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과 함께하는 치유하는 글쓰기 수업
자유학기 주제선택 수업으로 <나를 살리는 글쓰기>반을 개설했다. 모집된 학생들 명단을 보고 의아했다. 몇 명 안 되는 학생들 가운데 이렇게 눈에 띄는 아이들이 오다니! 첫시간, 어떻게 하다가 이 반에 왔느냐는 물음에 다들 가위바위보에서 져 겨우 왔다고 한다. 만들기를 하는 기술, 과학과 경쟁할 수는 없었나 보다. 나의 주제는 '치유하는 글쓰기'였는데, 어떤 학생은 '붓글씨를 쓰느냐' 물었고, 꽤 많은 아이들이 '글씨 연습을 하러' 왔다고 밝혔다. 내 마음에 흡족한 친구가 몇 있어서 위안이 되었다.
나를 살리는 글쓰기반을 준비하면서 나는 신이 났다. 예전에 내가 만든 교재를 다시 제본하여 책으로 만들어 준비했고, 그때 당시 아이들이 썼던 종이 묶음을 죄다 펼쳐보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말고사가 끝난 후 고입을 앞둔 시기를 위한 특별수업이었다. 원래 수업하던 학년이 아니라서 낯선 아이들이었지만, 중3에다가 그들이 선택한 수업이었기에 학생들은 맘껏 자신들의 생각을 펼쳐냈다.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남학생의 글, 소소한 행복을 찾는 여학생의 글이 지금 보아도 진솔하게 느껴졌다. 다시 새로운 아이들과 만들어 가게 될 이 과정이 나는 기대되었다.
첫시간. 이 시간은 치유하는 글쓰기가 이루어질 것임을 밝히고, 개인적인 내용을 발표시키진 않을 거라 일렀다. 다만 글을 쓰기 위한 준비, 생각을 열게 할 질문들은 함께 나눌 거라 했다. 또 이 시간만큼은 친구를 놀리거나 헐뜯지 않기로 했다. 불리우고 싶은 자기 이름을 짓는 것에서부터 아이들은 서로를 가리키며 웃어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일주일에 한번 수업이 시작될 때마다 계속되었다. 다른 반에서 지내던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으니 이상한 흥분이 감돌았고, 서로 놀리는 것이 일인 그들은 '나를 살리는' 반이든 '치유의' 반이든 상관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늘 내가 기다리고 기대하던 글쓰기 수업을 무표정한 혹은 화가 난 얼굴로 시작하고 말았다. 겨우겨우 1분 쓰기를 하고, <글쓰기 다이어리> 과제를 함께 써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글쓰기를 이어 갔다. 두 시간 연속 수업이라 첫 시간은 무표정하게 시작해도, 재미있는 소재의 글로 워밍업을 하면서 내 표정은 어쩔 수 없이 무장해제되기 마련이다.
매 시간 발표하기에 안달이 난 친구의 발표를 시작으로 저마다의 글을 읽어보았고, 어떤 글들은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서 읽어나갔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학생 몇 명은 과연 내 의도대로 수업에 잘 따라와주고, 그들이 표현하는 것들도 내가 원하는 내용이었다. 자신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거나, 상황 혹은 이미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일들.
자기 안의 속 얘기를 꺼낼 줄 알아야, 자신을 긍정하고, 나와 다른 이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건데. 좀처럼 자기 얘기를 표현하지 못 하는 친구들도 있다. 주어지는 과제마다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는 그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할 테다. 또 다른 아이 안에는 상처와 비밀이 있음이 분명할텐데, 자기는 너무 행복하고 인생을 사는 내내 그랬다고 표현했다. 고작 열네 해라도, 다른 아이들이 겪지 않았을 일들을 겪었을 아이가 일단은 긍정적인 표현을 한다는 것에는 안심이지만, 저 안에 감추고 있을 어두움이 두렵기도 했다.
글쓰기 교재를 처음 만들던 예전에는, 아이가 겉으로 표현하는 게 다인 줄 알았다. 슬프다면 슬픈 거고, 기쁘다면 기쁜 거라고. 하지만 올해 글쓰기반에서 만난 아이들의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글로 쓰이지 않은 불안함과 결핍도 보였다. 이렇게 즐거운 인생으로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불안정한 삶이 들여다 보였다. 아니, 이 글을 쓰면서야 느껴진다. 나를 살리는 글쓰기. 지금 당장은 그들에게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 자기가 쓴 것을 돌아보면서, 표현한 것들 속에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란다. 혹은 내가 부여한 질문들의 의미에 대해 좀더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이 질문들을 통해 자기를 더욱 이해하고,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
오늘까지 2주 연속 수요일이 휴일이다. 아직도 방학을 하지 않은 우리 학교는, 수요일 수업이 두 번 남았다. 아무쪼록 두 번의 글쓰기 수업이, 그들에게 의미 있기를 바란다. 내게 주어진 네 시간 동안, 나는 자기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수업과 유서 쓰기 활동을 남겨두고 있다.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내면과 만나고 싶다. 이들과의 수업이 내 인생에도 큰 의미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