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행사와 독서동아리와 나의 선택
교내 독서행사 '시반짝 낭송회'를 만족스럽게 마쳤다. 소이캔들과 김용택 시인의 감성치유 라이팅북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라는 책만으로도 이미 성공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도서관에서, 세네 명씩 앉은 테이블마다 유칼립투스 향의 소이캔들을 켜 두고, 양장본의 시집을 넘겨보며 시를 읽었다. 에코가 되는 마이크를 들고 시 낭송회에 참여한 이유와 내가 고른 시를 낭송하고, 왜 이 시가 마음에 드는지를 돌아가며 말하였다. 네 쪽짜리 시를 너무도 어울리는 톤으로 읽어 내려간 친구도 있었다. 낭송을 모두 마친 후에는, 마련된 DIY 텀블러에 마음에 드는 시 구절을 예쁘고 단정하게 써서 나만의 텀블러를 완성하였다. 우리 중학생들은 차분하고도 진지하게 시를 읽어 내려갔고, 시집과 텀블러를 든 아이들은 '시반짝'이라는 제목처럼 눈빛을 반짝이며 돌아갔다.
함께 참여한 선생님들로부터 낭송회에 관한 긍정적인 평가를 들었다. 관리자분들도 그 분위기에 관해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렇게 오간 대화 끝에 낭송회의 성공은, 참여하고 싶은 아이들이 왔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의 자발적 동기는 얼마나 중요한가. 이 자리에 온 아이들 모두가, 정말 자발적으로 희망해서 온 것은 아니었다. 처음 나누어준 갱지 가정통신문에 신청서를 낸 친구는 딱 한 명이었다. 모두 내가 "모모야, 시 낭송회 같이 하자."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줘야 했다. 바로 꽃이 되어주지도 않는다. "그게 뭔데요?", "가서 뭐해요?", "시 써요?" 등등 의심도 많았다. 나는 일일이 '시 쓰지 않아도 된다, 미리 시 준비해오지 않아도 된다, 텀블러도 만든다' 등의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다. 하얀 종이에 가정통신문을 새로 인쇄해서 나눠주었다. 이미 나누어준 가정통신문을 아이들이 다시 찾아올 리 없다.
아이들에게 내가 요구한 것은 단 하나, 참여하고 싶은 이유 쓰기였다. 가정통신문의 행사 참가신청서에는 으레 연락처 적는 란이 있지만, 자신의 참여 동기를 쓰는 주관식 칸을 준 것이다. 아이들은 "여기 뭐라고 써야 돼요?" 묻곤 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낭송회에 온 아이들은, 실제 낭송회에서 여기 온 이유를 다시 말할 때 아무도 '선생님이 해보라고 해서요'라 대답하지 않았다. 제각각 "시를 읽어보고 싶어서요", "시를 좋아해서요" 등 평소와는 다른 말을 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진심(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같은 게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의 '시반짝 낭송회'는 향기롭게 빛날 수 있었다.
국어교사가 달랑 둘인 학교에서, 다른 한 분이 학교의 큰일을 맡고 계신 현재, 나는 무조건 독서동아리 담당이다. 2년의 휴직 전에, 마음에 맞는 아이들과 자율적인 독서동아리 활동을 했다. 딱 다섯 명을 데리고. 그때의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웠던가. 함께 서점에 가고, 영화를 보고, 다양한 행사에 참여했다. 늘 내 뒤를 따라다니며 웃음을 날리던 한 친구 덕분에 모든 시간에는 웃음소리로 채워졌다. (힘들었던 점은 단 하나, 중2였던 모두가 사진 찍기를 싫어해서, 기록을 남겨야 했던 나는 그게 좀 괴로웠다. 얼굴을 가리거나 뒤로 돌아버리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는 게, 보는 게.) 그 좋았던 기억이 이번에 새로 만난 열두 명의 독서동아리 아이들과의 화합을 어렵게 했다.
자유학기제를 실시하는 1학년과는 별개의 동아리를 만들어야 했기에, 독서동아리는 2, 3학년으로 꾸렸다. 나는 1학년 전반과 2학년 한 반의 수업만 들어간다. 첫 동아리 시간, 두 반뿐인 2학년에서 온 네 명은 한눈에 보아도 독서동아리와 어울렸고, 쓰기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일면식도 없던 3학년 아이들을 만나고 나는 어지러웠다. 복직교사라 3학년 아이들의 성향을 모르기도 했지만, 첫 만남에서부터 말은 많고, 목소리는 크고,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밀려서 이 동아리에 왔고, 혹은 선생님의 옷차림 때문에 동아리에 들었고, 혹은 선생님이랑 친목도모(?)를 하고 싶다며 동아리에 온 포부를 밝히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그저 웃었다. 그렇게 동아리 가입 이유를 돌아가며 말하고, 이 동아리에서 하고 싶은 일을 나누고 나서, 일 년의 계획을 알렸다. 3학년 여덟 명은 글쓰기를 하고 책을 낼 거라는 나의 말에 조금 놀라는 척하더니 이내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끼리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첫 시간이 흘렀다.
동아리 시간 외에 그들(3학년)의 시간은 매우 끈끈했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다 적지는 못하겠지만, 교내 선도위원회에서 그 3학년 아이들을 만났고, 그 아이들의 행동에 선생님들 모두가 크게 놀랐다는 것만 밝히겠다.
2학년은 몇 회에 걸친 동아리 시간 내내 입술이 빨갛고, 눈썹이 진한 선배들의 눈치를 보았다. 왜 이런 친구들이 독서동아리에 와서, 열심히 해보려는 2학년의 마음도 불편하게 하고 또 나의 의욕까지 꺾는 것일까 속상했다.
그러다가 동아리 시간마다 활용하려고 준비한 수지 모건스턴의 <글쓰기 다이어리>에서 나의 생각을 전환시킬 수 있는 문장을 찾았다.
살면서 선택을 하느라고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 것. -사무엘 존슨
동아리를 정하도록 할 때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모집한 것은 나였음을 잊고 있었다. '내년에는 꼭 면접을 봐서 뽑아야지'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했지, 누구나 독서동아리에 들 수 있다고 아무 조건 없이 아이들을 모집했던 것은 바로 나의 선택이었던 거다. 덕분에 다양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던 거고.
3학년 아이들이 동아리를 정한 것이 비록 가위바위보에서 졌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다른 동아리들 틈에서 '독서동아리'에 온 것은 그들의 선택인 것이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온 것이다. 노는 그들이 으쌰 으쌰 해서 함께 여기로 와준 것, 나는 이제부터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와서 아무리 계속 불만을 표하고, 하기 싫어하더라도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을 다시 알리면, 그들의 행동 또한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온 아이들을 환영하고 보듬는 것 또한 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나는 이제부터 그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는 동아리 시간을 만들기로 한다. 편견 없이 그들을 대하기로 한다.(아, 이렇게 내 마음을 결정까지 내려야 하는 상황이 우습지만, 내게는 필요했다.)
어제 동아리 시간에, 함께 저 글을 읽고, 저 인용문의 의미를 각자 써보게끔 했다. 나도 쓰고, 아이들도 쓰고. 그래 놓고는 어째 마음이 동하여 난 데 없는 고백을 했다. 그 무리들 중 한 명의 눈을 바라보며, "독서동아리를 여기 이 친구들과 함께 하게 된 것은 우리 서로의 선택이라고 생각해. 처음에는 글쓰기 싫어하는 친구들이 온 것에 나도 괜히 심술이 났는데, 이제부터는 다른 핑계 대지 말고 너희들을 더 사랑하겠어!"하고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동아리 수업은 너무도 분위기가 좋았다. 우리는 이미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참 지났지만, 2, 3학년이 서로의 이름을 익혔고(겨우 열두 명인데 선후배 간 이름은 모른다고 한다!), 이름 앞에 다정한 수식어를 넣어서 이름 외우기를 했다. 웃으면서! 어떤 2학년 아이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옆에 앉은 2학년 친구에게 '아, 너 이름이 뭐였지'라고 해서 그 친구를 시무룩하게 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함께 <글쓰기의 다이어리>에서 3일 치의 글을 써 나갔다. 하나는 저 위에서 말한 선택에 대한 짧은 생각, 하나는 언제나 "네!"하고 대답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 또 하나는 '잠자는 숲 속 미녀가 깨어났을 때는 거의 오십 살이었다'로 시작하는 이야기 짓기. 몇 명의 글을 들어보고, 또 그간 썼던 자유 주제의 글도 이름 없이 돌려 읽었다. 그다음 시간에는 둘씩 짝지어 독서골든벨의 문제를 만들어 보았다.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내 마음이 무척 흐뭇했음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알찬 시간을, 그것도 다정한 시간으로 채울 수 있었던 데에는 3학년 세 명의 결석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는 했다. 한 명은 결석, 한 명은 조퇴, 나머지 하나는 선도위원회의 결과로 특별교육을 이수하고 있었다. 열 명이서 둘러앉아 얼굴을 마주 보니 어찌나 단출하고도 따듯한 기운이 흐르던지. 뜬금없는 고백은 그렇게 해서 발화된 것이었던 것이었다.
오늘 점심시간에는 어제 조퇴한 아이와 삼 분 정도 단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어제 한 일과 나의 고백, 과제를 주면서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했더니 아이가 큰 눈을 굴리며 나를 열심히 쳐다보았다.
결석했던 한 명은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나머지 하나는 이번 주 내내 특별교육이란다. 이제 두 명하고 또 개인적인 대화를 가져야 한다. 둘 다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들이다. 이번 주에 볼 수 없는 친구와의 만남은 어떨 것인가. 그 아이가 우리 교무실에서 나 말고 다른 선생님에게 말하는 대화만 듣고도 내 가슴이 벌렁벌렁한 적이 있다. 우리 교무실엔 3학년 아이들이 자주 오지 않으므로, 그들의 실상을 몰랐다가 십 분 정도의 대화를 엿들으며 혼자 부글부글 화가 났던 것이다. "선생님, 근데요~"로 시작하는 말은 거의 열 번째 같은 내용의 주장이었고, 그가 말하는 근거라고 하는 것은 뿌리가 매우 약했으며 예의나 존중의 태도는 잘 포착할 수 없었다. 보다 못한 내가 "땡땡아, 우리 땡땡이가 독서동아리 반장이라 내가 듣다가 왔어. 이러쿵저러쿵 여차 저차 해서 그런 거잖아. 선생님이 얘기 듣고 있으니까 속이 상한다."로 달래 보려고 했지만, 내 말이 시작되자마자 "선생님, 근데요~"가 세네 번이나 쏟아져 나왔고, 사실 나는 그 아이에게 틈을 주지 않고 계속 내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 옆에 있던 다른 3학년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선생님, 근데요~"를 하는 바람에 나는 "암튼 선생님은 너희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게 너희에게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 하고는 물러났던 적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선도위원회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때의 그 모습이 조금은 덜어졌으나 속마음은 뭐 그대로였던 것이었다.
급마무리를 해야겠다. 어쨌거나 나와 함께 일년살이를 하게 될 우리 동아리의 아이들을 나는 예뻐하기로, 사랑하기로 한다. 자신의 선택이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리라 믿고, 아이들이 나에게, 또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믿고 나부터 다정한 사람으로 그들을 대해보겠다. 일 년이 흐른 후에 작년 독서동아리 아이들과의 정을 떠올리며 흐뭇할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재미있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왠지 밝혀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아니, 학생동아리 지도를 안 하겠다는 게 아니고, 그냥 글에 자꾸 저 말투가 나와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