 시작할 수 있다. 예전에는 내가 교실에 들어설 때 박수를 쳐달라고 부탁했다. 3월에는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지만, 시간이 갈 수록 박수 소리가 사라지는 경향이 있어서 속상했다. 올해부터는 다른 것을 부탁할텐데, 이것은 청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수화에서 온 것이다. 그들은 '반짝반짝' 손을 흔들어 박수를 표현한다. 처음 본 것은 <미라클 벨리에>라는 영화에서였다. 농인 부모 밑에서 살던 여자아이가 노래를 부르는 영화다. 우리나라에는 같은 가족관계가 등장하는 이길보라 감독의 <반짝이는 박수소리>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 제목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그것을 부탁하고 싶다. 수업 시작을 반짝이는 박수소리로 환영해주기, 그렇게 해주면, 내가 반짝이는 사람이 된 듯한 착각도 할 수 있겠다. 복도에서 만나도 서로 그렇게 인사하면 어떨까?


5. '씨' : 나는 씨앗이 주는 희망을 품고 살고 싶다. 어떤 꽃이 될지, 어떤 열매가 맺을지 모르는 씨앗. 마치 죽어있는 상태 같아 보여도, 꾸준히 햇빛을 쐬여주고, 물을 주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무엇이 되고 말, 그것 말이다. 그런 희망이 너희들 안에, 또 내안에 있으리라 믿는다. 김소연 시인은 <<한글자 사전>>에 '씨'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쪼개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심고 물을 주어 키워가며 알아내는 것.' 우리가 함께할 일 년의 기간 동안 서로를 그렇게 알아 가자.


나와 함께 하는 국어수업이 그렇고 그런, 어쩌면 짜증나는 수업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가지고 수업을 해나가겠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인사로 소개와 수업 안내를 마무리할 것이다.

나를 너무 물렁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보거나 수업에 대한 기대감을 너무 갖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지만, 첫시간에 이렇게 나를 내보이면 나도 노력하게 되고 아이들 또한 노력해주리라 믿는다. (하지만 국어수업안내 프리젠테이션 자료는 꼼꼼하다. '볼펜으로 쓸 것, 색연필은 표를 그리거나 밑줄을 그을 때, 사인펜은 제목을 쓰고 마인드맵을 그릴 때 쓴다 등 공책 작성 요령이 꽤 자세한 편이다. 매 시간 수업일기를 5줄 이상 써야 하고, 함께 하는 수업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할 경우, 시인님들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시 암송 벌칙(ㅠㅠ시에 대해 정말 안 좋은 인상을 주는데, 시를 읽는 기회도 되니까요. 그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도 준다.. ...고 덧붙인다.)

교사들 사이에는 3월달에는 절대로 웃으면 안된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긴장을 풀지 않고 함부로 하지 못 하도록 엄하게 대하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모습이 오히려 힘들다. 재미있는 시도 읽어야 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서 수업이 이루어져야 아이들도 표현을 하는데 무표정을 유지한다고 억지로 웃음을 참는 것은 큰 고역이다.


1년 짜리 수업을 통해, 사람이 달라지지는 않으리라 본다. 하지만, 내가 교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가장 말랑말랑한 때의 아이들에게 내가 조금이나마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희망을 갖는다.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서 책을 사랑하는 평생독서가가 길러지기를 바란다. 또 글쓰기를 통해 자기 해방을 이루기를 바란다. 그 전에 의사소통을 잘 하여 주변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게 내 수업의 정체성이다.


아아, 어제는 2년만에 2, 3학년 중학생들을 만나고 왔는데 '현타 왔다'라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도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싶다. 중학생들과의 시간, 아름다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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