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밥 먹는 여자들

가족이란 무엇인가(2)

by 유이영
가족 모임에서 남자들이 먼저 식사를 뜨는 모습. ***부득이 가족 사진을 첨부했습니다. 행여 사진 퍼가는 행위는 허용하지 않습니다***


사진 한 장으로 얘기를 풀어보려 한다. 이 사진은 작년 11월 외할머니 생신을 맞아 대가족이 저녁을 먹는 풍경이다. 정확히는 남자들이 먼저 ‘새 밥’을 뜨고 있는 장면이다.


외가로 말할 것 같으면, 다복하게도 그 시절 누구 하나 크게 다치지 않고 8남매가 자랐고, (나를 포함해) 그 8남매의 자식들도 장성했고, 그 중 일부는 시집장가 가서 애 하나 둘씩 낳고 살고 있다. 외할머니의 자식과 그 배우자, 손주들만 다 모아도 40명 가까이 되는데 여기에 손주의 배우자와 증손주들까지 하면 대가족도 아닌 ‘특대’ 가족이 된다.


외할머니는 옛날 분임에도 손녀인 내가 느끼기에 남아 선호 사상이 거의 없고(내 기억으론 그런 낌새조차 표현하신 적이 없다), 늘 “사랑한다”는 말을 먼저 하신다. 외가 모임에서는 주방일이 여자들에게 몰려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남자들이 놀지도 않는다. 외삼촌과 이모부들은 고기 굽고 회 뜨고 시골의 여러 잡일을 하느라 나름 바쁘시다. 어렸을 적 외가에 가면 밥상 앞 암묵적 룰은 ‘애부터 먹인다’였다. 막내 이모부가 회 뜰 때면 옆에서 지켜보다 내 입에 쏙 넣어주는 한 점을 우물거리곤 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얘기인 줄 알았다. 며느리에게 “우리는 이거 먹자” 하면서 냉장고에서 찬밥을 꺼내오는 시어머니 모습. 적어도 우리 집은 밥상머리 앞에서만큼은 평등하다고 생각했다.


외할머니의 여든 몇 번째(무심한 손녀 ㅠㅠ) 생신을 맞아 8남매 내외, 손주들과 증손주까지 특대 가족이 모였다. 밥을 한 번에 같이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게 문제였다. 한정된 밥상머리를 누구에게 먼저 내놓을 것인가. 차별의 시작이었다.

집안 대소사를 진두지휘하는 큰이모는 “얼른 남자들부터 먹고 해치우자”고 했다. 나는 “이 밥상은 누가 차렸는데?”하고 꿍얼거렸다. 옆에서 동생이 속삭였다. “큰이모가.”


누구도 개의치 않아보였다. 남자들은 자리에 앉았다. 유일하게 앉을 수 있는 여성은 ‘대빵’인 외할머니뿐이었다. 외할머니를 둘러싸고 외삼촌, 이모부, 아빠, 사촌형부, 오촌조카까지 앉았다. 우리 엄마, 이모와 외숙모들, 사촌올케들은 이유식 갓 뗀 남자 오촌조카보다 밥상머리 서열이 낮은 셈이었다.


“저는 헌밥 먹기 싫어요.”


나는 소심한 저항에 들어갔다. 외할머니의 행복을 망칠 수 없을뿐더러, 밥상을 차린 것도 아니기에 염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3지대인 식탁을 차지하고 남자들이 먹을 때 똑같이 숟갈을 떴다. “언니 얼른 드세요”하고 사촌올케를 의자에 앉히는 데까지 성공했으나, 그녀는 아주 뒤늦게야 식사를 시작했다. 나와 여동생의 불평에는 쓴 미소만 띨 뿐이었다.


식사를 마친 둘째 이모부가 내 옆자리 앉은 여동생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날 우리가 함께 밥상머리 서열화 현장에 있지 않았다면, 나든 여동생이든 이미 복장이 터졌을지 모르는 노릇이다.

“왜 안 먹니?”
“남이 먹던 거 먹기 싫은데요."
“너 그러면 어디 가서 밥 못 얻어먹는다.”


여자들의 '2부' 식사. 앞치마 두른 채 남자들이 남긴 반찬을 먹는다. ***부득이 가족 사진을 첨부했습니다. 행여 사진 퍼가는 행위는 허용하지 않습니다***


‘2부’ 식사에 여자들이 앉았다. 모두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새 밥’을 챙겨먹는다고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다. ‘방관자의 딜레마’다.


죄책감을 반드시 동반하는 이 딜레마는 명절 가사 노동에서도 똑같이 재현된다. 엄마와 큰엄마가 부엌에서 툭탁거린다. 거들자니 아무것도 안하는 사촌오빠를 보며 속이 뒤집어지고, 안 하자니 우리 엄마가 힘들다. 이때도 정작 엄마는 괜찮다고 한다. “우리 집 정도면 제사 치르는 것도 아니지”라면서. 왜 엄마를 돕고(?) 싶은 마음은 딸들에게만 생겨나는가.


나는 늘 방관자의 자리를 선택했다. 내가 팔을 걷어붙이면 엄마는 항상 “이런 거 미리 배울 필요 하나도 없어. 처음부터 못 한다고 해야 배우는 게 예뻐 보이지, 뭐든 잘 하면 일만 하는 거야.”라고 했다. 이제야 그 말뜻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명절이 정말 싫다. 내가 명절 노동에서 제외된다고 해서, 밥상머리를 제일 먼저 차지한다고 해서 다른 여자들의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나조차도 빡침과 죄책감으로 한동안 마음이 무겁다.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는 아내에게 사랑의 마사지를 해주세요’ 따위의 멘트를 날리는 방송을 보면 환멸이 인다. 너무 기만적인 멘트 아닌가. 명절 증후군은 누가 만드나. 자기들이 먹고 마실 음식 하느라 뼈가 삭고, 그 일을 할 생각만으로도 명절 몇 주 전부터 머리털이 빠지는 사람들에게, 마치 하늘에서 누가 뚝 형벌이라도 떨어트린 양 ‘증후군’ 따위의 말을 붙이다니.


넙죽 넙죽 남이 주는 술과 밥을 받아먹고 나서 ‘주부들 고생 많다’고 지껄이는 사회. 다른 사람의 고충을 몰랐던 게 아니라는 점에서 비열하기 짝이 없다. 아니, 자궁에 취사 능력이라도 탑재하고 태어나는 건가요?


나는 이제 아무리 화목한 명절이어도 의구심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이 평화와 행복은 누구의 인내 위에 쌓은 것인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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