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내가 했던 여행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궁금하다. 지금의 나는 도무지 이런저런 여행을 '했던'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아무런 연결점이 없는 것 같다. 소심하고 용기 없고 위축되고 배포 작고. 무모한 여행을 일삼던 사람이 지금의 나 같을 순 없다.
저녁나절 선선한 바람을 쐬며 산책을 나섰다. 원래는 경복궁만 한 바퀴 돌까 했는데 어느덧 발길은 삼청동으로 또 인사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연히 낮은 담장 위로 꽃양귀비가 눈에 들어왔다. 꽃양귀비를 처음 봤을 때 저렇게 매혹적인 꽃이 있을까 생각했었다. 갑작스레 과거의 풍광 하나가 마치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서울 도심 한 가운데 피어 있던 꽃양귀비
7년 전 딱 이맘때 즈음이었다. 나는 이란 국경을 통과해 터키 동부에 머물고 있었다.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지역이었다.
Kars 도심에서부터 시골길을 한참을 달려 Ani Ruins에 도착했다. 천년도 넘었을 중세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지였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홀로 한적하고 적막하고 음울하기까지 한 묘한 기분을 선사하는 그곳을 하염없이 거닐었다. 그때 이름 모를 들꽃 사이로 새빨간 꽃양귀비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지금 눈앞에 피어 있는 꽃양귀비를 보니 당시의 공기와 기분과 느낌까지 모두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라는 유일한 증거가 되어준다.
영영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여행이 과거의 경험이 아직 내 안에 있다는 걸 이렇게 종종 깨닫곤 한다. 그러면 내 마음은 비로소 안심하며 다시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