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2. 08(토)
초등학교 2학년, 전학을 갔다. 새 학교의 첫 등교날, 아빠는 학교의 이름을 일러주며 이 동네 애들은 다 그 학교로 등교하니 책가방 메고 걸어가는 아이들을 따라가면 될 거라고 했다. 첫 등굣길인데 왜 함께 가주지 않는지, 변명도, 설명도 없어서 ‘전학이란 건 이렇게 곤란한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그런 내 맘도 모르고 거기에 가까워서 누구나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아빠가 말하는 ‘누구나’에 속하지 못할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홀로 첫 등굣길을 나섰다. 집을 나서면서도 마음을 졸였는데 이내 아빠의 말대로 책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아이들이 하나둘 보였다.
집에서 학교까지 아이의 걸음으로 20여 분 남짓. 책가방을 멘 아이들의 뒤를 쫓아가면서도 아빠 말대로 정말 혼자 가도 괜찮은 걸까, 선생님들이 내가 누군지 모르면 어떡하나 곤란하고 곤란한 상황을 상상하느라 마음이 분주했다. 학교 가는 길엔 외국인 학교가 있었는데, 그 불안한 와중에도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모아이 석상처럼 큰 얼굴에 피자 한 조각을 들고 있는 마네킹이었다. 넙적한 주걱턱에 까만 선글라스까지 끼고 줄무늬 정장 차림을 한 모습이 꽤 기괴해서 한눈에 ‘저건 마피아, 악당이구나’라고 생각하게 했다. 괴이한 모습을 한 마네킹 옆 간판에는 반듯한 서체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시카고 피자’.
'시카고에 마피아가 많나? 악당을 웃게 만드는 피자라니. 대체 어떤 맛이지... 외국사람들이 먹는 치즈는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난다는데, 정말일까?' 학교 가는 길에 한 번, 집에 돌아갈 때 한 번씩 매일 피자집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당시 우리 집은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 쓰러져가는 낡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정말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때는 연탄값을 걱정하며 수제비를 끓여먹던 시절이라 차마 부모님에게 피자가 먹고 싶다고 조르지 못했다. 매일매일 피잣집을 지나칠 때마다 어른이 되면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나는 치즈가 가득 올라간 피자를 실컷 사 먹겠다고 수차례 다짐했다. 아니면 정말로 시카고에 가서 진짜 미국 사람들이 먹는 피자를 먹어보던가.
동네에 초등학교가 하나뿐이다 보니, 부잣집에 사는 친구들의 생일 파티 초대장을 받기도 했다. 생일 파티에서 피자를 먹어보기도 했지만 가난을 티 내고 싶지 않아서 관심 없는 듯 조금씩 먹었다. 얻어먹는 피자도 좋았지만, 시카고 피자 가게에 가족끼리 가서 사 먹는 피자를 맛보고 싶었다. 쉬는 시간에 ‘어제 부모님이랑 피자 먹으러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부러웠다. "맛있었어?"라는 질문에 "그냥 그랬어"라는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오면 괜스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맛있었을 것 같은데.. 그럴 것 같은데.
매년 생일 즈음, 가족과 함께 시카고 피자에 가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연희동의 낡은 아파트를 떠날 때까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당장 공과금 내기도 급급했기에 생일날 뭘 하고 싶고, 뭘 가지고 싶은지 아무도 궁금해해주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이삿짐 트럭에 올라타던 날, 서운한 마음에 '악당이 좋아하는 피자 따위... 안 먹어도 괜찮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른이 되어 연남동에 신혼집을 꾸렸다. 첫 결혼기념일이 오기 전에 임시 보호하던 포카를 입양했고 매일 부지런히 동네 산책을 다녔다. 연남동에서 연희동까지 이어진 길 사이사이를 걸으면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한 번은 포카와 안산까지 도보로 산책을 다녀온 적이 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까지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걸으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나더라. 그런데! 시카고 피자집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의 오랜 기억만큼이나 낡은 모습이었고, 가게의 크기도 기억보다 작았다. 하지만 원목 테이블과 의자는 어린 시절 매장 밖에서 봤던 그대로였다. 그리고 이제 마네킹은 사라졌지만, 로고 속에 그려진 마피아 아저씨의 모습은 무척 평범해 보였다. 그간 살면서 진짜 악당 같은 사람을 여럿 만나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토토와 추억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토토는 엄마가 해주셨다는 배추전을 그리워했고(지금도 명절마다 배추전은 해주시지만!), 나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시카고 피자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토토가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먹고 싶어 했던 음식 리스트를 토토가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뒀었다는 걸 알게 됐다).
어제저녁 토토가 '이따가 집에 갈 때 시카고 피자 사 갈까?'하고 카톡을 보내왔다. 나는 메시지를 보고, '안돼, 그건 매장에서 먹어야 해!'라고 답했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저녁 외식이 정해졌다. 약속 시간을 정하고 포카 밥을 챙겨준 뒤 연희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기분이 묘했다. 피자집 앞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데 먼저 도착한 토토가 보였다. 피자를 먹고 가겠다는 말에 사장님은 황급히 테이블 위에서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던 걸로 보이는 신문지와 태블릿 피시를 치워주셨다. 피자와 스파게티 세트를 주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두툼하게 치즈를 올려 갓 구워 나온 피자의 맛은 여태까지 먹어봤던 피자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맛있었다. 매일같이 피자집 앞을 지나던 꼬맹이 시절, 미래에 결혼한 남편과 피자를 먹으러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랫동안 기다렸기에 더 맛있었다. 피자가 이렇게 행복한 맛인지 처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