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지도

(1) 출발점

by 거문고

서른 셋.

자랑할 것 하나 없는 유년기를 보내고 결핍투성이 성인이 되었다.

어떻게든 버티고 애쓰며 살았지만 지나고 나니 내 삶은 유년기에 형성된 결핍으로 채워진 지도였다.

이제는 그 길을 찬찬히 훑고 내 삶의 지도를 다시 그릴 때이다.





부모는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 내가 누군가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는 결국 나의 선택이니까.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면 분명 부모가 내게 했던 말과 행동들이 결핍의 바탕이 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부모의 입장이었더라도 그 이상 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겪어본 것이 전부라 여기는 태도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테니.


중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다 가는 학원에 다니고 싶어 엄마에게 졸라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수학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큰 학원에 나도 다니면 수학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더 큰 목적은 다른 친구들처럼 그 학원을 다니면서 어울려 노는 것이었다. 엄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했다. 안 그래도 빠듯한 살림에 학원까지 다니기 시작하면 생활이 더 힘들어질 것은 불 보듯 뻔했으니까. 하지만 나로서도 그것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무언가를 갖고 싶다거나 사달라고 말한 적이 없었기에 엄마도 결국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학원을 가기 전날, 엄마는 학원 교재를 들고 몇 번이나 가방을 풀었다 쌌다는 반복하는 나를 보며 그리 좋냐며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결과적으로 학원을 다닌 후 내 성적은 떨어졌다.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친구들이 다 하는 것을 나도 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남들과 달리 보이지 않기 위해, 유달리 보이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부모에 대해 자잘한 거짓말들을 했고 하지도 않은 생일파티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남들과 같은 삶’ 또는 ‘남들보단 조금이라도 나은 삶’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은. 학교에서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도 주눅 들지 않을 만한 직업, 부끄럽지 않을 만한 집을 갖기 위해, 주변 사람들은 당연하게 가진 것들을 갖기 위해, 그들과 동등해 지기 위해 내 삶의 시간을 채웠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결국 부모가 바라던 삶이었다. 내 자식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적어도 나보다는 안정적으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나의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내 삶의 모든 선택을 부모가 통제한 대로 내린 것은 아니다. 그 선택에는 분명 나의 동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마냥 부모만 원망할 수는 없어 나 자신도 함께 원망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타고난 재능이 없는 걸까. 예술적 재능이든 신체능력이든 하다못해 외모라도 특출하면 좀 더 특별하고 수월한 삶을 살아갈 텐데. 그런 재능이 없더라도 신문에 날 법한, 모두가 ‘대단하다’고 할 만한 업적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삼십 년을 넘게 살며 여태 그런 적도 없었다. 나의 부모는 뛰어나게 잘하는 게 없으면 공부해야 먹고 산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남들처럼 살려면 공부라도 해야 된다고 스스로를 가두었다.


나의 결핍은 남들보다 특출 난 게 없어서가 아니라 결국 나 스스로 나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세상은 내 어린 시절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빠르게 변했다. 1등이 아니라도 자신을 드러낼 기회는 많아졌다. 하지만 나에 대해 알지 못해 나에게 한 번쯤 왔을 그 기회를 알지도 못하고 지나쳐버렸다.

어쩌면 부모 역시도 막상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어릴 때 내가 달리기 좀 했지. 공부 좀 했지 라며 어린 시절 자신의 소소한 재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외에, 성인이 되어 스스로 찾아낸 재능을 드러낸 부모가 있을까.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내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가지고 있는 학위와 자격증 내에서 자신을 받아줄 만한 직장을 찾고 그곳에서 인정받는 것이 평범한 사람의 가장 큰 성공이라 생각했고, 그게 그들이 생각하는 최상의 진로였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엄마는 나에게 넌 여자라 수학 머리는 없는 것 같다. 역시 국어 점수가 더 높네. 넌 독후감은 잘 쓰는 것 같은데 그것보단 시험에 더 몰입해라.라고 조언했다. 나는 내가 정말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내가 받은 최저 수학 점수는 60점이었다. 어쨌든 절반 이상 맞은 점수인데 그 점수를 받은 순간, 나는 세상이 무너진 듯 펑펑 울었다. 나 스스로를 수학 낙제 학생 정도로 여겼다. 당연했다. 나의 기준은 부모의 바람대로 1등 하는 친구에 맞춰져 있었으니까.


내 부모가 살아온 세상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 오래 일 하는 사람이 대우받는, 그런 세상이었다. 자신들은 그러지 못해서 자식들이라도 안정적인 삶을 이루길 바라는 그 마음을 함부로 비하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조금 더 겸손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부모는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자식들에게 겸손해야 한다. 그들의 삶에 참견하거나 대신 선택 내려서는 안 된다. 내가 겪은 세상이 절대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새로운 세대를 살아가는 자식들이 오히려 변하는 물정에는 더 밝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부모보다 기기를 다루는 것에 빠르고 스마트폰을 훨씬 잘 다루듯, 앞으로의 변화에는 자식들이 더 빠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부모가 인정한 이후에야, 자식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탐구해 나갈 용기를 갖게 된다.


때때로 나는 복잡하게 뻗고 뿌리내린 내 결핍의 지도에 대해 생각한다. 그 지도의 출발점은 어쩌면 부모에 의해 삶의 선택권을 박탈당했던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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