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기
[제주일기]
2017. 7. 28.
3. 돌의 운명- 하효 쇠소깍
쇠소깍이라 불리는 효돈천만 간단히 다녀와야지 생각하며 가볍게 나섰다. 두레빌라 정류장에서 내려서 효돈천으로 들어섰다. 물이 하나도 없는 건천이어서 쇠소깍을 제대로 볼 수나 있을지 걱정이 됐다. 큰 바위와 풀이 우거진 꽤 큰 하천인데도 물이 없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흰 바위가 우아한 모양으로 깎여있는데 그 아래로 깊은 물이 있었다. 어떻게 상류는 바짝 말라있는데 이렇게 많은 양의 하천이 흐르고 있지, 신기하기만 했다. 깊은 물이 시작되는 절벽의 깎인 모습도 절묘하고 아름다워 한참을 구경했다.
중류는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
물이 깊어지는 절벽
물이 없긴 없는 모양이다. 하천 벽에 검게 물이 차있던 자국이 있었다. 물 색깔도 녹조류 때문인지 진한 초록이었다. 쇠소깍의 설명을 보니 비가 많이 와도 상류는 항상 건천이라고 한다. 물이 흐르지 않는데 쇠소깍에 이르러서는 깊은 하천을 이루는 것이 절묘한 점이란다. 건천부터 구경하며 내려왔으니 제대로 본 셈이 됐다.
하천을 내려오니 바다에 닿았다.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 옆에 있는 하효항의 이름을 붙여 하효쇠소깍이라고 부른다. 현무암이 깎여 쌓인 모래와 바윗돌로 이루어진 검은 해변이었다. 어른 주먹만 한 것부터 아이들 주먹만 한 자갈까지. 검은색, 하늘색, 분홍색, 노란색 색색의 돌들이 바닷물에 적셔진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바다와 만나는 효돈천
수만 수억,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 돌멩이들.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각기 모양은 다르지만 옹기종기 붙어 해변을 이룬다. 처음에는 몸집도 크고 모나고 날카로웠겠지만 서로 부딪치고 파도에 깎여 동글동글해졌으리라.
세차게 밀려오는 파도는 돌에게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일 것이다. 어느 돌은 바다 가까이에 있어 항상 바닷물에 잠겨있을 수밖에 없고 어느 돌은 파도를 계속 맞는다. 운이 좋은 돌은 해변 안쪽에서 얌전히 햇볕을 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삶은 공평하지 않아서 절망으로 가득한 삶과 평탄한 삶이 나뉘어 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돌들의 운명을 생각했다. 그저 가만히, 조용히 견디는 돌들.
2017. 7. 28.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