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행평가 시간
말없이 글을 써나가는 시간에는 마법이 흐른다. 마법 같은 시간이라고 하면 너무 상투적이지만, 무언가에 몰두하는 학생들을 바라보기란 매우 흐뭇한 일이다. 공기 자체가 달라진 기분이다. 나도 펜을 들고 종이에 뭔가를 쓰게 되었으니까.
쓰기 수행평가 시간. 물론 손톱의 거스러미를 뜯는 학생도 있고, 화장실을 오가는 학생도 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 학교는 1교시와 2교시 사이의 쉬는 시간을 과감히 없앴다. 덕분에 나는 블록수업을 진행하고, 학생들은 수시로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다. 늘 재치 있는 S는 요즘 들어 두 시간 연이은 수업에서는 화장실에는 두 번 다녀오고, 물 뜨러 한 번 다녀온다. 일단 방금 전에도 저 아이가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마법 같은 시간을 느낄 수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S가 오자마자, 곧장 자기 자리로 가질 않고 저 멀리 다른 친구를 향해 다녀오는 걸 나무라면서부터, 마법은 사라지고 술렁이는 교실이 된다.
쓰기 시간을 주기 전에 충분히 설명을 했는데도, 학생들은 주저하고, 질문도 많다. 물론 이 설명은 지난주부터 했다. 미리 수행평가가 있음을 안내하고, 채점기준도 알려주고, 글감을 정하고 개요를 짜는 것까지 되어 있어야 했다. 오늘의 두 시간엔 글쓰기와 제목 쓰기, 고쳐쓰기가 이루어진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컴퓨터실에서 키보드를 타다다다 누르면서 쓰기의 희열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파일로 받아서 인쇄하고, 자기의 글과 친구들의 글을 더불어 읽다 보면, 재미도 있고 좋은 글에 대한 안목도 조금은 생길 텐데. 이번에는 종이에 손으로 써나간다. 나 같은 악필에게는 내 생각처럼 빨리 써지지도 않고, 내가 쓴 글들을 봐야 하는 것에서부터 너무 지치는 일. 그렇지만 내 생각으로 공책 한쪽을 채워나가는 건, 분명 뿌듯하기도 하다. 무슨 내용이든, 맞춤법이 얼마나 엉망이든, 내 속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 않은가. 힘들면서도 기쁜 일을 하고 있는 학생들의 질문에 답해주고, 반복 설명하고, 북돋아 준다.
유독 아무것도 쓰지 않는 학생, 손톱 거스러미를 가만 두지 못 하는 학생에게 집중하기로 한다. 아니, 거스러미 그런 건 이미 없다. 우리 H에 대해 말하자면, 작년 가을에 전학을 왔다. 오자마자 "이 학교 짱이 누구예요?"를 물으며(그것도 교사한테) 호기롭던 아이다. 큰 사고는 없었고 점심시간에 급식판을 한 번 엎었던가 그랬다. 물론, 자기 의지로. 연말 즈음부터 건강이 안 좋아져서 한동안 입원을 했다. 병원 가기 직전에 얼굴이 너무 부어서 걱정을 했는데, 퇴원 후에 몇 주만에 얼굴을 보니 두 눈이 쑥 들어가고 얼굴색도 안 좋아 걱정이 되었다. 코로나 기간에는 어떻게 지냈나 궁금했는데,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썩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손을 가만 두지 못 하는 건, 작년에도 있었던, 이미 몸에 밴 버릇이다. 그런데 요새는 한 시간에 한 번이 아닌 것 같다. 손톱 주변의 살을 어떻게 하는 건지, 자꾸만 피를 낸다. 그것도 피가 맺히는 정도가 아니라, 또르르 흐를 정도로. 그래 수업 시간에 꼭 한 번씩은 보건실에 다녀오며 밴드를 붙이고, 냉찜질 용도의 약병을 들고 와 상처 부위에 대고 있는다. 수행평가 시간에도 예외는 없었다. 보건실에 다녀와 자기 자리에 앉아서도 계속 약병을 만지작 거리고, 글쓰기에는 영 관심이 없다.
점수가 큰데 뭐라도 쓰게 하려고, 나는 앞에서 이것저것을 물었다. 자기 경험으로 공감하는 글쓰기를 하면 되었다.
"요새 가장 많이 하는 게 뭐야? 집에서는 뭐해?"
"딱히 없는데요."
"게임은 뭐 하는데?"
"게임 안 하는데요."
게임 얘기라도 하려니 했다. 작년 가정방문 때 담임선생님이랑 내가 학부모님과 얘기할 때에도 등만 보이며 게임만 하던 녀석이. 글감부터 못 찾는 아이에게 이런저런 걸 써보자 권유했다가 다 퇴짜를 맞고(이게 퇴짜를 맞을 일인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데에 서툴 수도 있고, 숨기고 싶을 수도 있어서 '글쓰기 수행평가' 자체에 대해 쓰자고, 내가 설명한 거, 아니 내가 말한 거라도 생각해서 써보자 했다.
"기억 안 나는데요."
칠판에는 쓰기 조건들이 쓰여 있었다.
"칠판 보고 저거라도 써 봐."
"네."
대답을 하길래 할 줄 알았다.
다른 아이들은 한쪽씩 자기 이야기를 써나갔다. 내가 예로 들었던 '코로나 시대의 학교 생활'에 대해 쓰는 아이가 셋, 자신의 신체에 대해 글을 쓴 친구도 있었고, 친척네 갔던 경험, 축구했던 일 등. 교실을 돌면서 글에 대한 코멘트를 한다. '잘하고 있어, 좋아' 등의 북돋아 주는 말을 하고 다시 H 자리로 돌아와 보니, 이 아이, 아까는 새끼손가락이었는데 이번에는 가운데 손가락에서 피가 주르륵 흐른다. 감염 위험 때문에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보건실 다녀오라고 했는데도 이번에는 안 가겠단다. 헐. 이 고집을 어쩌나.
지난 시간, 수업에 집중하지 않아 시를 선물했는데 그걸 외우러 오지 않았다. 오늘 수업 태도도 영 집중하지 않아서 '시' 어디 있느냐 물었다. 전혀 기억을 못 한다. 코팅되어 있는 시를 책상 위에 있던 책더미에서 오히려 내가 찾았다.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와, 나를 우러러보는 건가. 이거라도 베껴 쓰라고 했다. 글쓰기의 소재가 시가 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아이들 글을 보고 있노라니, 금방
"다 했어요."
한다. 두 행을 적다가 선으로 죽죽 그어 놓고.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얘가 열다섯 살이 맞나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말이다. 저걸 혼을 내, 말아. 복도로 부를까. 글 쓰는 이 분위기를 망쳐야 하나. 고민하는 내 눈빛을 읽었나 보다. 나와의 아이 컨택트를 거친 후, 말없이 다시 쓰기 시작한다.
오늘의 수행평가는 자신의 경험으로 수필을 쓰되, 반어나 역설, 풍자의 표현을 넣는 것이었다. H는 내가 준 '시'를 고대로 쓰다가 뒷부분에서 이렇게 고쳐 썼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안 아름다워졌습니다."
반어를 이해한 걸까. 나는 H가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내 안에는 모순이 가득하다. 수업 시간에 활동하지 않는 학생을 혼내야 하나, 다독여야 하나. 혼을 낸다면 학생의 행동은 달라질 것인가? 겉으로 보이는 행동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저 아이의 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고, 심리적인 지원이 필요한 아이임은 잘 알겠다. 나는 다독이고 싶은데, 다독이면 학생이 안 움직인다.
내가 이래저래 다독이는 동안, 다만 아이의 마음만은 움직이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