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 앞에서 무너진다.
‘폭격’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 2차 대전 말 반전(反戰) 영화이다. 그러고 보니 반전 영화인 줄도 모르고 건성으로 본 첫 영화는 ‘사격장의 아이들’이 아닐까 한다. 초등학교(국민학교) 5~6학년 단체 관람이었는데 아마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한 영화라서였는지 모른다.
가난한 생계를 돕기 위해 아이들은 학교도 거르고 더 어린 동생을 업은 채 위험한 사격장에서 탄피를 하나라도 더 주으려고 한다. 그 외에 사실 생각나는 것은 없다. 휴전선 마을 근처 60년대 후반쯤이었으니 육이오 전쟁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얼마나 위험한지 어린 나에게도 아슬아슬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본 영화는 월남전이 막 끝난 후, 역시 학생 관람으로 본 1976년 ‘디어 헌터’이다. 당시 학생 할인이라는 기분 좋은 관람권이 있을 때였다. 영화음악부터 친구들의 우정, 현장감 있는 베트남 전쟁,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날 헤어나지 못하게 했다.
그 후에도 많은 반전 영화와 드라마를 보았다. 금지된 장난, 플래툰, 소피의 선택, 그을린 선택, 인생은 즐거워, 지리산, 독일 창백한 어머니, 거북이도 난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 얼른 떠오르지 않는 영화들이 숫 하게 많다.
끔찍한 전쟁에 반전(反轉)되는 기타 음률과 ‘미셀’을 찾는 어린 폴레트의 마지막 장면은 ‘금지된 장난’의 압권이다. ‘소피의 선택’에서는 아우슈비츠에서 아들과 딸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끔찍한 모정, ‘독일, 창백한 어머니’에서는 어린 딸 앞에서 승리국 미군에게 몹쓸 짓을 당한 후에 “얘야, 괜찮다. 승자의 권리란다”. 아무렇지 않게 놀란 딸을 위로하는 강한 엄마.
그런가 하면 크루드족의 ‘거북이도 난다’에서 출연 아이들은 전문 배우가 아니라는 데도 아이들 연기는 감히 평가할 수가 없다. 실재 팔다리가 없는 아이, 아이답지 않은 아이, 지뢰를 팔고 무기를 사서 재여 놓고, 위성으로 돈을 벌고 그러면서 사랑에 빠진다. 정말 아이 같지 않은 아이들이다.
조그만 여자아이는 늘 어린 동생을 업고 다니는데 별로 애정이 없다. 엄청난 반전(反轉)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아이가 머플러를 휘날리며 절벽에서 자유롭게 난다. 그때의 감정을 어찌 말하랴.
이제 ‘폭격’이다.
이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그런대로 평화로운 코펜하겐에 영국의 오인 폭격으로 일어난 실화라 하여 그런지 그곳에 함께 있는 느낌을 준다. 휘파람을 불면서 계란을 뒤에 싣고 자전거를 타던 시골 소년이 결혼식으로 향하던 가족의 폭격 현장을 보게 된다. 그리고 소년은 실어증에 걸린다.
치료를 위해 이모 가족이 있는 코펜하겐으로 가 수녀원 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들 다운 전쟁 분위기를 겪는다. 여전히 말은 잃었다. 독일군은 게슈타포 본부를 지키기 위해 레지스탕스들을 건물 위에 배치해 인간방패를 만들고 영국 연합군은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려는 폭격을 계획한다.
바로 옆 건물 수녀원에는 어린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다. 수녀 테레사는 채찍으로 스스로 벌을 주며 전쟁이 일어났는데 정말 주님이 있냐고 묻는다.
마침내 영국의 오인 폭격으로 다소 평화롭던 수녀원 현장은 상상 이상의 아수라장이 된다. 재를 뒤집어쓴 괴기적인 아이, 물이 고이는 건물 바닥에 깔려 겨우겨우 테레사와 생사를 확인하던 아이, 소식을 듣고 정신을 놓고 다투어 달려오는 학부모 무리, 생사를 전하기 위해 뛰던 소년은 큰 소리로 말하기 위해 마침내 목소리가 열린다.
나도 엄마가 되어 동동대다, 울다 그대로 맥을 놓을 것처럼 몰입해 힘이 빠졌다. 저 어린것들. 이제 엄마, 아빠들은 어쩌라고. 생사가 갈린 아이들의 엄마. 아, 어쩌지?
지금 24시간 이태원 핼로윈 참사 현장 방송이 먹먹하게 한다. ‘폭격’이 절절한 까닭이다. 정신을 놓고 아이를 찾는 저 부모들. 두 아이 중에 하나만 돌아온 아이. 아, 어쩌나! 겨우 찾아 아이를 업고 뛰는 노년의 아빠.
벌써 30년 전 일이다.
가족이 늦은 피서로 속초에 간 적이 있다. 방학이 끝날 무렵이었으니 바닷물은 차가웠지만 아이들은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수십 분이 지났으려나. 딸아이가 새파래져서 동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때부터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주변이들까지 엄마가 되어 함께 발을 굴렀다. 구조대원들이 멀리까지 나가고, ‘넷이 왔다가 어떻게 셋이 돌아가나? 아가, 엄마 여기 있다, 엄마 여기 있어’. 계속 울부짖는데 걱정하지 말라고 이제 곧 돌아올 거라고 모르는 이들이 진심을 다해 격려했다. 그 덕분인지 아이는 무탈하게 돌아왔다.
모든 반전(反戰) 영화가 그렇지만 아이들이 대상인 영화는 마음을 다해 견딜 수 없게 한다. ‘폭격’에서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 전쟁이 떠오르는 것은 사랑스럽고 귀여워야 할 아이들이 있어서다.
테레사 수녀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주님도 가끔 한눈을 팔 때가 있다고.
그런데 인간의 시간과 다르게 1초가 100년이 될 수도 있고 100년이 1초가 될 수도 있다고.
그러니 주님, 이제 한눈은 팔지 말아 주세요. 저 아이들, 지켜주지 못한 내 탓이라 여기는 세상의 모든 부모는 어쩌라고요. 그러니 제발 한눈팔지 말아 주세요. 주님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