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단비 Oct 13. 2020

'어떤 피해자의 삶'에 관한 소설



돌아올 수 없는


         

1. 2015년 8월 14일, 희라의 일기

     

 “하와이에 가고 싶어”     

 “그럼 가자. 꿈속에서 너는 수영복을 입고 팔을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머리 뒤에 베고 누워서 날 바라보는 거야. 그럼 난 그 맞은편에서 비키니랑 비치웨어 입고 널 바라보고 있을게. 비치웨어는 꽃무늬 롱 원피스로.”     

 그 순간 선풍기 소리와 장맛비 소리는 하와이의 파도가 됐어. 담뱃진에 절은 벽지의 얼룩은 해변이 되었고 오래된 냉장고 소리는 파도 소리가 되었지. 우리는 땀인지 무기력인지 하여튼 정체 모를 것들이 진득하게 달라붙은 옷들을 벗어버리고 꽃무늬 롱 원피스와 수영복 차림이 되었어. 너한테 말하진 못했지만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일어나서 해변을 거닐며 그 옷마저 한 장씩 벗어버리고 싶었어. 섹스가 하고픈 게 아니라 그냥, 자유를 느끼는 거야. 파도 소리와 깔깔한 모래와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는 거지. 서로만 보고 만질 수 있는 곳까지 모두 다 바람, 해변에 맡기고. 그 안에서 정말 우리는 하나가 될 거야.     

 하나가 된다고? 거기까지 상상이 미치니 장면 속에서 서로를 보며 짓는 표정과 바람, 몸짓, 모두 다 필름 속에 박혀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말았어. 너의 자상하면서도 자신만만한 표정, 우리 둘의 눈빛까지도. 서울에서 하와이 호놀룰루까지의 거리만큼, 딱 7,318Km 길이의 아주 거대한 필름 말이야. 필름은 영사기 속에서 속절없이 흐르지. 그 거대함 아래 깔려있는 내 옆에서는 세상모르고 잠든 너와 시끄러운 냉장고의 소음, 윗집의 교양 없는 발걸음과 끈적이는 10평 남짓의 공간만 있을 뿐. 바람이니 파도니 전부 필름 밖 세상엔 없었어. 필름이 너무 무거워서 갈비뼈가 으스러질 것 같았고 차라리 필름을 끊어버리고 네 품에 으스러지게 안기고 싶었지만, 그 거대하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멈추려 들었다가는 그대로 빨려 들어가서 온 몸이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그 괴물을 멈출 방법이 없었어.

 너처럼 나도 잠 속에 빠지고 싶었어. 각자 다른 하와이라도, 꽃무늬든 흰색이든 다 벗든, 아무래도 좋다고. 완벽한 필름보다 살아있는 너와 털 한 올이라도 닿고 움켜쥘 수 있다면. 오로지 과거와 미래와 혹은 닿을 수 없는 것들만 잔뜩 담겨있는 이 필름이라는 괴물을 잊어버릴 수 있다면. 침대 속 어딘가에, 아니 내 머릿속 어디쯤 꿈틀꿈틀 숨어 있다가 잠자리에 들면 찔끔찔끔 꼬리를 물고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리는. 내 기억들, 상상들, 희망, 두려움, 불안, 불안, 불안들. 어쩌면 난 이미 그때쯤 손댈 수 없는 그 괴물에게 잡아먹혔던 건지도 몰라. 내 옆에서 살아 숨 쉬는 너를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칭얼댔으니. 필름 속의 우리가 날 꾀어낸 거야. 아니, 나 스스로 꾐에 빠진 거야. 너와 나라는 타인이 아닌 하나 된 우리로, 나의 이상 속으로. 너라는 타인을 애써 모른 채 하며. 그렇게 네가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젠 영사기 속의 반쪽짜리로 남은 너에게 이렇게 또 칭얼대.

 왜 그랬니, 왜 혼자 갔니. 나도 데려가 줘. 너처럼 훌훌 털어버리고, 벗어버리고 해변을 걷고 싶어. 돌아올 수 없는 필름 속에 너와 다정히 박제되고 싶어. 왜 급하게 혼자 갔니. 한번 더 쓰다듬을 걸, 숨내를 맡아둘 걸. 왜 그랬니, 왜 그랬니.


 밤새 되묻고 되물어도 답이 올 리 없는 질문 끝에 또다시 박제된 태양이 떠오르고 필름처럼 얇아진 나는 속절없이 돌아가고 또 돌아온다.          



2. 희라의 엄마 - ‘OO상담소 녹음 기록’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걔가 뭐가 부족해서, 어디가 모자라서! 나, 진짜 잘 키우고 싶었어요. 어려서부터 남들 다 하는 건 물론 남들은 시키지 않는 거까지 다 쏟아부었다고요! 피아노, 바이올린, 미술, 발레, 수영, 영어학원 모델 워킹 학원까지! 그래도 나한테 안 가겠다, 힘들다 소리 한번 안 한 착한 내 딸이었어요. 고 작은 다섯 살짜리가 분홍색 발레복을 입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깜찍하던지. 게다가 그 앤 어딜 가나 최고였어요. 운동이면 운동, 음악이면 음악, 공부면 공부……. 같이 수업을 참관하는 엄마들 사이에서도 언제나 화제에 오르는 애였다고요. 엄마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특별한 아이였어요, 내 딸 희라는.

 그래요, 인정할게요. 나 욕심 많은 엄마예요. 그렇지만 세상천지 누구라도 희라의 엄마였다면, 정말 욕심 낼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 애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보석 그 자체였으니까요. 백화점이든 아무도 없는 들판이든, 그냥 세워놓기만 해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니까요? 이 사진 좀 보세요. 커다란 눈 하며, 오똑한 코 하며, 꿀 빛 피부까지……. 이런 애가 머리도 좋고 말은 또 얼마나 또박또박 잘하는지, 어디 가면 교수시키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러니 내가 욕심이 안 나고 배기겠어요? 얘를 낳고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라요. 애 낳고 나면 진통의 기억 때문에 애가 좀 밉기도 하고 그런다던데, 나는 꼬박 20시간 진통하고 낳은 애였어도, 보자마자 너무 예뻐서, 너무 사랑스러워서……. 난 우리 희라랑 외출했을 때 희라 똥 기저귀까지 아까워서 그대로 다 집에 싸들고 왔어요. 정말, 사랑한다고요, 우리 희라…….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애가 내 사랑을 거부하기 시작했어요. 아마 그게 중1 무렵이었을 거예요. 집에 오면 인사는커녕 방문을 쾅 닫아버리고, 혼자 뭘 하는지 문 열고 들어갈라 치면 나가라고 소리소리를 질러대고……. 미주알고주알 떠들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차가운 눈빛과 날카로운 가시만 남았어요. 사춘기라고 해도, 정도가 좀 심했어요. 성적이요? 말해 뭐하겠어요. 초등학생 때 까지는 학교에서 모르는 선생, 학부모가 없을 정도로 성적도 좋고 교우관계도 좋고, 말 그대로 모범생이었는데 중학생 때 처음 가져온 성적표가 어땠는지 아세요? 평균 82점! 물론 아주 바닥은 아니었지만 우리 희라 성적표인데,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점수잖아요. 지나고 보니 차라리 그때가 다행이었지요.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에는 세상에, 70점대까지 떨어졌다니까요. 공부는 한 자도 안 하고 맨날 그놈의 컴퓨터 속에 뭐가 들었는지……. 그놈의 컴퓨터가 문제예요. 착한 내 딸을 이렇게 망쳐놓은 범인이에요. 좀 웃긴 이야기지만 내가 애 임신했을 때 사무직으로 컴퓨터 앞에서 일해서 그런가 싶어서 사실 자책도 많이 했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요…….

 그걸 가만히 두고 봤냐고요? 어느 부모가 그러겠어요, 진짜. 혼도 내 보고 달래도 봤어요. 오밤중에 애 붙잡고 엉엉 울어보기도 했어요. 편지도 써 봤고 매도 들어봤지만, 정말 안 해 본 거 없이 다 해봤지만 애는 점점 망가져 갔어요. 고등학생 때부터는 말도 없이 외박하기 일쑤였고, 때로는 며칠 동안 집에 안 들어온 적도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난 먹을 수도, 잘 수도 없었어요. 오로지 기도만 했어요. ‘제발 하느님, 희라가 착한 내 딸로 돌아오게 해 주세요.’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어요.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고……. 그야말로 피가 마른다는 게 뭔지 알겠더라고요. 실제로 쓰러지기도 수 차례……. 미친 사람마냥 싸돌아다니며 오열한 적도 있었고요. 애 아빠는 점점 술이 늘어갔어요. 희라가 돌아오면 애 아빤 그제야 아빠 노릇이라도 해 보겠다는 건지, 호통을 치거나 손찌검을 했고요.

 난 그이가 미워요. 애가 점점 비뚤어지는 게 전부 다 그이 탓인 것만 같아요. 그 조막만 한, 여리디 여린 우리 희라에게 그이는 너무 투박하고 무심하게 굴었어요. 한두 번이 아니에요. 장난이랍시고 남자애 다루듯 툭 툭 쳐서 결국 애를 울리지를 않나.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애가 다섯 살 땐가, 주말에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었는데, 그 날 그이가 좀 많이 피곤했나 봐요. 원래 가족끼리 어디 가고 그런 거 자체를 좀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몸까지 피곤하니 가기 싫었던 마음은 이해해요. 그래도 애를 좀 달래 보려고 하거나 하여튼 간에 뭔가 노력은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꼼짝을 않고, 입도 뻥끗 안 하고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고 자빠져있는 거예요, 그 인간이. 애는 뭐 울고불고 난리가 났죠. 애들한테 약속 함부로 하면 안 돼요, 진짜. 내가 달래 보려고 무진장 애썼는데, 애는 아빠랑 한 약속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아빠한테만 매달렸어요. 우리 희라가 사실 고집은 좀 있거든요. 점점 울음소리는 커지고 집안이 난장판이 되어 가는데 희라가 그 순간 빽 소리를 지르면서 홧김에 장난감 화장대를 엎어버린 거예요. 우당탕 소리와 동시에 애 아빠가 벌떡 일어나더니 희라를 질질 끌고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갔어요. 애 슬리퍼가 다 벗겨질 정도로 인정사정없이 끌고 가서 혼을 내는데, 정말 너무, 너무, 무서웠어요. 내 손이 덜덜 떨리는 게, 그도 그럴 것이 애 아빠가 평소에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좋은 감정 나쁜 감정 할 거 없이. 십여 년을 같이 살면서 처음 본모습이었어요. 그 뒤로도 평소엔 그렇게 신선 같은 양반이 희라 앞에서는 불같이 화를 내는 일이 몇 번 있었고요. 아마 희라한테는 그런 모습들이 점점 상처로 쌓여갔겠죠.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애 아빠가 좀 투박하고 그랬긴 했어도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요. 이제 열여덟 살인 딸 방에서 콘돔이 나오다니…….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내가 희라 때문에 매일 눈물을 한 바가지씩 쏟아내도 이게 어떤 감정인지 콕 찝어 말할 수는 없었는데, 서랍에서 그걸 발견했을 때 치미는 감정은, 분노였어요. 내 딸 희라를 향한 배신감, 나를 향한 분노! 심지어 콘돔이 들어있던 서랍장 색깔도 어릴 때 희라가 입었던 발레복처럼 깜찍한 분홍색이었다고요! 분홍색으로 꾸며진 희라의 방이, 희라가 너무나 가증스럽고 명색이 애미란 년이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게 화가 나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우리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건가? 희라가 날 멀리하면서부터 내게 준 상처들 전부 다 감내하고 삼켜가며 어떻게든 나는, 나는 되돌려 보려고, 죽을 둥 살 둥 애쓰고 노력했는데……. 그이가 너무 불쌍해요. 그이는 지 딸이 어떤 새끼랑 어디 가서 뭔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르겠죠. 자기도 모르게 희라에게 화를 내던 그때의 자기 자신에게 괜한 분노와 후회만 허비하며 괴로워하겠죠.

 사실 전부 내 탓일지도 몰라요. 아니, 내 탓이에요. 희라의 모든 건 내 책임이에요……. 내 피와 살로 그 애를 만들었고 온 몸의 뼈가 벌어지는 고통 속에서 낳은, 누가 뭐라 해도 내 아이니까요. 그 애가 세상 밖에서 겪는 일도, 어쨌거나 내가 만든 세포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다 내 일이고 내 책임이고 ‘나의 것’이에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도 다 ‘나’고 내 일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희라를 사랑하고 또 미워하나 봐요. 

 처음부터 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다시 희라를 낳고, 다시 희라를 키우는 거예요. 어쩌면 모든 게 다시 똑같이 되풀이될지도 모르죠. 애 아빠는 또 애를 툭툭 치고 질질 끌고 다니고 희라는 다시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소리만 빽빽 질러댈 수도 있어요. 나는 또 막막한 마음으로 거리를 헤매고 기도를 하겠죠. 토씨 하나 바뀌는 거 없이 이렇게 모든 일이 똑같이 되풀이되어도, 난 그날 서랍장만은 절대, 절대 열지 않을 거예요. 분홍색 캐노피 속에 토끼처럼 소중하게 잠들어있는 희라로 남겨둘 거예요. 발레복을 입고 고 작은 발로 총총 뛰어다니는 희라를 그 모습 그대로 기억하고 싶어요.    

  

    

3. 희라     


 어제는 우리 쁘띠가 죽었다. 쁘띠는 차혁이와 내가 함께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키우기 시작한 토끼인데, 쁘띠를 잃은 슬픔보다 차혁이와 내가 함께 나눈 모든 것들이 이렇게 하나씩 사라질 거라 생각하니 너무너무 무서워졌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날 때마다 우리의 이야기를 조금씩이나마 남겨보려 한다.      

 우리는 4년 전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났다. 처음 차혁이네 집에 도착했을 때 헝클어진 머리와 늘어진 면티를 입고선 삐쩍 꼴아있는 차혁이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피부는 창백하리만치 하얬고 방에는 온갖 인스턴트식품들의 잔해가 쌓여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햇빛 사이로 쏟아지는 먼지와 텁텁한 공기가 나를 덮치는 듯 와르르 쏟아졌다. 하지만 곧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어차피 나는 섹스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담배 피워도 돼?”

 차혁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라고 했다. 차혁이의 목소리는 첫인상과 다르게 무겁고, 느렸다. 무언가가 아래에서 잡아당기듯 끝을 얼버무리며 아래로, 빠져드는 말투였다. 우리는 영화를 봤다. 아니, 그냥 영화를 틀어놓고 섹스를 했다. 낡은 매트리스는 삐걱이는 신음을 내뱉었고 햇빛에 비치는 먼지가 춤을 췄다. 나는, 그 사이에서 아무 소리도 몸짓도 없이 또다시 초점 없는 눈이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초점 없는 눈으로 섹스를 하고, 섹스를 할수록 눈의 초점을 잃어가던 아이였으니까. 

 “네가 흔쾌히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

 섹스 후 담배를 피우던 내게 던지는 차혁이의 말이었다. 나는 원래 나는 그런 애라고 대답했다. 좀, 대책 없는 애라고. 너랑 섹스할 거라는 것도 알고 왔다고.

 “그렇구나.”

 이상한 반응이었다. 호도 불호도 느껴지지 않는 무반응에 가까운 말투였고, 말이었다. 나는 놀랐지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그 감정 그대로 품고 보던 영화나 마저 보았다. ‘콜레트럴’이라는 영화였는데 새벽 내내 어떤 택시기사가 조직에 연루된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내용이었다. 영화 끝마무리에는 새벽의 파란 동이 터 오르고 외로운 늑대 한 마리가 등장하는데 차혁이는 그 분위기가 참 좋다고 했다. 나는 그 영화가 차혁이를 닮았다 생각했다. 내가 뚫고 지나갈 수 없는 외로움을 가진 아이라 느껴졌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뭔가를 종알댔다. 내 눈에 초점이 없어진 이유는 너무 많은 게 그때의 내 안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난 그걸 쏟아내기 위해 모르는 사람들과 섹스를 하고 어차피 앞으로도 모를 그 사람들에게 내 속을 짓누르는 모든 것들을 조금씩 흘렸다. 그들은 내가 섹스만 해준다면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해도 다 들어줬다. 십 대의 몸이란 그렇게 위대한 힘을 가진 것이었다. 그들이 내게 속마음을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언제나 그 속마음이 내게 들리는 듯했다. 어린아이를 어르고 달래듯, 사탕을 내미는 어른의 마음 같은 것.

 그러나 차혁이가 내게 보이는 반응은 조금 독특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거야 같았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입을 열면 차혁이의 눈과 귀와 세포가 내게 반응하는 게 느껴졌다. 축 쳐져있던 모든 것들이 벌떡 일어나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말 끝에 내뱉는 반응은 위의 “그렇구나.”와 같은 식이었다. 그런 반응은 내게 처음 느껴보는 편안함을 줬다. 애초에 위로든 충고든 헛소리든, 아무튼 어떤 에너지적인 반응을 기대하고 내 마음을 흘려왔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난 신이 나서 조금씩 흘리던 것을 기어코 쏟아내고야 말았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그곳에 계속 있고 싶었다. 그랬기에 계속 있었다, 4년 동안.

 처음 얼마간은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먹고살 수 있었다. 차혁이는 부모를 잃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이건 그냥, 마법 같은 거라고 했다. 예전에 여의도에서 일했던 값이라고 거짓말할 때도 있었다. 나는 그냥 믿었다.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대책이 없었고 미래가 없었고 ‘나 자신’이외에는 어떤 것도 문제 삼지 않는 아이 였다. 

 그러나 차혁이가 자신을 내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나 자신만 바라보며 살 수 없게 됐다. 어느 날 같이 영화를 보다가 차혁이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슬픈 영화도 아니었고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감정과 눈물에 나는 당황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허공을 바라보며 차혁이 말했다.

 “내가 우리 아빠를 죽였어. 그래도 넌 내가 좋냐?”

 나는 눈물이 쏟아졌다. 그 죄책감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에. 응 좋아, 좋아, 괜찮아 너무 좋아, 고마워, 좋아해 차혁아. 난 울면서 차혁이를 안아줬다. 차혁이가 실제로 아버지를 죽인 건 아니었다. 그저 아픈 아버지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홀로 된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셨을 뿐이었다. 그러나 차혁이는 아버지를 자신이 죽였다고,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새까만 저주를 퍼붓고 살아왔던 것이다. 나 또한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나 또한 새빨간 저주를 나 자신에게 마구 퍼부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엄마를 실망시킨 나 자신에 대한 저주. 희라가 아닌 전혀 다른, 빨갛게 얼룩진 나로 변해버린 것에 대한 원망과 경멸. 부모에 대한 죄책감은 생각보다 아이를 더 아프게 한다. 다 자라지 않은 아이에게 부모란, 내 생명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자기 자신처럼 여기는 것을 아이들도 다 느끼기 때문에. 그래서 또 화가 난다. 나도 내가 맘대로 안 되기에. 부모의 사랑이 더 이상 따뜻하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자유롭고 싶고, 다 떨쳐내고 싶은, 그 욕망의 시작.      

 차혁이가 스스로에 대한 저주를 내게 내비친 뒤부터 나도 좀 더 은밀한 내 비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섹스를 시작하게 됐는지, 섹스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까지도……. 사실 그때의 나도 말하기 전엔 알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내 안에 쌓여있던 그 빨간 핏덩이들을 쏟아내니 그제야 내게도 보였다. 열네 살 때의 내가 성폭행을 당했었고 그게 시작이었다는 것을. 시작점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성폭행인지는 몰랐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맞고 터지고 비명을 지르는 그런 종류의 일은 아니었기에. 내 발로 따라갔고 나는 그냥 얼어있었다.

 그 날 집에 오던 풍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회색 필름이 한 겹 씌워진 듯 어두운 지하철의 풍경과 천장의 파이프들과 돌처럼 굳은 사람들의 표정. 사람들, 세상은 변한 게 없었지만 내 눈은 변했고 내 정신은 변해있었다. 처음 혼자 지하철을 타본다고 설레 하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그때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그 설레 하던 나를 저주했다. 겨우 겨우 집에 와 보니 엄마는 걸레질을 하며 “왔어?” 하고 나를 맞이했다. 엄마를 보자 엄마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친구들이랑은 재밌게 놀았냐는 엄마의 말에 처음으로 엄마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그리고 방문을 걸어 잠갔다. 조용한 방에 혼자 있으니, 엄마의 토끼처럼 놀란 눈이 계속 떠올랐다. 걸레질하던 둥근 등이 떠올랐고 “왔어?”하는 밝은 음성이 귀를 맴돌았다. 그것들은 졸지에 회초리가 되어 내 몸 이곳저곳을 때려댔다. 나는 비명을 질러댔고 엄마는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왔다. 그런 엄마에게 “나가!”라고 소리쳤다. 엄마는 속절없이 울며 방을 나갔다.

 그 일이 도대체 무슨 일인지, 열네 살의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엄마한테는 물론 주변 친구들한테도 절대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채팅 속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그들은 내게 나름의 답을 줬다. 내가 자초한 일이고 호기심이 만든 일이라고. 누군가는 나를 경멸했고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를 이해한다는 식으로 내게 그들이 생각하는, 흔히 말하는 ‘비행청소년’의 굴레를 씌웠다. 나는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내 감정도, 가치관도, 아무것도 분명한 게 없었다.

 그래서 결론은, 그들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때론 일말의 희망을 갖고 나를 진심으로 위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봤지만 그때의 내 판단력이란 딱 그 나이만큼의 얄팍한 수준이었다. 섹스는 반복되고, 또 반복되었다. 얼룩은 하나씩 늘어갔고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을 경멸하고 비하했다. 그래서 또 섹스를 했다. 비유하자면 나는 나를 섹스라는 거대한 짐승에게 먹잇감으로 던져 준 셈이었다. 섹스를 하는 나와, 그런 나를 싫어하는 또 다른 나, 그리고 둘 다를 벌주기 위해 나는 또 섹스를 했다. 내게 섹스는 나의 정체성이자 위로이자 체벌이자 악마였다. 

 어쨌거나, 이런 이야기를 해도 차혁이는 언제나 “그랬구나.”였다. 이젠 그 말이 더 이상 내 말문을 열지 못하겠다 싶은 그즈음 차혁이는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단 한 번도 내가 들어보지 못한 말을 내게 해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처음 지하철을 혼자 타서 설레 하는 그때의 나로 돌아갔다. 위로도, 충고도 아닌, “그랬구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말투로 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속에, 차혁이가 그 말을 하며 내뱉은 따뜻한 숨 속에 푹 파묻히고 싶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에 동의할 순 없었어도 그냥 그 말과 그런 시선이 내겐 너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내 자기 비하와 경멸은 멈추지 않고 종종 튀어나왔지만 더 이상 짓눌리진 않았다.      

 그제야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 말고 다른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외출도 했고 찰흙놀이도 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전부 되돌려 받고야 말겠다는 듯 유치하게 놀았다. 밤마다 편의점 음식을 잔뜩 사서 놀이터 미끄럼틀 위해서 파티를 벌였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했고 같이 웃었다. 일은 둘 다 하지 않았으니, 24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언제부턴가는 차혁이와 나는 어떻게 해도 떨어질 수 없는, 어쩌면 한 명의 사람이 둘로 나눠져 우리가 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고 생각은 굳은 믿음이 되었다. 누구보다 편히 기대고 나눌 수 있는, 나 자신보다 편한 그런 사이. 그래서 내 왼쪽 날개와 차혁이의 오른쪽 날개에 볼펜으로 날개를 그렸다. 모든 걸 함께하며 나누었다. 우리 둘만의 고립된 세상 속에서 마음껏 뛰놀았고 마음껏 포옹했다. 

 멈춰있던 세계에서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400만 원의 자립금이 차혁이의 통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제 스무 살이 되었으니 더 이상 나라에서 돈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나는 대책도 미래도 없었기에 그저 400만 원이라는 큰돈 앞에서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매일 피자를 시켜먹었고 DVD를 사들였다. 당연히 잔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띄게 줄었다. 나는 현실을 외면하기에 급급했지만 나보다 배고픔에 대해 알고 있었던 차혁이는 조금 달랐다. 어느 날부턴가가 차혁이는 웃음이 줄었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내게 일을 해 보겠다고 했다. 내가 없었으면 그냥 그 돈을 다 쓰고 굶어 죽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 뭔가 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네가 없는 시간 동안 나 혼자 여기서 뭐해……. 바퀴벌레도 네가 잡아줘야 되고 누워 있을 때 네가 일으켜줘야지…….”

 차혁은 한숨을 쉬며 일 이야기를 그만뒀다. 처음부터 차혁이는 그런 아이였다. 나를 이길 수 없는 아이였다. 나도 차혁이의 말이 백번 맞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에게 각자의 시간이 생기는 것이 두려웠다. 모든 걸 나누고 모든 걸 함께하는 그런 시절은 그걸로 끝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한테 차혁이는, 부모이자 친구이자 선생이자 아들이었고, 나 자신 그 자체였다. 차혁이가 내게서 떨어져 있는 시간은 팔 한쪽이 없거나 두 눈이 없는 시간일 것이고 그게 너무 무서웠다. 차혁이도 그런 내 마음을 알기에 나를 도닥였다.

 그리고 마침내 통장 잔고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줄어들었고 우리는 매일을 라면으로 연명했다. 라면이 너무 지겨워서 하루는 쌀과 콩나물을 사서 이미 가스가 끊긴 가스레인지 대신에 전기밥솥에 콩나물을 데쳐 만든 콩나물 무침을 반찬삼아 밥을 지어먹었다. 서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먹는 것에 집중하여 콩나물과 밥을 미친 듯이 내 몸속으로 쑤셔 박았다. 신선한 콩나물의 식감과 따뜻하고 포근한 밥에 감탄하며. 살아 있다는 것을 혓바닥과 목구멍과 온몸으로 느끼고 또 느끼며. 처음 밥을 먹는 아이처럼 오로지 몰두하며. 그 날 서로를 보고 웃는 걸 마지막으로 나는 매일 울었고 차혁이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우리는 다투는 날이 잦아졌다. 서로 말을 못 알아듣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는데 이젠 말을 해도 서로를 몰랐다. 화를 내고 울었다. 맨발로 뛰쳐나갔고 잠옷 바람으로 쫓겨났다. 더 이상 포옹은 없었고 어깨에 그려진 날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제야 난 우리가 얼마나 얄팍한 존재인지 알아버렸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하는 나약하고 얄팍한 존재.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는 없었다. 차혁이는 곧 일을 시작했다.      


    

4. 차혁     


 2015년 6월 26일, 죽기 전에 유서를 남깁니다. 가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떠나고 나서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두려워 남기는 부끄러운 글입니다. 

 희라를 욕하지 말아 주세요. 희라는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만들어주고 함께 누려준 소중한 사람입니다. 희라를 욕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희라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철저히 미워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디 희라를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세요. 

 내 인생에도 빛은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정말 아이처럼 즐거워했지요. 지나온 시간은 아무것도 아닌 양 잊어버렸습니다. 다가올 시간 또한 잊어버렸어요. 아이처럼 모래성을 짓고 또 무너뜨렸습니다. 언제 그 생활이 무너질지는 생각하지도, 염두에 두지도 않았어요. 우리는, 그냥, 행복했습니다.

 어쩌면 그 시간이 내겐 너무나 큰 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난 어린 시절에도, 단 한 번도 그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내 인생은 그냥, 그렇게 어두웠고 축축했고 메말랐고 차가웠고 눅눅했습니다. 누군가와 그 눅눅함을 나누고 싶었어요. 그게 늪이라면 함께 빠져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희라는 기꺼이 그렇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곳은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게 되었지요. 겪어보지 못한 따뜻함이었어요. 아니, 사실은 착각한 겁니다. 세상은 내가 겪어온 것만큼, 혹은 그보다 더 눅눅하고 차가운, 외로운 곳인데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이야기할 때마다 왜 그렇게 자신을 쳐다봤는지 희라는 가끔 묻곤 했습니다. 그땐 그냥 웃어넘겼는데,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말은 희라가 너무 신기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말하고 웃는 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살아생전엔 더는 보지 못할 광경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난 철저히 혼자였고 철저히 버려졌습니다. 어릴 땐 엄마에게, 조금 더 커서는 아버지에게, 아니 나 자신에게. 

 아버지가 정말 밉고 또 죄송스럽습니다. 내가 엄마를 닮은 게 그렇게 죽을죄였던가요. 9살짜리 내가 다닐 수 없는 피아노 학원 앞을 얼쩡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른 게 그렇게 큰 죄였냐고요. 나를 버린 엄마가 유일하게 집에서 가지고 간 것이 악보집이었다고 그랬지요? 네 엄마 따라서 집을 나갈 거냐며 나를 죽을 듯이 패대기쳤지요? 아니요, 내가 엄마였다면 주먹질에 당장에 집을 뛰쳐나갔겠지만 난 당신 아들이잖아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 후드려 패도, 난 당신이 아니면 살 수 없었어요. 난, 고작, 9살이었단 말이에요.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너무 어린아이였단 말이에요. 

 그렇게 나를 때리던, 때로는 사흘 밤낮을 안 자고 나를 호되게 몰아세우던 당신이 아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때가 기억나진 않지만 그 뒤에 학교에 있을 때면, 당신이 행여나 내가 없을 때 죽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조마조마하던 기억은 나네요.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서는 작은 손으로 앙상한 당신의 다리를 주물러댔었죠. 당신이 가끔 무언가를 정리하듯이 창밖을 바라볼 때면 어쩐지 그대로 창문 밖으로 사라질 것만 같아서 엉엉 울어대곤 했어요. 아빠, 죽지 마. 가지 마. 그리고 내가 조금 더 자란 어느 아침, 당신은 입가에 조금 피를 흘리곤, 그대로 죽어버렸더군요.

 사실 희라를 만나기 전까지 당신을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아니, 생각하려고 애를 써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어요.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가끔 복지관 아줌마가 쌀을 가져다줬고 겨우 집 앞 편의점에서 인스턴트 반찬이나 라면을 사 오는 날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습니다. 그렇게 나를 때리던 강한 당신은, 나한테 그만큼 강한 보호막이었나 봐요. 세상은 온통 무서운 것뿐이었습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숨만 쉬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희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당신을, 나를 기억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희라야, 정말 고맙다. 널 만나서 사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되었어. 그런데 가끔은, 네 기대에 맞추는 게 너무 힘들었다. 너는 나와 완전히 하나가 되고 싶어 했잖아. 그게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네가, 날 버릴까 봐. 정말 최선을 다해 맞췄어. 그리고 힘들지만 정말 행복했어. 그냥 나만 맞추면, 모든 건 아무 문제없이 흘러갔어. 사실은 나 찰흙놀이도 재미없었고 밤중에 놀이터에서 노는 것도 춥고 재미없었어. 난 그냥 따뜻한 방에서 너랑 영화나 보고 싶었어. 그렇지만, 네가 웃잖니. 언제까지나 맞춰주고 싶었어. 넌 가엾고 깨끗한데, 세상이 널 너무 힘들게 했잖아. 내가 널 언제까지나 품어주고 맞춰줄 수만 있다면. 그게 내 유일한 소원이었어.

 하지만 우리는 살아나가야 했지. 난 일을 해야 했어. 너무 무서웠지만, 널 잃는 게 더 무서웠거든. 내가 널 먹여주고 재워주지 않으면, 네가 날 떠날까 봐……. 그래서 그 일을 시작했어. 그곳은 온통 새까만 남자들이었고, 거칠고, 단순했어. 부드럽고 말랑한 너와의 소통에 익숙해 질대로 익숙해진 내게 그건 고문이나 다름없었어. 그렇지만, 그래도, 집에 가면 웃는 너를 볼 수 있으니까 참았어.

 그런데 언제부턴가 넌 더 이상 웃지 않고 울기 시작했어. 칭얼댔고 잠을 이루지 못했지. 잠들지도 않았는데 넌 이미 악몽을 꾸는 것 같았어. 내가 없는 시간 동안 넌 점점 메말라가는 듯했지. 그런 너를 보는 건 정말…….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어. 그래도 넌 돌아오지 않았어. 서로만 바라보고 지낼 수 있었던 그때에 너무 길들여져 있었던 거야. 그런 너를 되돌릴 방법은 내가 일을 그만두는 것뿐이었어. 하지만 그럼 너는 또 배가 고프다고 울 거잖아……. 왜 너는 그렇게 항상 우는 거니. 나 정말 힘들었어. 힘들었고, 이젠 방법이 없는 것 같았어. 예전의 너와 나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없다고. 그때 너랑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어.

 우리가 항상 나누고 만들던, 우리가 죽고 나서 살게 될 우리 세계 말이야. 우리는 온 우주를 떠다니자고 약속했지. 잊혀진 영화 필름들이 쌓인 영화별에서 하염없이 영화도 보고, 흘러간 바닷물이 모이는 바다별에서 벌거벗고 수영하자고도 했지. 절대 손 놓지 말고 언제 어디든, 함께 하나가 되어 다니자고. 나 이제 이 세상 속에서 그때만을 기다릴 자신이 없어. 일터에서 반장은 내가 미운가 봐. 너도 이젠 내가 미운 거 같아. 난 더 이상 네 말을 하염없이 들어줄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난 먼저 그곳에 가 있을게. 이 곳은 어디에도,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거 같아. 네 옆도 이젠 편안하지 않아. 더는 먹고살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 나 먼저 가 있을게. 더는 네가 울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 먼저 가버리는 나를 부디 용서해줘. 너는 좀 더 살면서 좋은 것도 많이 보고 많이 웃고 또 많이 울다가 나한테 와. 얼마가 걸려도 네 이야기 내가 다 들어줄게. 네가 살면서 경험한 것들 내가 다시 다 품어줄게.

 미안하고 고마워. 사랑한다, 희라야. 안녕, 희라야. 안녕, 안녕. 

이전 17화 어떤 피해자의 삶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