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누군가에게 내가 스쳐 지나가는 인연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한때 중요했지만 지나간 인연들이 많다. 때로 그것은 삶의 단계상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때로는 서로의 변심으로 인한 것이었다. 어떤 인연이든 나는 아팠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앞에서 달고나를 팔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나는 그 집 단골이었다. 친구도 많이 없고 소심했던 나는 교실에서 창밖만 보다 집에 가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하교 후, 그 아주머니 앞에만 가면 말이 많아졌다. 낡고 좁은 텐트 안에서 아주머니는 백 원을 받고 달고나를 만들어 주었다. 불이 위험해서 설탕을 국자에 녹이는 것은 못 하게 했지만 가끔 내가 조르면 국자를 건네주곤 하셨다. 국자에 설탕을 한 스푼 넣고 약한 불에 녹인 후 소다 가루를 넣으면 훅 부풀어 오르는 과정이 좋았다. 만드는 내내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집에서 가족과 고기를 먹었는데 소고기가 엄청 맛있었다는 얘기를 했다. 아주머니는 아, 그래? 아줌마는 소고기는 먹어 본 지 너무 오래돼서 그 맛을 잊었어.라고 웃으며 말했다. 아주머니의 환경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는 나중에 돈 벌어서 꼭 아줌마에게 소고기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주머니는 아주 크게 웃었다.
달고나를 먹고 아주머니랑 얘기하기 위해 학교 마치고 정문 옆 허름한 텐트를 찾는 일이 잦았는데 어느 날부터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철거당하셨거나 많이 아프셨던 것 같다. 소고기를 사주겠다고 한 약속은 이제 어린 시절의 아련한 조각 정도로 기억되지만 그때의 나는 한동안 달고나 아줌마가 오늘은 나와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어린 나에게 달고나를 만들어주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시간들이 아주머니에겐 어땠을까. 그 시절 나는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이라는 것에 도저히 익숙해지지 못할 때라, 누구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는 평생 같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 돈을 벌면 소고기를 사주겠다는 나의 약속에 아주머니가 그렇게 크게 웃었던 것은 아마 알고 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는 것을. 내가 학년이 올라가고 자라면, 학교를 졸업하면 더 이상 이 텐트에는 오지 않게 될 거라는 것을.
나이가 들면 이별에 익숙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삶에 당연한 이별은 하나도 없었다. 사소한 멀어짐의 순간까지 두려움이었고 상대에게 내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함께하지 않으면 의미 없는 것이라 여겼다.
약속이라는 것 역시도 나에게는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우리 수능 치고 대학 가면 꼭 같이 살자, 해외여행도 꼭 같이 가자, 어른이 되면 같은 동네에 살자. 친한 친구와의 이런 약속들은 우리를 굳건하게 해 주었고 나와 상대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약속들은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이 되어 주었다. 그러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나면, 자연스레 그 인연과는 멀어지고 누군가와 또 비슷한 약속을 했다.
스쳐 지나간 인연들은, 정말 내 생각처럼 쓸모없고 아프기만 한 것이었나. 아니었다. 지난 인연들 중, 생각하면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를테면 달고나 아줌마와 와플 아저씨, 유치원 단짝 친구, 고등학교 동아리 선배 등.
나이가 들고 사회적 가면이 두꺼워지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집단 속에서 중요해 지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관계를 맺을 때 저절로 계산이라는 것을 하게 됐다. 이 무리에서 내가 내쳐지지 않기 위한 말투, 행동, 옷차림. 이 사람과 이별하지 않기 위해 내가 해야 할 말투, 행동 옷차림.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변에 사람은 많아졌지만 이별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졌다. 이 정글 속에서 내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는 압박감도 컸다. 사실 우리는 서로의 계산 속에 맞게 만난 인연들이니 적당히 관계 맺고 헤어지면 끝인, 굳이 평생을 함께 할 필요가 없는 관계였다.
혼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컸다. 나의 어린 시절처럼 주변에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을까 봐, 무리에서 겉돌까 봐 두려웠다.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 상대와 안정적인 관계가 지속되길 바랐다. 누군가에게 빨리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전전긍긍했지만 그런 관계에도 결국 끝은 있었다.
간절한 관계일수록 후회로 남았다. 내 시간을 쏟아붓고 아낌없이 내주었지만 그 안에 알맹이는 없었다. 상대가 좋아할 것 같은 행동을 하는 가짜 나로 만난 사이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모든 관계에는 이별이라는 것이 있는데, 순간의 관계일지언정 진짜 나로 보이는 것이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더 나은 것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순간의 인연이라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다.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도 된다. 다만 그 관계에 순간의 진심을 쏟아부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되었다. 기왕이면 가면 없이 순수하고 담백한 나 자신으로 상대를 만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야 지난 후, 오히려 서로에게 따뜻한 기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된다. 그 관계의 진가는. 그것을 알아보는 것에 함께 하고 있냐 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