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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Nov 08. 2024

오늘은 이만 퇴근

나의 퇴근시간은 언제나 불명확했다. 대체로 '최종본', '최최종본', '최최최종본' 데이터를 보낼 때까지 앉은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쉼 없이 일하는 편이었다. 내가 프리랜서로 독립했던 시기에는 한창 퇴사 붐이 일던 때라 '직장에 목숨 걸지 않기', '내일 할 일은 내일의 내가 하도록 남겨두기'같은, 퇴근 이후의 삶을 가꾸라는 조언이 심심치 않게 들렸다. 하지만 나는 그게 어렵더라. 인생에서 목표와 계획을 제대로 생각해 본 경험이 없어서 그랬을까.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만 가진 허랑방탕한 어른이 되었는데, 프리랜서가 된 후로는 내 선택에 책임을 지어보겠다는 듯이 하루하루 전투적으로 일했다.

그런 습관이 몸에 베이다 보니, 나의 삶을 아끼는 것보다 업무의 마감 일정대로 내 하루가 움직이더라. 하지만 도중에 그만둘 수는 없었다. 늘 일하던 대로 일하지 않으면 외주일이 금방 끊겨버릴 것 같은 조바심이 들었고, 하루도 쉬지 않고 모니터 앞에 앉아 보내는 시간으로 내가 성실하다는 착각으로 지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작업태도가 내 가족을 불안하게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후 3개월이 채 안된 채 겨울 동안 우리 집에 임시로 머물게 된 강아지는 배가 똥똥한, 털이 짧은 검은색 강아지였다. 이름은 ‘포카’. 겁이 많은 강아지라서 보호소의 봉사자 분들이 용감한 여자 개로 자라라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에서 따와지어 주신 이름이라고 했다. 

포카는 자기 이름을 찰떡같이 알아들어서, “포카”하고 부르면 총총총 걸어오고, “포카, 포카!”하고 두 번을 부르면 빠르게 달려왔다. 아기 강아지의 보드랍고 똥똥한 배, 몰캉몰캉한 발바닥, 이마에 코를 대고 킁킁킁 냄새를 맡으면 나는 젖 비린내가 선사하는 행복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작고 귀였던 강아지와 함께 지내며 어려운 점이 있다면 바로 '분리불안'이었다. 포카는 이미 입양을 전제로 한 임시보호를 갔다가, 보호자가 출근한 사이 다세대 건물에서 짖어대는 통에 다시 보호소로 돌아온 전적이 있었다. 그 후에 봉사자 분들의 케어를 받으며 임시보호처를 돌다가 우리 집에 왔다는 히스토리를 알고 있어서 마음의 준비는 해두었지만, 포카의 분리불안 증세는 상상이상이었다. 

이 작은 강아지는 유치가 자라느라 잇몸이 간지러웠던 시기를 참지 못해서 원목 책상, 의자 바퀴, 책꽂이 등등을 쉬지 않고 갉아댔는데, 파손된 물건들을 보면 포카의 모견이 중형견이란 사실을 그제야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부디 집에 깔려있는 장판만 가만히 나둬준다면! 

우리 부부는 3주가량의 임시보호를 종료하고, 포카를 가족으로 맞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프리랜서였던 나는 그동안 돌봄에 집중했던 일상에서 차차 근무시간을 늘리며, 포카가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도우려 했지만 이러한 노력은 번번이 실패했다. 특히 남편이 분기 별로 해외 출장을 가던 시기에는 포카의 분리불안이 더욱 증폭되었다. 한 번은 내 생일을 앞두고 친구들을 초대해 두었는데, 잠깐 집을 비웠는데 포카가 가구 밑의 장판까지 끌어내 뜯어놓았을 때에는 절망감에 방바닥에 드러누워 울음을 터트린 적도 있다. (친구들은 내 생일날 나와 함께 장판 보수를 해주었다.) 외출하기 직전에 푹 잘 수 있도록 바깥에서 4시간 동안 산책도 하고 왔는데... 도대체, 왜,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던 이 문제는 두 해가 더 지나고 나서야 자연히 해결되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장판 보수의 달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며, 외출한 사이 신발장 앞에 벗어두었던 새 슬리퍼나,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연필과 색연필, 이탈리아 신혼여행지에서 사 온 가죽 지갑 등이 파손되는 일에 초연해졌다. 포카도 청소년 시기를 보내며 늘 만들었던 사고의 크기는 줄었지만, 그래도 집안 여기저기 장판에 구멍은 쉬지 않고 생겼다.

한동안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주 3회, 저녁마다 남산에 다녔다. 저녁 수업을 들으려면 대략 6시쯤에는 집을 나서야 해서 오전에 산책 후에 출근했다가 퇴근하자마자 저녁 산책을 미리 시켜주고, 저녁 식사를 챙겨준 뒤에 학원으로 향했다. 수업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면 대략 9시 반에서 오십 분 사이. 집에 도착하면 나보다 먼저 귀가한 남편과 포카가 반겨주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했기에 정신이 없었다. 한 주 한 주가 금세 흘러갔다. 그러다 3주가량 지났을까... 문득, 남편과 나는 포카가 더 이상 저지레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측해 보건대 의지하던 가족의 일상에 루틴이 생겨서 더 이상 불안해할 일이 없어진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온종일 함께 있다가, 어떤 날은 작업실로 출근해서 장시간 근무를 하고 돌아오기도 했던 나의 업무 패턴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런 보호자의 일상 패턴은 세상의 어떤 강아지라도 도무지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도 무책임한 보호자였다니.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포카의 어린 시절을 내내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개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이제는 내일을 떠올리며 퇴근한다. 종종 마감일정으로 마음이 분주해지면 다시 '최최최종본'이 나올 때까지 작업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고 싶지만, 힘을 빼고 일어난다. 

포카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오늘의 에너지를 더 이상 소진하지 말고 아껴두어야, 퇴근 후 두 아이 돌봄에 참여할 수 있다고. 일도, 돌봄도, 내일 다시, 필요한 총량만큼 리셋될 테니까. 그리고 나의 인생도, 아이들의 시간도 금방 흘러간다고. 그러니 오늘은 이만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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