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7일
왜 서울에 사는 것일까
나는 저녁이 깊어지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이야기가 물오를수록 안절부절못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지금부터인데 내가 집에 가야 할 시간은 지금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비밀이라도 생긴 듯, 의자에 몸을 기대고 테이블 밑으로 손을 넣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어플로 막차 시간을 검색해 본다. 업데이트를 하는 어플을 보며, 제발 지하철 좀 더 생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핸드폰을 두드린다. ‘혜화역에서 가천대역까지’, 서울에서 성남까지 가는 지하철은 신데렐라가 무도회에서 도망친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끊긴다. 신데렐라도 성남에 살았다면 왕자와 춤도 못 추고 신발만 흘리고 온 덜렁이가 되었을 것이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데, 나는 천지개벽이 이루어져도 못 볼 운명인가 보다. 자정이 되기 한 시간 전, 11시 6분이면 서울에서 성남으로 가는 지하철이 막차인 걸 보여주는 어플이 원망스럽다. 분위기를 한참보다 지인들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막차 시간이야 나 먼저 일어날게.]
[그럼 다 같이 일어나자. 다음에 또 보자]
이런 젠장. 흥겨웠던 사람들은 내 한 마디에 자리를 급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역력하다. 오랜만에 본 얼굴들이라 열이 한참 올랐는데 찬 물을 끼얹은 꼴이었다. 짐을 챙기며 속상함에 서울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신데렐라처럼 막차시간이 되면 헐레벌떡 뛰어나가며 모임을 끝내는 사람이기보다 진득하니 남아서 여유롭게 집에 가는 사람이고 싶다. 서울에 살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이 사람들과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싶은 욕망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서울’이라는 공간에 일부분을 점유하고 싶은 욕망은 많은 이익을 가져다준다.
서울에서 일주일에 정기적인 모임이 두세 번 있는 나는 교통편에서 두세 시간 보내는 일은 일쑤이다. 책을 본다 할지라도 잦은 환승과 가중되는 피로에 책은 기억나지 않고 지치기만 한다. 철학 팟캐스트나 설교 팟캐스트를 들어도 너는 떠들어라 나는 멍하다는 식이다. 가끔 합정 쪽에 볼 일이 있어 가는 날이면 도착하는 순간 집만 떠오른다. 시간이란 시간은 다 쓰고 체력이란 체력은 바닥을 친다. 그렇기에 나는 서울에 살고 싶다. 길에서 버려지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 그 많은 것들이 아깝다. 서울에 살지 못하고 수도권에 사는 이유는 뻔하디 뻔한 돈 때문이겠고. 그럼 좋아 보일 것 없는 서울에 나는 왜 집착하는 것일까.
서울은 한국에 모든 것이 집중된 수도이기에 어느 지역에 살든 서울의 영향력을 벗어나기는 힘들다. 뮤지컬, 연극, 출판, 강연 등과 같은 문화자본뿐만 아니라, 행정, 기업, 스타트업, 출판, 저널 또한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문화로 밥벌이하는 사람은 서울 문화권을 벗어나기는 더욱 어렵다. 사람이 모여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맞지만, 지금은 문화가 사람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푸념은 나만의 생각이 아님은 분명하다. 충남 공주에서 서점을 하는 지인은 서점을 아무리 아름답게 꾸미고 좋은 책들로 큐레이팅을 해놓아도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지방 마을을 재생하겠다는 상상력이 가득 찬 몽상가 같은 그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지만 사람이 없는 마을에서 역동성을 찾기는 어려웠다.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가끔은 말이야. 강한 공권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도를 충청도 쪽으로 옮기는 거야.
그럼 여러 가지가 한 번에 해결되지 않을까]
2004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행정수도이전이 계획대로 이루어졌으면 지금 서울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급격한 속도로 진행되는 젠트리피케이션, 부자들의 건물 재테크, 인구가 없어서 사라지는 지방, 지방과 수도권의 문화격차 등, 일정 공간에 수용 불가능한 인구가 집중되면서 생기는 문제는 인구가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에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 이 복잡한 서울에서 국가의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 행정부와 밀접한 연관된 사업을 진행하는 회사, 그 회사가 책임지는 직원들의 가족까지 생각한다면 꽤 많은 인원이 지방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활동지가 서울임에도 미친 듯이 오르는 서울 땅값에 경기도로 밀려나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지금과 달라지지 않았을까.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막차는 앉을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 막차 바로 전 지하철을 탔는데도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막차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또 신종 코로나로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 걸 생각한다면 평소에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그럼에도 난 서울을 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그 일이 끝나면 그때는 서울을 과감히 벗어나 살 것이다. 그때는 서울이 나를 묶어둘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