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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결정>이 가져다준 현재

미래를 눈앞으로 가져다줄 자기 결정

by 조이아

철학 교수님의 <자기 결정>이라는 책이 오독오독 북클럽 마지막 도서라니, 제목이 다했다 싶으면서도 얼마나 재미없을까 싶었다. 처음 책을 열었을 때에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했는데, 읽다 보니 이것은 글쓰기 장려 책인가? 신이 나서 밑줄을 그었고 '아 맞아, 나도 소설 쓰고 싶어.' 끄덕이며 읽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부터 내가 한 '자기 결정'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글쓰기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는데, 읽으면서도 또 읽고 나서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누구도 나에게 글을 쓰라고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일주일에 한 편 쓰기는 나와의 약속. 주말마다 글을 쓰기로 해놓고 지난주 책쓰기 연수 3일, 주말 1박 2일의 서울 나들이 탓에 슬그머니 넘어간 게 마음 쓰였던 차였다. 그렇다면 써야지, 오독일기도 제출할 겸.


'파리에서 글쓰기'가 파리로 떠나기 전 내 목표였으나 막상 그땐 걷고 보는데 바빠 글을 쓸 시간을 못 냈다. 하지만 그때의 결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이제와 생각한다. 파리에서 보낸 일 년은 내 바깥보다 안을 더 들여다보게 했고, 책 읽기와 드문드문 쓰기는 꾸준히 쓰는 일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때부터 시작한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은 언제나 나의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다.

2023년 2월에 받은 책쓰기 연수는 내 책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세워주었고, 그해에 글쓰기 모임 주수희도 시작했다. 브런치에 발행한 글을 초고로 첫 책을 만들었고 올해엔 두 권을 더 엮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기쁜 것은 책쓰기 연수팀에 합류한 일이었다. 진작 활동하고 있던 주 선생님(감사!) 덕분이었으니 주수희가, 글쓰기가 나를 이리로 이끈 것.

책쓰기 교육 연수팀이라고 한다면 이런 일을 한다. 방학마다 3일 간, 중고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책쓰기 교육 연수. 여덟 명의 강사들이 각자의 강의를 돌아가며 하는데 신기하게도 3일 간 내내 자리를 지킨다. 연수 준비도 함께 하고, 작가님도 섭외하며 연수 전에는 정성껏 편지도 써서 수강생들에게 보낸다. 내가 그 동료로 활동하게 되다니! 벅찬 마음과는 별개로 강의를 맡는 일은 부담스러웠다. 내가 맡기로 한 강의는 '독립서점에 내 책 들이기'였고 부제는 '치유와 연대의 책 쓰기'로 했다. 내가 어떤 가치를 전할 수 있을까,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고민하며 원고를 쓰던 중 <자기 결정>을 펼쳤는데,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거기 다 있었다. 1강의 '자신을 말로 표현하기'라는 소제목 아래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인식함은 인식된 것을 비로소 완성한다."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면, 그 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해 자기 치유 및 회복 탄력성을 이끌어낸다는 내용을 말할 때 저 문장이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2강에도 막스 프리쉬의 말을 인용하며 같은 맥락의 문장이 있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아닌지조차 알지 못한다."

글쓰기를 통해 자기 인식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내 책을 예로 들어가며 말할 때, 저 문장 하나가 명확한 지침을 주었다. 이런 게 동시성의 원리가 아닌가. 내내 생각하고 있던 것을 눈앞에서 발견하는 의외의 기쁨. 이 다홍색의 책이 그랬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책쓰기 연수 활동이야말로 자기 결정이 이끈 길이 아닌가 하고.


책쓰기 교육 연수의 피날레는 직접 쓴 글로 만들어진 책을 받는 출판기념회. 수강생들은 둘째 날 오후, 글 한 편을 완성해야 집에 갈 수 있는데, 저마다의 속도로 글을 완성해 퇴근 시간이 제각각이다. 그분들이 퇴근하고 나면 그때부터 연수팀은 바빠진다. 글을 수정하고, 편집해 원고와 표지를 인쇄소에 맡기는 것. 깜깜해진 밤에야 퇴근해 피곤했는데 다음 날 모든 피로가 사라졌다. 인쇄된 책을 받아 들고 작가마다 본인 글을 소개하고, 연수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은 수강하는 선생님들에게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마이크를 잡고 당신 이름과 글의 제목, 키워드가 쓰인 PPT 화면 앞에서 하시는 말씀으로 그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는데 이런 말씀도 덧붙이셨다.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셨는지 정성이 느껴지는 연수였어요.”

“강사 선생님들 얼굴이 내내 웃고 있어서 참 신기했어요.”

“이런 자리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말씀들에 마음이 벅찼다. 이 연수에 참여하게 되어 다시 한번 기뻤다.

연수가 끝나 뒷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는데, 3일 간 영화 속을 살다 온 느낌이랄까, 이 연수가 내 여름방학 최대 이벤트가 맞구나 싶으면서 아름다운 작품의 일부가 된 듯했다. 선생님들이 쓰신 글을 다시 읽으며 글이란 뭘까, 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구름 속을 떠다녔다. 강의에서 내 입으로 글쓰기가 치유와 연대로 이끈다고 했지만, 선생님들의 글은 정말 우리를 이어지게 했다. 글이 주는 기운을 다시금 알았고, 과연 글쓰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잇는구나 새겼다. 자기 결정이 이끈 길이 내게 이런 행복으로 돌아오다니.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이번 화는 ‘우리의 노후 계획 : 하와이 딜리버리’였다. 20년 후 오픈할(!) 칵테일 바의 음악을 두 분이 번갈아 선곡한 4년의 기록을 담은 책이 나온 것이다. 음악을 고르고 음악가를 소개해 트위터에 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데도 그걸 해낸 데에는, 그 일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선우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어느 날 갑자기 노래를 선곡하는 글을 써서 책을 내라, 한다면 엄청 부담되고 어려운 일일 테지만 4년의 꾸준함이 책 한 권이 되어 나왔다며. 나도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책쓰기 연수 강의를 해라, 한다면 벌벌 떨었겠지. 현재를 가져다준 과거의 나, 계속해 글쓰기를 한 내가 자랑스러워진다.

자기 결정은 꾸준함으로 이어지고, 그 반복이 행복한 미래를 가져다준다. 저 멀리 막연하게 있던 것을 내 앞에 끌어다 주는 힘센 요정이 바로 그 결정 안에 있다. 지금 나는 어떤 미래의 씨앗을 심고 있을까. 앞으로 내가 하는 결정은 나를 어떤 지점에 가져다 놓을 것인가. 기대와 희망이 동시에 고개를 든다. 아, 듀오링고를 하는 오늘이 미래의 나를 만들 터인데 이 방면에서는 부끄럽다. 미래에 파리에서 생활하며 글 쓸 나를 기대하고 싶다.


@ 피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자기 결정>, 은행나무

@ 김하나, 황선우, <하와이 딜리버리>, 아키노프

@ 제목 사진은 국제도서전 유유히 출판사 부스에서 구입한 임진아 작가님 그림



*아참, 하지만 자기 결정에도 주변 사람들의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 책쓰기 연수팀으로 이끌어준 주 선생님을 비롯해 한 팀이라는 감각을 눈빛에서부터 전해주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함께한 우리 연수팀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부족한 강사이지만 반짝이는 눈빛으로 들어주시고 질문해 주신 선생님들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3일 간 바쁘다고 집안일을 나 몰라라 했음에도 격려를 보내준 아들들과 남편에게도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자기 결정>을 끝까지 읽게 해 준 김민철 작가님, 오독일기가 없었더라면 끝까지 못 읽었을 거예요. (끝부분은 그리 신나지 않았어요…… ^^;) 민철 작가님도 책쓰기 교육에 오셨던 작가님이셨죠~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네요!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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