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달 Jan 24. 2022

멀티태스킹 불가자의 선택

우리들의 자원을 잘 활용하는 법 05

멀티태스킹 불가자가 만약 멀티태스킹을 해야 할 만큼 많은 업무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은 이 물음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해요. 


멀티태스킹. 나는 개인적으로 이 단어를 싫어합니다. 멀티태스킹 불가자거든요. 절대로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합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내 앞에 두 사람 이상이 있는 순간부터 마음이 어려워지는 성향입니다. 그래서 내가 대화에 집중해야 할 사람이 2명 이상이면 스피커는 오프, 리스너 모드로 빠르게 전환됩니다. 

누군가 나를 보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나와 단둘이 만난 적이 많은 경우일 겁니다. 누군가 나를 보고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3명 이상 7명 남짓이 함께 자리를 하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자리에서 만난 사람일 게 분명합니다. 단, 앞에 들어주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상태라 볼 수 있는, 온라인 강의라던가 인스타 라이브의 경우에는 입이 열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말을 엄청 잘할 거라고 기대하시면 안 되어요. 단 둘일 때, 말이 없다면 그건 이상한 상황일 게 분명하고요. 


이토록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나라는 사람의 어머니는 나와는 반대 성향이었습니다. 200여 명의 손님이 일순간 밀려드는 호프집 주방일을 혼자 다 해냈던 분입니다. 닭을 튀기는 동시에 골뱅이를 무치고 과일 안주는 만들어 내던 엄마는 실시간으로 주문이 잘못 나가는 것까지 체크해 가며 홀 업무까지 챙기면서 전화도 받았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가 40대 중반, 지금의 내 나이였습니다. 새벽에 가게 문을 닫고 과일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간 엄마는 아침식사 준비를 거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에게 한상 아침상을 차려내던 어머니, 장사를 하면서도 집안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살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보시기에 나는 세상에 내놓기 부끄러운 부족한 자식이었습니다. 한 가지 업무를 하면 다른 일을 못하는 멀티태스킹 불가자라는 지점에서 특히요. 


아, 그런 나에게 친정어머니와 세상은 '멀티태스킹' 능력이 모든 여성에게 선물처럼 주어졌다고 믿고 당연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시어머님과 전화를 하면서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고 요리를 하면서 동시에, 한 발로는 아기 보행기를 밀고 있는 여성처럼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는 여성상. 하지만 모든 여성이 이 능력을 훌륭하게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난 증명할 수 있어요. 예외적인 사람이 여기! 바로 손 번쩍 들어봅니다. 여러분은요? 


물론 내가 처음부터 멀티태스킹 불가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도 할 수 있다고 믿고 애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늘 실패를 맛보았지만요. 불을 낼 뻔하거나, 아이들이 아찔한 순간에 다칠 뻔하거나, 순식간에 집이 엉망이 되는 상황으로 모두에게 잔소리를 들었습니다. 끝없이 '못한다'는 소리를 듣던 어느 날에야, 내가 멀티태스킹이 안 된다는 사실과 마주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멀티태스커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멀티캐스킹이 거의 불가한 나 같은 사람은 어찌 살아야 할까요? 


아주 단순하게는, 안 쉬면 됩니다. 시간을 최대한 아껴 쓰며 발을 동동거리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는 해치울 수 있어요. 다만 잠이 부족하고 제대로 먹지 못하는 등 몸과 정신이 혹사될 뿐입니다. 급속한 번아웃이나 우울증이 동반되는 부작용이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꼴은 잡고 살지 모릅니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해치우면서 업력을 높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어떤 일이든 몸에 아주 익어 버리면 속도가 줄거든요. 그러면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안 쉬면 된다의 업그레이드버전일 뿐입니다. 여전히 몸과 마음이 빠른 속도로 지쳐 갑니다.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멀티태스킹을 잘 하려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일의 순서를 정확하게 알아서 그 일들 사이에 일들을 조직해 넣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정신을 탁탁탁 옮기며 각 순간에 몰입을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다양한 기계들을 이용하면서 효율을 최대치고 끌어올립니다. 아, 가끔 이런 완벽한 분들을 봅니다만.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 집에 아이들은 엄마가 일을 하고 있을 때, 소통하는 방식으로 몸을 쓰게 되었습니다. 두 뺨을 끌어당겨 자신들과 눈을 맞추거나 모니터 앞을 가로막고 내 가슴에 안겨 버리거나요. 이런 아이가 셋이나 되다 보니까, 나는 몰입된 상태에서 깨어나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다만 완전한 몰입의 희열이 사라졌기도 합니다만. 나는 엄마니까, 몰입의 즐거움을 내려놓을 만큼 성장한 것이지요. 흑흑. 


그러니까 아이 셋에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따로 도와주는 분이 없고, 출판사 업무, 집필, 신사업으로 잦은 회의와 미팅을 하면서 다른 출판사의 라이브 방송 현장에까지 쫓아가는 나를 보고는 문득 '멀티태스킹을 잘'을 떠올리실지 모르겠습니다. '멀티태스킹을 잘'에서 '잘'을 버림 하더라도 애초에 기본 '태스킹'조차도 버거워 못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절대 한 번에 여러 가지 업무를 볼 수 없는 나는, 그럼 회사 일을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이전 세대의 선배들은 나를 그렇게 타일렀습니다. 아이들이 다 자란 뒤에 다시 일을 시작하면 된다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좀 자랐다고 생각했을 때 찾아가니, 다시 아이들이 초등학교는 다 마쳐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다 자란 다음'이 되면 내가 아주 나이가 들겠구나 하는 확신을 했고 그렇게 해서 나의 복직은 아주 요원한 일이며, 나의 복직은 보장된 게 아님을 알게 된 어떤 날, 나는 그 조언을 더는 듣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몰입의 즐거움도 내려 놓아야 했는데, 이제는 사회로 복귀도 미루며 늙어가라니요. 


그렇다면 그 일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구멍을 인정해야 합니다. 크고 작을 실수가 있거나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아마도 내가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내 처지에, 어떤 다른 일을 할 엄두를 못 내는 게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스스로에게 높은 기준으로 '잘'하겠다는 마음보다는 '하겠다'는 마음을 먼저 세웁니다. 그러면 일을 할 수는 있게 됩니다. 부족한 부분은 협력자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멀티태스킹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협력자들이 필요로 합니다. 업무 현장에서는 파트너들의 도움을 받고 집에서는 모든 가족 구성원의 협력을 촉구합니다. 


정리하면 멀티태스킹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잘 하겠다는 높은 기준보다는 일단 '한다'에 포커스를 둡니다. 그리고 나보다 믿을 만한 협력자들과 손을 잡고 일을 해나갑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하는 일들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그 협력자들의 함께를 힘껏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니면 나의 구멍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그녀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일은 꼴을 갖춥니다. 그 협력자의 손을 많이 잡아야 하는데, 문제는 마흔 중반까지 아이를 키우다 현장에 나온 사람에게는 그런 협력자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들에 절망하지 말아야 해요. 적당히 어지럽혀진 집을 주말까지 버틸 수 있으면 좋아요. 발밑에서 비비탄 총알이 박히는 고통 정도는 참을 수 있어야 해요. 아이들 방문을 열어보지 않을 정도로 독립성을 인정해 주어야 해요. 식사를 챙겨 먹고 설거지를 조금 쌓아두는 시간도 견딜 수 있어야 해요.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챙기고 글을 쓰겠다고 자리에 앉으면 이미 새벽일 거예요. 아니면 다시 새로운 설거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거나 세탁기 앞에 빨래통이 꽉 차 있고 아이들이 양말이 없다거나 속옷이 없다고 외쳐댈지 몰라요. 누군가 우리 집에 와서 창턱에 먼지를 쓸며, '집 좀 치우고 살지.'라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적당히 한 귀로 흘리기를 바랍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오랫동안 '좋은'과 '잘' 그리고 '완벽'하게 살기 위해 분투한 시간을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몸의 어느 한 구석이 성한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 희생하는 삶, 헌신하며 자신의 몸이 우렁이 엄마가 되는 과정을 다시 살라고 하십니다. 멀티태스킹을 해가며. 


나는 단호히 말해 봅니다. 안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나의 몸과 마음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몰입의 순간을 여전히 너무도 사랑합니다. 그리고 누가 나에게 말하는 완벽이 아니라 내가 생각한 구멍이 숭숭 나 있는 양파망 정도의 느슨한 삶이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가볍고 행복하고 즐겁기 위해, 멀티태스킹은 불가한 게 아니라, 사양하겠습니다. 


아, 그러니까 보기와 다르게 나는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지 않고 적당한 구멍을 가진 사람으로서, 스스로 숨구멍을 내고 살고 있노라고요. 오해 마세요. 보이는 시간은 내 시간의 전부가 아니랍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작가의 이전글 최고의 선물로 돌아오게 될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