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지연 Nov 22. 2023

새롭게 달궈지기

이사를 결심한 건 단지 살던 집의 계약만료일이 다가오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한 동네에서 이십 년 넘게 살았다.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했고 고등학교도 졸업했으니 생의 기억 중 절반 이상이 이 지역에 관한 것일 테다. 한 곳에서 진득이 뿌리내려 산 경험이 특별하다는 걸 사회인이 되고 나서 알았다. 제주의 괸당 문화(지연과 혈연에 중복이 생겨 모두가 친척)를 연상케 하는 드라마가 상영될 때마다 동료들은 배경을 두고 구수하고 정겹고 따듯하다며 동경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의한다. 어렸을 때 우리 집 주방의 접시는 매일 바뀌었다. 어른들끼리 각자의 반찬을 주고받느라 접시가 섞인 것이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는 날에도, 컴컴한 밤에 어른 없이 집에 있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이라도 달려올 동네 어른들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그뿐일까. 사회인이 되고는 퇴근길 전화 한 통이면 오랜 친구들과 당장이라도 맥주 한잔 하며 고된 하루를 터프하게 해소할 수도 있었다. 표정이나 뉘앙스로 각자의 기분의 원인을 알아채주는 게 당연한 거였다. 외로울 틈 없는 특권을 누린 셈이다.


그러니까, 함께한 세월만큼 서로가 서로의 모든 역사를 아는 것. 얼마나 무해하고 충만한 일인가 싶다가도, 그게 또 얼마나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일인지 생각한다.


내가 학창 시절엔, 지역에 초-중-고등학교가 몇 군데 되지 않았으니, 그 어딜 가나 친구가 있거나 혹은 친구의 친구가 존재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식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너 쟤랑 친구지? 나도 걔 친구야. 더 나아가, 쟤 말이야. 걔가 그러는데 이번 시험 커닝해서 90점 넘은 거래. 그 말은 쟤와 걔와 얘의 말을 타고 실시간으로 퍼지며 와전된다. 소문을 들은 맨 마지막 사람은 <가족 오락관>에서 헤드폰 쓰고 단어 전달하던 게임처럼 전혀 다른 말을 듣고, 믿게 되고. 이건모두 지역이 좁아서 그렇다. 비밀유지 같은 건 환상 속에나 있는 예의다.


나를 둘러싼 이 환경이 점점 갑갑하게 느껴진 데엔 일련의 사건들이 스타카토처럼 있었지만, 그중에서 몇 가지를 꼽는다면 가령 이런 것들이다. 놀이터에서 데이트하던 학창 시절, 부모님 친구에게 들켜 곧바로 제보되어 겪었던 수치심, 옆집에 이사 온 신혼부부가 친구의 과거 애인인 탓에 껄끄러워 현관 집 근처에서 땅만 보고 다니던 한 시절, 혼자 조용히 술 한잔하려고 들어간 술집엔 안 반가운 동창들, 혼자 왔다는 이유로 무슨 일 있는 건지 추측하며 수군거려 뒤통수 따갑던 그날 밤. 몇 분 뒤 도착하는 다른 친구의 문자. 너 혼자 술집 갔다며? 원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매일 당일 배송 되는 서로의 일상이 이제는 적응될 법도 하지만.


나처럼 매일이 사춘기고 예민한 사람은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나에 관한 사실이 와전될까 눈치를 보다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누가 볼까 일기를 쓸 때도 연기를 했다. 어쩌겠어. 오해받기도, 미움받기도 용납할 용기 없이 ‘그러라 그래’가 안 되는 고지식한 사람인 걸.


그래서 가장 편해야 마땅한 동네에서 자꾸만 기분을 숨긴다. 나는 내 작은 집으로 더욱 파고든다. 나의 모든 것은 내 집에 있다. 나의 기쁨과 슬픔, 나의 편안함과 불편함, 나의 즐거움과 지루함. 집은 더욱 내가 된다. 모든 내가 쌓인다. 나는 집에 머묾으로써 갖가지 방법으로 나를 소모해 버린다.   


그러니, 이사를 결심한 건 단지 살던 집의 계약만료일이 다가오고 있어서는 아니었겠지. 친구는 직접 보러 다니다 보면 느낌이 오는 동네, 마음이 끌리는 집이 나타난다고 했다. 부동산 앱을 켜 마음에 드는 몇 군데 집을 정해 일정을 조율했다. 첫 번째로 간 곳은 집은 깨끗한데 동네가 스산했고 두 번째로 간 곳은 집도 깨끗하고 동네도 쾌적했지만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에너지만 고갈되어 갔다. 이번엔 꼭 계약하겠다는 다짐을 품고 마지막으로 딱 두 군데만 더 보기로 했다.  


오후 세시, 타짜 너구리를 닮은 익숙한 인상의 사장님은 역 근처에서 미리 기다리고 계셨다. 이 동네에서만 삼십 년째 장사라고 하시던 위풍당당함에 벌써 신뢰가 생겼다. 그는 며칠 전 근처 해물요리를 파는 식당에 소주 마시러 갔다가 세입자를 구해 달라는 식당 주인 부탁으로 급히 사진을 찍어 올린 걸 내가 발견한 거라고 하셨다. 기본 반찬으로 나오는 낙지 젓갈이 소주 안주로 일품이라고 할 땐 조금 신나 보이기도. 나는 앞장선 그를 따랐다. 우리는 큰 도로를 지나골목 언덕을 올랐다. 언덕은 좀 비호감 아닌가,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초등학교, 유치원을 따라 초록색 마을버스가 지나다니며 곳곳에 어르신들이 앉아있는 고요한 동네가 무해해 보였다. 그러는 중 휴대폰에 와있던 문자 한 통. 오늘 두 번째로 보기로 했던 부동산이다. 조금 전에 집이 나갔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의 희망은 이 집이 전부가 되었다.  


조용한 빌라 앞. 어디론가 전화를 건 그는 전화기 너머의 음성을 따라 도어락에 숫자를 누른다. 전화를 끊은 그는 원래 모든 일은 실장님이 하는데 잠시 자리를 비워 대신 나온 거라며, 머쓱하게 고백하신다. 집의 가장 큰 창밖은 방금 올라왔던 언덕길을 향했다. 사람 사는 냄새 풍기는 낮은 빌라들 위론 눈부신 햇살이 나를 통과 했다. 거짓말처럼 처음 본 이 집에 사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보안이 완벽한 동네도, 관리가 잘 된 빌라도 아니었지만 집 뒤엔 산이, 근처엔 시장과 학교가, 멀지 않은 곳에 오랜 친구들이 살고 있는 이 동네가, 이 집이 퍽 마음에 들었다.  


계약은 ‘모든 일’을 한다는 실장님과 진행했다. 집주인을 만나러 식당으로 향했다. 미리 와 있던 너구리 사장님은 이미 얼큰해진 술톤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식사하고 가라며 재촉하는 사장님과 실장님 옆자리에 앉았다. 이십 년간 이곳에서 홀로 식당을 운영하셨다던 집주인께서 만들어 주신 젓갈과 알탕으로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세 분은 입을 모아 우리 동네에 온 걸 환영한다고 하시며, 근처에 우리가 있으니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고 강조하셨다.  


묘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 안희연 시인의 산문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을 읽다 우연히 만난 문장 속에 마음이 오래 머무른다.


삶의 한 국면을 넘어간다는 느낌이 자주 드는 요즘, 나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다. 나는 이것이 돌아봄의 결과라고 믿는다. 그러고 보면 이사란 거주지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거슬러 오르는 일 아닐까? 출발선 앞에서 과감하게 뒤돌아선다. 폴짝폴짝 과거로 가는 뜀틀을 넘는다. 마음이 시작된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 집에 처음 발을 들이던 날에 도착한다. 이곳에 소파를 놓고 이곳에 책상과 책장을 놓으면…. 마음속으론 이미 지도를 그리고 있다. 눈빛이 반짝이고 있다. 어쩐지 이곳에 살게 되리라는 느낌.  (152p)


내 동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살기로 결정한 새 동네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 사이로 나는 나의 미래를 미리 알게 된다. 이 모험은, 내 오래된 동네를 다시 사랑하기 위한 연료를 채우러 가는 여정인 것임을.






작가의 이전글 슬기로운 필사 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