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손 풀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단비 Jul 25. 2022

2022.07.25 손 풀기

아프다. 한 방향으로만 서있던 나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하중은 계속 실린다. 걸을 때마다 왼쪽 골반과 무릎과 발목에 계속해서 무게가 실려버리는 것이다. 내 왼쪽 다리는 그만 짧아져버렸다.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 고통은 절뚝거리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나의 절뚝임을 사람들은 비웃었다. 비웃고, 또 비웃고. 초승달 모양의 눈과 입은 낫처럼 나를 후벼 팠다.

서 있을 밖에. 약을 먹는다. 약기운이 돌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나는 잠시 주저앉는다. 아니, 잠시인가? 주저앉음은 멈출 줄을 모른다. 그런 내 엉덩이를 걷어찬 건 시계였다. 시계의 굵직한 시침이 내 엉덩이로 내달려왔다. 멈출 줄 모르는 건 나의 주저앉음, 그리고 저 시침. 차이고 다시 주저앉고를 반복했다. 시침과 분침은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내달리고, 또 돌아왔다.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내 눈은 돌아가는 바늘을 따라가고 있었다. 바늘은 정확히 북쪽과 남쪽을 가리켰다. 그러나 나는 강의 서쪽 어딘가에 사는 사람. 날 위한 나침반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오만한 생각. 날 '위한' 것이 존재할 거라고 믿었다니. 후벼 파진 상처를 바라본다. 상처에서는 비릿한 새벽의 냄새가 났다.

새벽의 안개는 날카로운 원을 그리고 있었다. 원의 점과 점은 서로 만났다. 살포시 포개진 점과 점은 내 눈동자를 따라왔다. 데굴 굴러가는 원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의미 없게도 멈출 줄 모르는 것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고. 짙은 갈색의 하늘에선 나무 냄새가 났다. 쩍쩍 갈라진 마른 장작의 냄새가 온 사방에 진동을 했다.

나는 절뚝이며 나무 냄새 아래를 걸었다. 빛은 나무의 갈라진 틈 사이로 살짝 보일 뿐이었다. 낫은 나뭇가지 하나를 베어냈다. 톱밥 가루가 사방에 반짝이며 흩뿌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없었다. 있는 것은 내 두 손과 두 눈과 가여운 두 다리뿐. 초승달은 하늘에 걸려 있는 하나로 족했다.

애써 지워내려 했다. 날카로운 안개와 날 비웃는 낫과 시계와 나침반을. 지워내려면 질끈 감아야 한다. 그러나 멈추지 않으려면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있어야만 했다. 붉은 땅은 내게로 돌진해왔다. 질끈 감고 싶으나 나는 자유로울 용기가 없었다. 내 시선은 갈색과 붉은색의 경계, 그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점으로. 나는 여전히 절뚝이고 있다. 그러다 오늘, 발견한 것이다. 왼쪽 다리의 끝, 발 뒷꿈에 맺힌 4cm의 굳은살을. 뻔하게도, 나는 그만 감격하고 말았다. 여전히 다리는 아팠다. 골반은 뒤틀려 있었다. 그러나 내 발에는 대견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네 살짜리 아이가 되었다. 아이가 보고 싶어 하는 할머니는 더는 없지만 정오의 냄새에서 할머니를 맡을 수 있다. 여름 볕의 타오르는 공기 속에서. 공기는 기쁘게도 나를 둥글게 안아준다. 웃는 할머니가 되겠다는 거대한 야망은 여기,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다.

초승달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슬픈 것들을 사랑하되 나는 슬퍼지지 않을 거야. 남도, 나도 찌르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해도 내일의 나는 또 슬퍼할 수 있겠지. 그러나 시계는 지금 이 순간에 멈춰 있는걸. 코를 통해 들어온 타오르는 공기는 내 피에 흐르고 있는걸. 기억하면 된다. 기억할 거야.

나는 하늘이 짙푸르게 변해가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곧 캄캄해지겠지. 기다림은 돌고 도는 것이다. 각오가 되어 있다. 캄캄한 나무 아래에서 기다릴 각오가. 기다리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시 시작점을 향해 돌아올 때까지. 그리고 마침내 내 얼굴엔 달빛이 비칠 거다. 반달 모양의 입은 캄캄해진 하늘에 걸릴 것이다. 달라질 것 없는 것들 안에서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달 하나를 나뭇가지에 그렇게 걸어 두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2.07.07 손 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