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안 먹는 호구보다는 욕 먹는 쌍년이 되겠어"
불안 없이 나대로 살아보기
30대가 되는 친구들에게서 여러 변화를 발견한다. 그 중 하나는 '더이상 호구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대체로 우리는 자기 의견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고 '센스있게' 전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며 자랐다. 사회에 나와서도 그러한 요구는 대체로 젊은 여자에게 더 강하게 주어지는 듯하다. '억지로 웃지 않기'가 여성주의 운동 중 하나로 진행되기도 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러하다.
여러 굴곡진 사건을 접하면서 "욕 안 먹는 호구보다는 욕 먹는 쌍년으로 살겠다"는 대오각성이 우리 세대 여성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나는 나에게서, 그리고 나와 비슷한 이들에게서 어떤 닮은 표정을 본다. 자기 줏대대로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성정 여린 사람이 그런 각오로 살 때 비치는 불안이 있다. 원래부터 제멋대로 사는 사람은 쪼는 기색 하나 없다.
나를 후려치는 말에 항의하기, 안 내키는 부탁은 거절하기, 내 밥그릇은 내가 챙기기, 이런 말 해도 될까 싶으면 삼키기보다는 뱉어보기, 불평등 앞에서 내 권리를 주장하기, 이것도 차별인가 긴가민가 할 때는 일단 언급하기, 자기검열은 개나 줘버리기, 내가 나의 가장 강력한 보호자가 되기... 나대로 살겠다는 이런 실천법에는 감정 소모가 잇따른다.
제 소신대로 사는 여자들을 아니꼽게 보는 시선들, 그녀들을 깎아내리는 언행을 나는 너무 많이 지켜봤다. 최근 멀쩡히 살고 있는 나를 툭 건드리는 말들을 들었다. 나를 둘러싸고 면면히 좋은 삶-대개는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되는-에 대해 늘어놓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흡사 인민재판장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뒤늦게 찾아온 모욕감에 나는 몸서리쳤다. 더이상 나의 내면을 물어뜯기는 아량을 보일 수가 없었고, 나는 며칠 뒤 그들이 한 언행의 폭력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턱'하고 마음에 무거움이 생겨버렸다. 머리로는 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이 예전의 습성으로 돌아가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되바라진 '쌍년'이 된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오는 데 또 한나절이었다.
남에게 피해준 것도 아닌데 막상 실행하고 나면 나조차 죄책감의 늪에 발목잡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타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때론 공격하며, 지레 방어의 날을 세우기도 한다. 나도 휘둘리지 않고 사는 내가 서먹한데 어쩌랴. 그래서 '쌍년의 미학(동명의 책도 있다)' 따위의 말이 생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프레임이 너무 거창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계를 상대에게 일러주는 일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이 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데 나조차 저어하는 마음이 드니 스스로 '쌍년'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그 말 뒤에 숨어버리는 건 아닐까.
나를 향해 확신을 선사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잘 알겠다. 어차피 오지랖 넓은 이들은 내가 나대로 살아도 지랄, 맞춰줘도 지랄이다. 고로 전자가 더 속편한 선택이며, 그들은 뒤돌아서면 나에겐 관심이 없다. 불안 없이 나대로 살기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하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겠다. 바로 죄책감이다. 그런 맘이 불쑥 올라올 때마다 속으로 세 번씩 외쳐보자.
어쩌라고, 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