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늘보의 미래진료소_Day14
5) 위협받는 '정형화'된 일자리의 선택
지금까지 사라지는 일자리와 떠오르는 일자리에 대해 알아보았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등이 발달함에 따라 기존의 정형화된 일자리는 점차 사라지는 반면, 이들이 대체하기 어려운 창의성이 필요한 일자리는 점차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고 정형화된 일자리는 아무런 선택지도 없이 이대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할까? 오늘은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일자리를 위협하는 건 발전하는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등 기계의 발전이다. 그렇다면 기계는 어떤 일이든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걸까? 아래는 맥스 테그마크가 그의 저서 '라이프 3.0'에서 밝힌, 기계로 대체되지 않을 직업의 조건이다.
1. 사람과 상호작용과 사회적 지능을 요구하는가?
2. 창의성이나 영리한 해법 도출과 관련이 있나?
3. 예상하지 못할 환경에서 일할 필요가 있나?
- 라이프 3.0/맥스 테그마크
자신의 직업을 떠올리고 위의 질문에 대답을 해보자. '그렇다'는 답변이 많을수록 자신의 일이 기계로 대체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질문들을 사라지는 일자리들에 대입해보자. 앞에서 사라지는 일자리의 조건은 '정형화'된 업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정형화'되어 있지만 위의 조건 중 하나라도 만족시키는 직업들은 어떻게 될까?
'3-3. 사라지는 일자리: 전문직의 미래'에서 예를 들었던 의사는 어떠할까? 의사는 '일련의 체계화된 지식'을 가지고 진료를 한다. 그 지식은 '체계화', 즉 '정형화' 되어 있어 인공지능이 쉽게 익히고, '정형화'된 알고리즘을 따라 진단 및 치료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미 '왓슨'이라는 IBM의 인공지능이 의사의 판단을 보조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이 '왓슨'이 발전하고 더 널리 사용되면, 의사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의 업무는 병의 진단과 치료를 선택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기에 위의 1번 조건,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대화 및 진료를 위한 사회적 지능이 요구'된다. 따라서 의사는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운 조건 또한 가진 직업이다. 그렇다면 결국 인공지능은 완전히 의사의 업무를 대체하지 못하고, 의사의 보조도구가 되어 오히려 의사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말 그럴까? 당분간은 그럴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3-3. 사라지는 일자리: 전문직의 미래'에서 서술했듯이,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판단을 검수 없이도 신뢰할 만큼 익숙해지는 세상이 온다면 의사의 업무 중 판단 부분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남은 업무 중 대면 업무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발달로 환자가 로봇과 일대일로 입력하거나 또는 준전문가의 도움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즉, 의사의 업무가 해체되어 로봇과 환자 또는 준전문가가 나눠갖는 것이다. 그러면 의사는 이대로 사라질까?
다시 기계로 대체되지 않을 직업의 조건에 주목해 보자. '정형화'된 전문성을 가진 직업들에게도 2번 조건, '창의성이나 영리한 해법 도출'이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의사의 경우도 진료에 대한 판단을 인공지능이 맡더라도 그 인공지능을 가르칠 의사가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일련의 체계화된 지식'을 배우는데 사람보다 더 잘한다 하더라도, 그 '일련의 체계화된 지식'을 더 치열하게 쌓아나갈 사람들이 필요하다.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고 쌓아나가는 일은 창의적인 일이며, 직관이 필요한 일이다. 비록 인공지능의 발달이 언젠가 사람 수준의 창의성과 직관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는 아직 먼 이야기이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부분에서 연관성을 찾아내는 직관은 깊은 이해와 낯설게 보기를 통해 태어난다. 인공지능이 데이터 간의 통계적인 연관성을 파악하더라도 그것의 의미까지 이해하려면 사람에겐 '상식'에 해당하는 수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또한 그렇게 이해하더라도 낯설게 보기 위해서는 익숙해진 회로를 끊어 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정형화'된 전문성을 가진 직업과 떠오르는 직업들이 융합되는 것 또한 2번 조건, '창의성이나 영리한 해법 도출'에 해당된다. 앞서 소개한 떠오르는 일자리들은 그 자체로는 불완전하다. '프로그래머', '메이커', '크리에이터' 그리고 '디자이너'는 미래를 그려갈 소중한 직업들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직업들에 입문할 수 있는 문턱은 서점에서 쉽게 입문용 서적을 구할 수 있을 만큼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 문턱은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더 낮아지게 될 것이다. 보다 더 쉽게 기술을 배울 수 있고, 더 쉽게 시장에 뛰어든다. 예를 들어, 지금도 '크리에이터'가 되는데 거창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 스마트폰 하나면 손쉽게 촬영하고, 편집하여, 유튜브에 업로드까지 가능하다. 따라서 이 직업들은 입문이 쉬운 만큼 자신을 알리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하게 일어난다.
경쟁 속에서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서는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차별화 전략에는 전문성이 큰 힘을 발휘한다. 이 경쟁시장이 일찍 구축된 '크리에이터'들은 이미 차별화 전략에 전문화를 사용하고 있다. 많은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을 단순히 '크리에이터'라고 하지 않고, 자신의 전문분야가 돋보이게 화장품 및 화장법 콘텐츠 위주의 '뷰티 크리에이터', 먹방으로 대표되는 '푸드 크리에이터', 게임 방송 위주인 '게임 크레에이터' 등 전문분야를 붙여 자신을 소개한다.
따라서 이미 전문성을 갖춘 이들과 떠오르는 일자리의 융합은 '정형화'된 전문성을 가진 직업들이 미래사회에 알맞은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는 기회이자 경쟁력을 갖출 방법이 된다. 이는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침략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변화가 빠른 사회에서도 유연한 경계를 가지고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이다.
이렇듯 '정형화'된 일자리는 자신의 업무 중 '정형화'된 부분이 어느 정도인지,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은 어느 정도인지 고민해보고, 자신의 업무가 해체되어 다른 직업이 나눠갖게 되진 않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또한 자신의 전문성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떠오르는 일자리들과의 융합을 시도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물결은 막을 수 없이 밀려온다. 그렇다면 거스르기보다 그 물결을 타고 나아가는 건 어떠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