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은 한 시간 하고 28분 정도 남아 있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자리에서 일어나야지. 창밖엔 뜬금없게도 한여름의 크리스마스트리가 늘어서 있었다. 더운 날씨에 전구들까지, 너희가 고생이 참 많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건만 고생은 여전했다. 오늘 아침엔 하늘과 땅이 제자리를 잃었다. 소용돌이치며 뒤섞여버린 세상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넌 곧 죽을 거야. 그건 네 의지가 아니지. 심지어 지나치게 직설적인 그 단어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말이야.
결국 그런 것이다. 예전에 생각했던 그것. 죽고 싶다는 마음보다 무서운 것은 죽을 수도 없다는 마음이고,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곧 죽을 것 같다는 감각. 언제나 감각은 마음을 이기는 법이다. 마음은 생각을 이길 수도, 비길 수도 있겠지만. 생각이 마음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안 보이게 할 뿐.
순식간에 감각에 빠져든 나는 소용돌이치듯 그 감각에서 헤어 나왔다. 다른 감각을 느껴버린 것이지. 마음과 생각은 공존할 수 있으나 감각은 공존할 수 없다. 아프면 아픈 거고, 간지러우면 간지러운 거지. 뜨거우면 뜨거운 거고 차가우면 차가운 것처럼.
감각에 예민한 나는 지나치게 잘 놀란다.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내 글이 직설적인 것도 마찬가지. 내 인생의 과제는 주눅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했더니, 글을 쓸 때는 주눅 들지 않더라는 말을 들었다. 난 주눅 들지 않고 글을 쓰지. 직설적으로 찌르는 글을 쓰고야 마는 것이다. 내 글을 보면 누군가는 뜨악해하고 누군가는 무척 좋아해 준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는 거야.
주눅은 결국 모두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모두가 아니더라도 나를, 혹은 나의 일부분을 좋아해 주는 누군가를 생각하니 주눅이 들지 않아. 그러니까, 사람은 자기를 좋아해 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법이지. 그게 설령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일부일 뿐이라 하더라도 말이야.
그래서 나는 무척이나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상처입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 상처를 핥을 혀가 필요할 뿐이야. 소용돌이처럼 뒤엉킨 키스의 기억은 날 살아있게 만드는 걸지도 몰라. 뭐야, 짐승이네? 나는 아무래도 동물인 것 같아.
고생은 여전하지만 전구에 뒤엉킨 나무들보다야 낫지. 내가 식물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손과 발과 이빨이 있는 동물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식물들도 오르가슴을 느낄까? 꽃이 열매를 맺는 순간에 말이야.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인 나는 식물의 오르가슴에 아주 잠시 관심을 가졌다가 그만 두기로 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상관없는 일에 신경을 끄면 된다. 문제는 어디까지 상관이 있느냐는 것. 내 세계가 넓어질수록 상관있는 것들이 늘어가겠지. 이 세계의 해가 지고 있다. 날이 조금씩 시원해지고 있지만 나무는 여전히 불타고 있다.
무슨 일은 이곳에서 시작됐다. 주눅과 행운과 사랑과 나무의 사이에서. 이 세상은 사랑으로 이뤄져 있는 게 아닐까? 망상 속의 너는 그렇게 물었지. 맞아, 그럴지도 몰라. 내 대답에 너는 반가운 눈을 떴다. 기억이 선명해서 그것도 참 다행이야.
오만하게도 그만둘 생각을 하다니. 너는 여전히 주눅과 행운과 사랑과 나무의 사이에 있는데 말이야. 감각이 마비된 탓이지. 어쩌면 하나의 감각만을 믿고 있었던 탓일지도. 네 옆에선 모든 감각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러니 나는 겸손해질 거야. 오만을 부리지 않을 거다. 주어진 만큼, 주어진 대로. 기왕이면 사랑의 근처에 머물면서. 사랑의 상징인 크리스마스는 한여름에도 뜨겁게 살아남아 있으니까. 살아남자. 사랑의 근처에 머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