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명절 보이콧

가족이란 무엇인가(3)

by 유이영


명절을 보이콧 하겠다고 결심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2015년 설, 사촌 올케와 함께 보내는 첫 명절이었다. 아침 8시쯤 부엌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이 번쩍 떠졌다. 엄마와 큰엄마, 사촌 올케 사이에서 나도 팔을 걷어붙였다. 어떤 친밀함도 쌓이지 않은 남이 공짜로 해주는 밥을 얻어먹기가 염치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부끄럽지만 피 안 섞인 ‘새 며느리’가 들어오고서야 기존 며느리인 엄마와 큰엄마의 노동도 보이기 시작했다. 분주한 주방 너머로, 느지막이 일어나 TV 앞에 앉아있는 삼촌과 사촌 오빠의 뒤통수가 보였다. 그 풍경이 너무 기괴했다. 저들은 처음 보는 여자가 차리는 밥이 일말의 미안함도 없이 잘만 넘어간단 말인가?


그리하여 나는 그해 추석부터 ‘명절 보이콧’을 선언하고 해외로 놀러 다녔다. 그나마 우리 친가의 선진적(?)인 점은 명절에 안 가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는 것이다. 엄마와 함께 탈주도 계획했지만 엄마는 그때마다 “그래도 명절인데 어떻게 (내가) 안 가니”라고 말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나를 찾지 않는 이유는 장손도 아니며 가사 노동도 하지 않는 나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피붙이에게 최대한으로 할 수 있는 저항마저 ‘명절 보이콧’ 정도이다. 그마저도 아마 큰아빠나 삼촌, 사촌오빠는 내가 왜 보이콧 하는지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엄마가 중간에서 그저 “올해 회사 일이 바쁘다고 한다”고 둘러댔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의 X같음’은 그대로 남은 채 내 몸만 빠져나온다는 점에서 찜찜함은 여전히 남는다. 기혼 여성, 그 중에서도 가부장제의 가장 밑바닥 신분인 며느리들은 오죽할까 싶다. 만약 결혼을 한다면, 지금은 꿀같은 휴가에 불과한 명절이 지난한 노동의 시간이 될까 지레 두렵다.


어찌됐거나 명절 의무에서 배제된 나에게 명절은 지금도 꿀같은 휴일이다. 중화권이나 국내는 명절을 쇠기 때문에, 사나흘 휴일에 갈 수 있는 곳으로는 일본이 제격이었다. 한 번은 제주도에 갔다가 명절 당일에 문 여는 식당이 없어 쫄쫄 굶기도 했다. 명절 보이콧 첫 해 추석에 일본 교토에 갔다.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이 평온함이야말로 진정 조상의 덕이구나' 느꼈다.


나의 첫 명절 보이콧. 추석에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한 사찰에서 고양이를 만났다. '명절 거부'를 넘어선 명절은 어떤 풍경일까?


그런데 그것도 한 두 해지, 이제 어디 가기도 귀찮다. 평소의 1.5~2배로 치솟는 명절 비행기값도 아깝다. 서울에 있자니 외롭고 배고플 것 같다. 몇 년 전 나같은 사람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명절 잔소리를 피해” 설에 떡국 끓여먹는 모임이었다. 그것이 진화해 요즘은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명절 브런치 모임’이 눈에 띈다. 그곳에 함께 가는 모녀(母女)를 상상하니 유쾌한 기분이다.


한 남자 후배는 이번이 결혼 후 첫 설인데, 부부끼리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자기 집은 아직도 남자상과 여자상을 따로 차리는데 아내에게 이해(?) 시키기도 미안하다며 말이다. 나는 지금의 이 명절 보이콧 흐름이, 명절 거부에서 시작했다가 궁극에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명절이 여자들뿐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의무로 똘똘 뭉친 날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더욱 그렇게 믿는다.


우리 친가는 재작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제사를 없앴다. 큰아빠를 비롯해 남자 어른들이 결정한 일이었다. 대가족은 명절 전 주나 그 다음 주쯤 모여서 1박 2일로 놀러가기로 하고, 명절 연휴는 핵가족 단위로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지난해 설엔 가족끼리 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나는, 가족 중 아빠가 제일 즐거워하는 모습이 신기했다(명절에 운전 말고 뭘 하는데?!). 제도의 최대 수혜자마저도 억압하는 것이 가부장제라고 확신했다. "사랑의 반대말은 가부장제(최은영 작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전 02화헌밥 먹는 여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