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기르는 법_ 작가와 고양이의 상관관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 ‘조선 민화전을’ 관람했다. 색감이 화려한 책가도에서부터 호작도, 금강산, 춘향전의 장면을 담은 그림까지 알찬 전시였다. 내 눈길을 끄는 건 ‘아이고, 저때도 귀여웠네.’ 하게 되는 고양이 그림들. 고양이는 언제 어디서나 귀엽다. 그래서 백승화 영화감독님은 조선 숙종 때의 고양이를 상상해 <성은이 냥극하옵니다>라는 소설을 쓴 거겠지. 고양이는 예나 지금이나 영감의 원천이다.
전주에서 열리는 책잔치 책쾌에서 고양이책만 취급하는 부스를 만났다. 어머나, 어쩜 이래. 작년 국제도서전에서 고양이책을 구입했던 ‘새벽감성1집’ 부스에서는 냥통령 투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공약을 꼼꼼히 읽고 한 표를 행사했음은 물론이다. 돌아와서 사고 싶던 독립출판물이 있어 스마트스토어를 이용했더니 에세이, 시, 소설 등의 장르 구분에 ‘고양이 책도’ 있었다. 이쯤 되면 출판계에는 고양이라는 장르가 있다고 봐야 한다. 고양이라는 장르는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하니까, 아니 기꺼이 구매하게 만드니까.
그렇다면 나도 고양이라는 장르를 써야 하지 않나? 우리 집에 고양이가 온 건, 다 친구 덕분이다. 나보다 3개월 먼저 고양이 집사가 된 친구 혜란이는 전화로도 만나서도, 고양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완벽한지 알려줬다. 뭘 해도 다 이뻐, 똥을 싸도 기특하고, 밥 잘 먹으면 흐뭇하고, 심지어 사춘기 애들도 웃게 해. 이런 이야기도 나를 설레게 했지만 나를 가장 강력하게 뒤흔든 말은 이런 거였다. 000 작가도 고양이 키워. *** 작가도 고양이 있는 거 알지? ### 작가님도 그러잖아. 작가지망생인 나는 ‘그렇다면 나도?’ 하고, 마음이 방방 뛰었더랬다. 가족 모두의 강렬한 환영 속에 우리 집에 오게 된 고양이 겨울이는 과연 귀여웠는데, 나는 고양이와 생활한 지 일 년이 넘어서야 알았다. 고양이는, 집사를 글 쓰는 사람으로 살게 한다는 걸. 작가들이 괜히 고양이를 키우는 게 아니었다.
우리 겨울이는 내 곁에 머물기가 취미다. 거실에서 책을 읽으면 저 앞에 앉아 자리를 지킨다. 자기 전 침대에서 책을 읽을 때에도 침대 밑에 누워 얼굴은 내 쪽을 향한다. 일요일 아침 줌으로 독서모임을 할 때면 주변을 배회하다가 책상 옆 피아노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잔다. 이렇게 글을 쓸 때에도 내 근처를 서성대다가 자리 잡고 누워 존다. 집중력이 미약해 일기를 쓰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벌떡 일어나 다른 걸 하곤 하는데, 내가 일어날 때마다 어딜 가나 무얼 하나 감시하는 겨울이의 눈초리가 신경 쓰인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 쓰게 하는 이가 다름 아닌 겨울이인 셈. 그렇다면 겨울이의 특기는 집사 글 쓰게 하기가 아닌가. 어느 누구도 나에게 글을 쓰라 강요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겨울이가 나를 쓰게 한다. 이 어려운 걸 고양이가 합니다, 여러분. 영물이 맞아요.
전주 책쾌에서 데려온 책 가운데에는 이후북스에서 나온 <고양이의 크기>가 있다. 서귤 작가님 특유의 귀여우면서도 날카로운(곡선으로 그려졌는데도 느껴지는 뾰족함) 그림이 담겼다. 어느 날 고양이가 거대 고양이로 변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게 전개되다가 영롱하게 마무리된다. 이런 아름다운 작품 창작의 근원도 분명 고양이일 터. 고양이는 작가를, 쓰는 작가로 살게 하면서 작품의 영감이 되기도 하는, 작가에게는 필수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새벽감성1집에는 <인간의 언어는 고귀하고 고양이는 기고만장하다>라는 인간과 고양이의 합작품이 있다. 아직 겨울이는 자판을 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직접 글을 쓸지도 모르지. 그런 날이 오기를 꿈꾸며 고양이라는 장르를 하나씩 써나가련다.
전주책쾌에서 데려온 다른 책은 <냥집사를 위한 탐묘생활기록집>이며, 국제도서전에서는 예소연 작가님의 사인을 받아 뛸 듯이 기뻤다. 책 제목은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고양이라는 장르는 분명 힘이 있다.
@언급한 책
백승화, <성은이 냥극하옵니다>, 안전가옥
서귤, <고양이의 크기>, 이후진프레스
김지선, <인간의 언어는 고귀하고 고양이는 기고만장하다>, 새벽감성
기획 상냥이, 그림 진고로호, <냥집사를 위한 탐묘생활기록집>, 이후진프레스
예소연,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허블
@언급한 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