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기간의 고요함, <교실 수면 탐구 생활>
시험시간이면 학생들은 자기가 지닌 모든 것에 관심이 생긴다. 내 손의 거스러미는 유난히 튀어나와 있고, 얼굴의 피지는 왜 이렇게 많이 만져지며, 두피에도 뭔가가 있어 자꾸 가려운 것 같다. 그것뿐인가. 내 볼펜은 왜 이렇게 생겼지, 책상에 필기구를 두는 공간은 원래 곡선이었나 별 걸 다 관찰하고 들여다본다.
마스크가 얼굴에 자국을 남기지 않는 각도로 누워서 자는 일은, 은근히 우아한 형상을 취하게 한다. 다들 어찌나 길쭉한 팔로 손에 힘을 쭉 빼고 늘어뜨렸는지. 창가 쪽은 모두 고개를 그쪽으로 돌려서 연속 세 사람의 포즈를 보다 보니 마치 군무를 보는 것 같다. 후드티를 입은 아이들의 뒷목선이 부드럽다. 맨 앞에 앉은 영수는 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눈을 감고 있는 건지, 그냥 누워서 쉬면 편할 텐데. 혹시 잘 때 코골이가 치명적일까. 시험 시간에 의외로 숙면을 취하는 학생들이 있다. 정말 곤한 숨소리를 내면서, 혹은 깨울까 말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정도의 소음을 내면서 말이다.
시험 시간 아이들은 모두 예술가다. 평소에 필기구를 손에 쥐는 일이 흔치 않았던 학생들도 이 시간만큼은 펜을 꼭 쥐고 무언가를 그린다. 칼이나 총을 그리는 남학생도 보았고, 추상적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선을 이용해 공간을 만드는 남학생도 있다. 여학생들은 대부분 얼굴을 그리는데, 샤프로 선을 여러 번 그어서 미소녀의 그림도 곧잘 그려낸다.
오늘 상민이는 나를 놀라게 했는데, 비어있는 시험지 한 면 전체에 '00가 보고 싶다'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썼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지런하게도 아니라 동심원이라고도 할 수 없는 여러 차원의 문장들이 종이에 가득했는데 온통 '00가 보고 싶다'였다. 저 00가 몇 반의 누굴까? 다른 학년인가? 처음엔 같은 이름의 남학생의 이름만 생각나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같은 반 친구를 사귀던 녀석인데, 안타깝게도 둘은 오래가지 못했고, 상대편 아이는 여전히 생기 없는 얼굴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어 속상하다.
그런가 하면 두식이는 오늘도 샤프를 탐구하고 있다. 분해하지 않아 본 필기구가 없을 것만 같이 수업시간에 다양한 것들을 분해하고 탐구하는 편인데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던 거다. 방금 전에 이 아이의 성적으로 받아주는 학교와 학과에 대해 담임 선생님이 학부모님과 통화하던 게 생각난다. 고등학교에 가면 새 마음으로 학과 공부에 탐구정신을 발휘할 수 있을까? 군 특성화 쪽으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아이보다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고등학교 어디 갈 거냐 물으면 딱, 저 한 군데만 얘기하던 아이인데.
<교실 수면 탐구 생활>은 '둘이 자다가 하나 깨도 모를'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정지은 선생님의 그림과 글이 담겼다. 책 표지에는 저 위에 묘사한 그 자세,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고 엎드린 아이 둘의 모습이 그려 있다. OMR카드나 가정통신문 등에 끄적거리던 낙서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책에는, 드세고 자기주장이 강하지만, 자는 모습은 한없이 순한 아이들의 면면이 관찰된다. 글을 읽고 그림을 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했다.
중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을 떼어놓고 보면 하나하나는 모두 순하고 착하다. 특히 시험시간 외따로 앉아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보드라운 질감의 빵빵한 필통을 사뿐히 베고 벽을 향해 돌린 얼굴도, 한쪽 슬리퍼가 벗겨진 것도 모르고 부동자세로 잠든 아이도, 평화롭다. 고개 숙이거나 엎드린 여자 아이들의 정수리는 가르마가 곱게 빗겨져 있어 마냥 아기 같다. 몰두하는 모습 또한 아름답다. 무엇을 그리는지, 다른 곳에는 전혀 눈을 돌리지 않은 채로 손을 놀려 형태를 만들어가는 동작에는 기품이 묻어 난다. 종료령이 울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크고 걸걸한 목소리로
"쌤~, 국어 어려워요?"
라든가,
"망했다."
등의 말을 내뱉을 테지만.
이 고요의 시간이 좋다.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얼마나 남았나를 헤아리며 아이들의 가만한 모습을 바라보는 일. 예외가 있다면 왠지 늘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 수학 시간이나, 점수에 애착이 많아 종료 5분 전까지도 컴퓨터용 사인펜을 들고 고민하는 아이가 있을 때다. 그럴 때면 일 초도 쉬지 않고 가버리는 시간에 나도 애가 탄다. 하지만 오늘 같은 역사 시간에는 이십 분 정도면 모두가 문제를 끝까지 풀고, 삼십 분 정도면 이 애 저 애 OMR 카드를 교체해주고도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 종료 시간을 기다릴 수 있다.
중학교 3학년 기말고사가 내일까지다. 내일이 지나면 이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시간을 어떻게 꾸려나갈까. 시험 문제를 좀 설명해주고 일단 초성 빙고로 어휘 공부를 해야겠다.(라는 모범적인 글을 남기고, 나는 또 다른 궁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