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브래지어 탈출기

"브래지어 처음 만든 새끼 누구냐"

by 유이영

지친 날의 전형적인 밤을 묘사하자면 이렇다. 자정이 다 된 시각 택시에서 내린다. 현관문을 열고 씻을 힘도 없이 바닥에 그대로 뻗어버린다. 종아리는 딴딴하게 부어 바지를 벗자 봉제선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누운 채로 등만 슬쩍 들어 셔츠를 후루룩 벗어던지고 브래지어를 푸는 순간 끄억 하고 신트름이 올라온다. 브래지어를 끌러야만 하루의 고단함이 마무리된다.

날이 더워지면서 '가슴 잔혹사'가 또 시작됐다. 가슴골에 땀맺히는 찝찝함을 여름마다 통과 의례로 치른 지가 20년이다. 겨울철 집 앞 마트 나갈 때는 대충 가리고 나가지만 한여름 흰 반팔 안 노브라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최근 예상치도 못하게 '탈브라'를 체험하고 그 가뿐함에 나는 억울함부터 밀려왔다. 등이 빨갛게 붇고 발진이 돋으면서 옷감만 스쳐도 따가운 상태가 된 날이었다. 쓰라린 등에 몸을 배배 꼬며 브래지어를 겨우 차고 출근했지만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가려움증을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브래지어 후크 부분의 후끈거림이 특히 심했다.


화장실로 달려가 당장 브래지어를 벗고 동생이 챙겨준 누드 브라를 붙였다. 살갗에 끈적한 접착제가 닿는 촉감이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회사에서 노브라로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하필이면 여름의 초입이었고 사무실 에어컨만 혼자 여름인지 몰랐으며, 마스크까지 쓰니 체온이 급격히 올랐다는 점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누드 브라에 갇힌 가슴에도 땀이 송골거리는 찰나, 툭 하고 오른쪽 가슴 누드 브라가 떨어졌음을 느꼈다. 겨우 왼쪽 가슴에 의지한 채 셔츠 안 누드 브라가 달랑거렸다.


앞섶을 움켜잡고 화장실로 또 달려갔다. 브래지어를 다시 찰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모두 다 벗어재끼고 자리로 돌아왔다. 회의하다 셔츠 밑으로 누드 브라가 툭 떨어지는 불상사보다야 낫겠지, 어차피 다들 앉아서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겠지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돌아다닐 때마다 노트를 꼭 끌어안고 어깨를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상태로 몇 시간이 지나자 왠지 모를 통쾌함이 몰아쳤다. 야근할 때 저녁 먹고 들어와 일하면 소화가 되지 않아 더부룩했던 느낌이 그날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나는 친구에게 '노브라 근무'의 장점을 예찬했다. 이런걸 20년이나 차고 다녔다니, 그리고 이 산뜻함을 알게된 몸이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갑옷처럼 브래지어를 두르고 다닐 생각을 하니 뒤늦게 복장이 터졌다. 한 번 해방감을 맛보니 답답해서 못 해먹겠다는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브래지어 제일 처음 만든 새끼 누구냐. 몇 대만 맞자. 내가 부라자 차고 다닌 날만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일 브라 체험'을 한 남성 패널의 후기. 이 짓을 수십 년 한 사람이 수두룩한데 왜 이조차 남자 입을 통해나와야 하는지 이해 되지 않는다. /EBS 캡쳐


생생히 기억한다. 2차 성징이 시작되고 브래지어라는 물건을 처음 찰 때의 모멸감을. 여자가 돼서 축하한다면서, 대체 이 우스꽝스러운 물건을 왜 싸매고 다녀야 하는지 그 나이에도 이해가 안 갔다. 이미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젖몽우리가 잡혔지만 나는 엄마가 사온 브래지어를 외면한 채 버티고 버텼다. 2차 성징이 빨랐던 친구들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기며 놀던 남자 아이들 괴롭힘을 목도했기 때문도 컸다. 6학년이 되자 귤 하나 되는 크기로 가슴이 솟았고 스포츠 브라에 타협했다. 브래지어로 놀리는 아이들이 없는 여중에 들어가서는 흰색 여름 교복을 입으며 와이어 브래지어에 굴복했다. 브래지어가 비치지 않게 한여름에도 그 위에 흰색 나시를 덧대 입고 다녔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이따금 튀어나오는 와이어에 가슴팍을 찔리며 지냈고, 대학생이 되자 옷 맵시를 살린다며 패드를 넣고 다니곤 했다. 감히 브래지어를 벗겠다는 발상은 하지 못한 채 20년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버렸고, 중력을 거스른다는 것 외에 어떠한 기능-이게 필요한 기능인지도 잘 모르겠다만-도 없는 21세기 코르셋을 매일 아침 스스로 채우게 되었다.

화장이 그러하듯 할 때는 모르지만 안 했을 때 비로소 고충이 명확해진다. 20년간 여러 브랜드를 전전했지만 어떤 브래지어도 편한 적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온갖 제품을 다 써도 맞는 게 없다면, 그건 그 물건의 존재 가치를 의심해봐야 한다. 나같은 불편함을 느끼는 여성들이 수두룩하니 요즘에는 와이어가 없는 브라렛도 대중화됐고, 아예 브라캡이 달린 티셔츠도 나온다. 대안은 될지언정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굳이 옷을 한 겹 더 껴입는 갑갑함을 대체 왜 감수해야 하는지 근본적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특히 한 겹 더 덧댄 티셔츠는 유두를 숨기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여성의 몸에 유별나게 반응하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기괴한 발명품은 계속 나올 것이다. 여성들도 조금 덜 불편해졌을 뿐인 상품들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겠지. 아무리 '인생 브라' 찾아봤자 노브라만 못하다.


나는 요즘 주말에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 여전히 공적인 자리에서는 '탈브라'하기 어렵다. 노브라가 아닌 탈브라라고 하는 이유는 벗고 싶어도 벗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매일 아침 내 손으로 브래지어 차고 출근한다 해도 나는 그것이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의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브라 없는 상태는 그냥 옷을 하나 덜 입은 차원이 아니다. 사회의 암묵적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용기가 수반되기에 '탈브라'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또 브래지어한 모습이 원래 상태임을 전제한 말이라는 점에서 ‘노브라’는 어폐가 있다.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탈코르셋' 논의가 한창이다. 여기서 코르셋은 여성을 억압하는 장치를 일컫는 상징적 의미로 쓰였다. 굳이 중세까지 멀리 갈 필요가 있나 싶다. 이미 우리가 하고 다니는 브래지어가 억압 그 자체인데! 이왕 이름 붙이기를 '탈브'라고 했으면 보다 현재적인 명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두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하나는 나의 탈브라를 성적 유혹으로 착각한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원래 모습 그대로 나갔을 뿐인데 "헉, 너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어?" 하고 붉어지던 얼굴, 아니 여러 얼굴들이 스쳤다. 덜 가까운 사람들은 내 가슴과 눈이 마주치고는 지레 민망해하거나, 눈요기처럼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했다. 이러한 시선과 맞서야 하니 입어도 문제, 안 입어도 문제가 되어버리고 어쩐지 나는 무력한 기분이 든다.


다른 하나는 최근 참석한 모임이었다. 나는 그날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여성 세 명 모두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음을 알아챘다. 서로가 알았을 테지만 딱히 이를 입에 올릴 이유도 없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듯한 분위기에 나는 동지애를 느꼈다. 그 자리에 있는 남성들 또한 이에 대해 눈길을 주거나 언급하지 않았다. 그 무리 안에서 자유와 편안함, 안전감을 느꼈다. 어떤 희망찬 미래에 뚝 떨어진 듯했다. 여성의 몸에 무심한 사회라면 이렇지 않을까 상상을 해봤는데 그 기분이 매우 유쾌하면서도 뒷맛이 달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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