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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Mar 09. 2024

아들 독립, 엄마 독립도 고양이가 있어서 가능합니다

고양이가 있어서 다행스러웠던, 3월의 첫 주

긴 3월 첫 주가 지났다. 월요일에 시작한 새 학기는 길고 고됐다. 보이차를 우리고 그루밍하는 고양이를 옆의자에 두고 글 쓰기, 한주의 고단함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나에게 집중하는 이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방금 전까지 한 일은 물론 많다. 아침 일찍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청소기를 돌리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열일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3월 새 학기에는 남편을 뺀 가족 모두가 새로운 일과에 적응해야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큰아들, 중학교에 입학한 둘째, 새로운 학생들을 만난 나. 학교도 학교려니와 우리 가족이 된 고양이 겨울이가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이번 주부터 시작된 일이어서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외로운 건 아닐까, 화장실을 얼른 치워주지 못해 어쩌지, 오늘 우리 동 이사 온댔는데 그 소리를 무서워하는 건 아닐까. 중학생 아들에게 집에 왔냐 문자를 보낸 게 3일. 퇴근하고 일정이 있을 때에도 집에 들렀다 나가곤 했다. 고양이가 없었으면 큰아들 기숙사에 보내놓고 나는 혼자 끌탕을 하며 울적해했을 거다. 기숙사 입소하던 날처럼.


준비물 목록대로 바리바리 짐을 챙겨놓고, 손목시계를 하나 해줘야겠다 싶었다. 핸드폰을 반납하고 지낼 테고 시험 시간에도 도움이 되라고 말이다. 입소하는 날 아침에 아이 학원엘 데려다주고 연구실에 가있던 남편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백화점엘 다녀왔다며 필요하던 멀티충전기와 시계를 샀단다. 이게 웬일이지 싶었다. 아들 시계니까 잘 알아서 골랐겠지 싶었고. 학원 마친 아들을 데리고 집에 온 남편이 꺼낸 시계를 보고 나는, 아이 앞에서 내색은 안 했지만 아연했다. 그러고 보니 시계를 사겠다 했을 때 남편이, “알파에도 있더라.”했던 게 생각났다. 시계가? 문구점에? 군인들 입대할 때 쓰는 그런 시계가 있다는 건가?

‘무소음 수능 만점 시계’라는 멋진 이름과 함께 문구제품 로고가 있는 시계를 아들 손목에 채워주고, 점심을 먹이고 설거지를 하면서 부아가 치밀었다. 아니, 지금, 아들이, 생전 처음 집을 떠나, 기숙사를 간다는데, 좋은 선물을 해줘도 아쉬울 판에, 저런 시계를 사 와? 별생각이 다 들었다. 파리에서 두 아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랑스어 속을 헤매며 학교에 다닐 때, 그러니까 난생처음 선물 받은 시계도 저거보단 좋은 거였는데. 외할머니 마음으로, 아이들이 시간이라도 알고 학교생활했으면 해서, 아이들 장난감 코너에서 사는 시계로는 성이 안 차, 가느다란 아이 손목보다 큰 시계를 사주셨던 거다. 흠집이 많이 나고 째깍거리는 소리도 나는, 이제는 간혹 내가 쓰기도 하는 시계였다. 그런데 아빠라는 자가 고작(죄송하지만 속물적인 제 마음이 그랬습니다.) 저걸 사다주다니. 우리 학교 중학생들도 좋은 시계, 스마트워치도 차고 다니는데, 집 떠나는 고등학생한테.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화살을 날렸다. 어떻게 저런 걸 사줄 수가 있어, 직진으로 꽂히진 못하고 문장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눈물부터 나왔다.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를 떠나보내는 마음에 서운함과 속상함이 휘몰아쳤다. 자기는 백화점에 상품권을 바꾸러 갔다며, 저 시계는 충전기랑 아트박스에서 샀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문장을 발화하지 못해도 서운하다는 내 뜻을 알아들은 남편이 백화점에 가자고 했다. 됐다고 했다가 말았다가. 아들에게 시계를 사러 나간다 하고 남편이랑 둘이 집을 나섰다. 침대 위에서 핸드폰 보며 쉬고 있던 아들은 “시계요? 있잖아요. 안 사도 돼요. “하며, 엄마 울었어요? 왜 울어요?” 물었고, 나는 그냥 웃어 보이고 나왔다. 가는 내내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걱정과 불안, 떠나보내는 슬픔 탓이다.

성에 차는 시계를 냉큼 구입하고 백화점 방문 최단 시간을 기록하며 집으로 왔다. 오자마자 꺼내 보여주니 역시나 좋아하는 아들. 나중에 그런다. “아까 그 시계에 쓰여있는 거는 공책에 있던 거 아니에요?” 그니까 말이다, 네 아빠가 참 그렇다. 시간을 맞출 필요가 없고 여기를 누르면 불이 들어온다는 등 기능을 설명하고 탐색하는 사이좋은 부자를 보고 웃어주었다.

저녁을 먹고 기숙사로 향하는 길, 아까처럼 울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찮았다. 주의 사항이나 내 당부들을 얘기하기에 바빴다. 캐리어를 끌고, 가방을 들고 건물 앞에 서니 우리 같은 처지의 가족들이 보여 동지 의식을 느꼈다. 저마다 아들을 들여보내는 마음이 짠하겠지, 부모와 헤어져 단체생활을 시작하느라 떨리겠지. 씩씩하게 아이를 들여보내고 돌아와 우리 고양이 사진을 공유했다. 좀 있으려니 학교의 밤풍경 사진이 공유되었다.


고양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가족의 소식을 고양이 사진으로 전할 수 있다. 주고받는 안부가 뻔하지 않아 좋다. ‘잘 지내니’, ‘잘 지내요’보다 다채롭다. 그것도 귀여운 사진으로. 아무리 우리 서로 보고 싶다 해도 부부 사진을 보내기도, 아들 또한 자기 사진을 찍어보내긴 어려운 법인데. 고양이 사진을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면서 안부를 전할 수 있어서 참 좋다.

학교에서도 기숙사에서도 전화기를 반납해야 되어서 연락 주고받기가 쉽지 않다며 아이는 하루에 두 번. 아침 먹고 학교 가는 길이나(옆건물까지는 아주 짧은 길일 터) 야간 자습이 끝나고 이동하는 틈에 연락을 주었다. 아이가 이렇게 많은 메시지를 보낸 것도, 대답을 바로바로 잘한 것도 처음이었다. 집에서 지낼 때보다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다. 또 하나, 아아, 나는 이번 주에 아이에게 가장 많은 사랑 고백을 받았다. 일방적으로 나 혼자만 하던 고백이었는데, 이렇게 받을 수 있다니 감동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양이가 없었다면 아이의 메시지 한 줄마다 내 눈물도 한 줄기씩 흘렀을지 모른다. 새 학교 새 생활에 잘 적응해 준 아들에게 고맙다. 전에도 썼지만 아이들은 자라면서 독립을 준비하는데, 엄마인 나는 아이들로부터 독립하기가 쉽지 않다. 자꾸만 애들 곁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한뼘씩 자란다, 아니 자라면 안 되는 건데. 독립해야 하는데.


감사는 작은아들에게도 전해야겠다. 형 기숙사 생활과 내 학교 일, 고양이에게 정신이 팔려 챙겨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서 새 교복을 잘 입고, 체육복을 입고 가고, 꼬박꼬박 서명하고 제출할 가정통신문을 챙겨 오는 아들이 기특하다. 주말 오후마다 축구하러 나가서 엄마의 혼자 시간을 챙겨주는 것마저. 겨울이는 내 곁에서 잠들었다. 문구점 쇼핑을 좋아하는 남편은 출장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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