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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Feb 15. 2024

연애하는 기분이란

나는 날아 날아올라, 사랑의 힘

아들만 둘인 우리 집에 막내딸이 생겼다. 생일이었던 어제, 친구랑 생일 축하 톡을 주고받다가 "남편이랑 맥주라도 한 잔 해"라는 문자에 "히히 나 셋째 딸"이라고 보냈더니 냉큼 전화가 걸려왔다. 저렇게 쓰고 보내려던 사진을 얼른 전송했다. 그리고 받은 전화, "야!" 하는 친구 목소리에 "내가 보낸 사진부터 봐봐" 대답했다. 곧 전화기 너머로 웃음이 터졌다.

막내딸 겨울이입니다.

새 식구는 3개월 된 고양이로 이달 들어 만난 친구 덕에 고민 끝에 데려왔다. 이담에 애들 크면 키우자던 남편에게 아이들 사춘기 때가 딱 좋대, 설득한 건 분명 나였는데 어느새 전세가 역전되어 내가 남편을 '워어워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양이를 예뻐하고 좋아하는 건 자신 있지만, 생활이 되어 그 아름다운 생명체를 키워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고양이들과 몇 년째 같이 사는 동생네 부부에게 질문하고 고양이 카페에 가입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내고 우리 식구끼리도 대화하고 이리저리 연구하다가 거실 배치를 바꾸고 모셔온 아기고양이는, 그저 사랑스러웠다. 아직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들은 모두 고양이와 사랑에 빠졌다.

고양이에게 눈을 뗄 줄 모르고 얼굴엔 미소가 동동 떠다닌다.


사랑에 빠졌던 옛일이 생각났다. 아침마다 눈이 번쩍 떠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나를 장악했더랬지. 콧노래가 절로 나고 온 우주가 나를 응원하는 듯한 설렘. 궁금한 대상이 생기고, 자꾸 그 사람이 생각나고, 더 나아가 그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단 말이지? 어쩌면 이런 일이. 몸에서 힘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바이브.

그때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지고 얼른 우리 고양이가 보고 싶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가. 졸졸 따라다니는 걸음마다 내 마음도 사뿐해진다. 온종일 고양이 생각뿐. 보고 있어도 밖에 있어도 고양이가 내 마음을 지킨다.

고양이를 데려오고 나와 남편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 고양이 장난감인 낚싯대를 인형 쥐가 달려있는 것으로 고르고 남편이 한 말, "우리 겨울이가 좋아하겠다. 고양이 모양이잖아." 이렇게 말이 헛나오질 않나. 나는 집 밖에서 이상한 경험을 했다. 외출을 하고 우리 집 쪽을 보는데, 부엌창에 겨울이 얼굴이 동동 떠있는 거다. 눈을 깜빡이고 다시 보고 다시 봐도 우리 고양이 얼굴. 저럴 리가 없는데, 부엌 베란다 문도 닫았고, 저 높이에 고양이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창문에 비친 빛그림자가 딱 고양이 얼굴로 보였다. 저녁 산책을 나갔을 때에는 천변 주변 온갖 곳에서 고양이를 발견했다. 바위틈에 웅크리고 있는 회색 고양이, 저어기 풀숲엔 늘씬한 하얀 고양이. 와, 저 모양은 두 귀가 쫑긋한 고양이 뒤통수 같네. 다 내가 만들어낸 상상의 이미지. 가만 생각해 보니 이 증상은 아이를 낳고 나서도 있었다. 아기 얼굴만 들여다보며 생활하다 보니, 산후조리원에서부터 내 눈에 보이는 동그란 것들은 다아 우리 아기 얼굴 같았다. 동그란 방석부터 시작해서 누군가의 둥근 무릎도 애기 얼굴로 보였다. 심지어는 텔레비전 속 강호동의 얼굴마저 그랬으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이상하긴 했다.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내가 사랑하는 이를 발견하는 것, 이게 바로 사랑의 힘이 아니겠나. '사랑'과 '힘'의 조화라니. 사랑은 안 하던 것들을 하게 만든다. 겨우내 달리기를 않던 남편이 엊그제는 달리기를 하고 돌아왔다. 나는 매일 생각만 하다가 실천은 못했던 요가를 했다. 햇살 샤워를 받으며 거실에서 요가하는 내 곁을 겨울이가 지켜봐 주었다. 밤에는 아들 둘과 거실 테이블에 앉아 숙제, 독서 등을 하며 자체 스터디 카페를 조성했다. 우리 셋을 저어기서 지켜보는 겨울이 덕분이다. 꾸벅꾸벅 졸다가도 우리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봐주는 고양이 덕분에 평화롭고 안정적인 시간을 꾸려나갈 수 있다.

요 조그만 아이 하나가 집을 바꾸었다. 거실 배치, 바닥에 자꾸 먼지를 내뿜는 소파도 내다 버렸고(아, 코로나 때 산 건데 아까워도 할 수 없다), 청소를 더 꼼꼼히 하게 만든다. 사람 자체도 달라졌다. 눈빛에 어린 하트, 홍홍 대는 콧바람, 입가에 번지는 미소, 평소보다 좀 더 높은 음의 목소리, 애기한테 건네는 말투. 한 목소리로 고양이를 찬양하고 화합하게 된 청소년기 두 아들과 우리 부부. 고양이를 향한 눈길에 뿜어져 나오는 애정의 기운이 집안을 채운다. (아직은 거실에만. 식구들이 다 거실에 나와 지낸다.) '행복하십니까?' 하는 질문에 냉큼 '네!' 할 수 있어졌다. '나만 없어 고양이'를 떠올리실 분들께 죄송하지만, 고양이는, 진정, 사랑입니다.


@제목은 김현철의 <연애>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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