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길 위에 선 여자를 보았다. 멀리서 봐도 앳돼 보였고, 옆에는 남자가 서 있었다.
봄이라지만 아직 쌀쌀한 날씨에 반팔, 잠옷 바지 차림의 여자는 맨발로 한참을 서 있었다.
두툼한 점퍼를 입은 검은 남자 옆에 서있어서 그런지 여자의 체구는 작아 보였고 맨발은 더 초라해 보였다.
집에 들어가서 장 본 것을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고, 거실을 치우면서도 불안에 시달렸다.
쓰레기봉투를 접어서 서랍장에 넣고 화장실 슬리퍼를 들고 현관으로 가는 나를 애인이 말렸다.
“경찰에 신고하자”
"신고할 때 하더라도 신발은 주고 올게."
"그럼 같이 가자."
애인이 내 뒤를 따라나섰다.
나는 그 순간 애인이 나를 말리지 않고, 선뜻 따라나섰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또 안심했다.
그 순간 남의 일이라고, 끼어들지 말라고 말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화를 내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아주 많이 서글펐을 것이다.
물론 나의 집이 노출되고 평소에는 혼자 생활하는 나를 걱정하는 그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가 거리에 맨발로 서 있는 여성이나 아이한테 시선을 못 거두는 사람이길 바라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구성원은 나 하나만으로도 피로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복잡한 감정이 짧은 순간에 스쳐갔다.
여자에게 다가가서 슬리퍼를 내려놓자, 남자가 저지하는 듯하더니
내 뒤에 선 애인이 바짝 다가서는 것을 보고 이내 말과 행동을 멈춘다.
“우리 집에 가서 물 한 잔 마시고 올래요?”
내 질문에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어깨를 떨면서 고개만 세차게 끄덕인다.
가까이에서 본 여자는 더 어려 보였다. 많아봐야 21살쯤
나는 여자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물을 따라 주고, 진정시킨 뒤 무슨 일이냐고 묻자.
다투다가 남자가 나가서 따라나섰는데, 이야기를 하다가 무서워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빨리 돌려보내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냥 모든 게 무섭고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상대를 너무 사랑하지만, 상대의 윽박이나 눈빛이 두려울 수 있다.(충분히)
혹은 상대가 사랑해서 그렇다며 하는 언행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어떤 이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나이를 막론하고 그런 것을 인지하고 관계를 끊어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고,
상상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는 여자의 전화번호와 집주소를 받아 적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통화버튼만 누르고 끊으라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절대 혼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여자는 울음을 멈추고 내 카디건을 입고 우리 집을 나섰다.
애인과 저녁을 먹으면서 그런 대화를 했다.
“남자가 그러던데, 싸우다가 헤어지자고 하니까, 여자가 따라 나왔대.”
붙잡으려고 나왔는데, 이야기를 하다가 무서워질 수도 있어.
너무 사랑하는데 그의 말끝에 붙는 욕이나, 우악스러운 손길에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도 있어.
생각보다 많은 여자나 아이들이 가족, 애인 손에 죽어 간다는 것을 자기는 생각도 안 해봤을 걸
애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사실 무지해.라는 대화를 나누며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적어도 그 순간 ‘나도 너무 많은 위협에 무지하다’는 말은 사실이고 진심이었다.
연인과 다투다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것.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즉각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것,
혹은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돌아서는 상대를 붙잡아 세우는 것.
다툼 끝에 상대를 집 밖으로 쫓아내는 행위 자체가 권력이라는 것을 그날의 우리는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다.
나는 길 위에 맨발로 선 여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보고 자랐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맨발로 서성이던 여자
앞섬이 다 늘어진 티셔츠를 추스르면서 정작 슬리퍼 한 짝이 없던 여자
그런 여자들은 동네에서 시장 골목에서 종종 목격했다.
어린 시절 나는 어쩌면 그들이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슨 잘못을 했을까. 왜 벌을 받게 됐을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한 번도 엄마나 당사자한테 물어본 적은 없었다.
본능적으로 그런 것들을 물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쉬쉬하고 잡아끄는 우악스러운 엄마의 손길이나, 모른 척하고 길을 돌아가던 어른들의 행동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관습적으로 배우게 된 그런 것들.
한 번은 그런 적도 있었다.
그날 길에서 만난 나이 또래의 어린 여자아이와 방속국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유난히 손이 작고 하얗던 아이였는데, 하루는 회사 카드를 들고 커피를 사러 가는 길에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친하지도 않은 나한테)
“언니, 아빠한테 맞아본 적 있어요?”
“아니”
“언니, 제가 7살 때 아빠가 비디오 빌려오라고 만원을 줬어요. 그때 제 것도 빌려서 돌아갔는데 그 비디오로 싸대기를 맞았어요.”
나는 그 순간 너무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오래전 일이지?”
“그렇긴 한데 별반 다르지 않아요.”
“그럼 독립을 하는 건?”
“남친들도 비슷한 거 같아요.”
이 이야기를 애인에게 했을 때, 그는 “그게 아마 구호의 시그널이었던 거 같아”라고 말했다.
그 시절에 나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아니 인지했다 하더라도 또래와 다르게 어딘가 어둡고 자꾸 슬픈 이야기만 하는 아이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런 아이들에게 "불행을 옮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그런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음으로서 동조했거나, 옮겼거나 혹은 전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길 위에서 울고 있는 아이나 여자를 보면, 그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말을 건다. 그날도 수많은 날 중 하루였을 뿐이다.
이틀 튀 여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잘 해결되었고, 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물리적 폭력이 아니더라도)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사람은 절대 본인의 영역 안에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순간이 온다면 반드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미세먼지는 많지만 날씨가 따뜻하니 좋은 계절을 만끽하자는 문자를 주고받았다.
꼭 그러겠다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좋은 계절을 길 위에서 맨발로 보내는 사람이 없길, 누구도 아프지 않게 또 한 계절을 났으면 좋겠다. 올 한 해도 죽지 않고 살아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