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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나모 May 17. 2021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44/100

5월의 토요일

5월의 토요일.


이곳의 날씨가 서울의 날씨와 비슷해서 5월이 가깝게 느껴진다. 고정관념이 무섭다고 2년이 다 되어가는 남반구의 생활에도 12월의 여름이나, 8월의 겨울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여름도 지나고, 밤에는 잠결에 포근한 오리털 이불을 몸에 칭칭 감고 자게 된다. 한국에서의 5월도 이랬던 거 같다.


한국의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곳의 맑은 하늘이 감사하면서 안타깝다. 사람은 모든 것에 빨리 익숙해진다고 생각했는데 맑은 하늘, 저녁 타는듯한 노을은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자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도대체 익숙해질 틈을 절대 주지 않는 거대한 존재라는 것이 놀랍다.


서울에서 살 때는 계절의 변화를 쇼핑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여름옷과 겨울옷을 쇼핑할 때면 계절이 간다는 것을 느꼈고 뉴스에서 단풍놀이를 하러 가는 사람들의 소식을 들으면 나도 뒤질세라 친구들과 단풍놀이 약속을 잡으며 계절의 변화를 충분히 느낀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기술로 자연의 힘에 거스르며 지어진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틈틈이 자연을 느끼며 살다 이곳에 오니 온몸으로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가 가끔은 벅차기도 하다.


집안까지 침투해서 짹짹거리던 게코는 요즘 자취를 보기 힘들다. 아마도 여름이 돌아 오면 다시 작은 게코들이 돌아다니며 곧 조금은 두려운 큰 게코로 성장할 것이다. 몇 달 전부터 길가에서 볼 수 있었던 새끼오리는 두 배만큼 자라 이제 제법 오리 소리를 낸다. 수백 마리의 오리들이 호숫가에 앉아서 노는 모습은 아마 겨울이 오기 전까지만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 보였던 큰 보라색과 검은색의 나비는 이제 찾을 수 없고 대신 작은 노란 나비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지나간다는 것이 단순히 온도가 변하고 나뭇잎이 자라고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자연과 조금 가까워지고 보니 그동안 내가 놓친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계절과 같이 나의 일주일은 조금씩 다른 듯 매일매일 비슷하게 흘러간다. 반면의 J는 금요일이 되면 퇴근하는 발걸음부터 신이 나 있다.


고작 30분쯤이지만 주말에 늦잠을 자고, 함께 아침 산책을 다녀와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나면 나는 그제야 오늘이 주말임을 크게 느낀다. 강아지 산책을 핑계로 아침을 일찍 재촉한 마음이 미안해서, 낮잠 자는 J는 절대 건들지 않는다. 나는 그간 익숙해진 낮잠이지만 길어봤자 한 시간 남짓일 그 시간이 J에게 얼마나 달콤할지는 잠자는 얼굴을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주말의 낮잠 그 단어 자체가 달콤하다. 그렇게 오늘도 주말의 하루가 반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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