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동맹을 만든다. 나와 동생은 결핍으로 맺어진 동맹관계였다.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결핍은 나뿐만 아니라 동생에게도 비슷한 영향을 미쳤다. 동생 역시 스스로를 틀에 가두었고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 또래 남자아이들에 비해 무던하게 사춘기를 넘겼다 여겼는데 동생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적인 폭풍을 겪어온 것뿐이지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나와 동생은 부모의 마음에 드는 자식이 되기 위해, 힘든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애썼다. 애정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은 알지 못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에 맞추고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늘 삶의 고단함에 지쳐있던 부모가 유일하게 마음껏 기쁨을 표현할 때가 자식들이 성적을 잘 받았을 때라는 것을 알기에 다른 진로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공부를 했다.
부모는 힘든 자신의 삶을 어린 자식에게 너무 쉽게 털어내곤 한다.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 자식의 마음과 감정까지 챙겨줄 여력은 없겠지만 때로 너무 쉬웠던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화풀이가 아니었을까. ‘너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힘들게 책임지며 살 필요 없었는데’라는 마음이 단 한순간도 없었을까. 그리고 그 힘든 시간들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 역시 당연하다 여기지 않을까. 그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자식의 인생에 오래도록 영향을 미치는 결핍이 된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부모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힘든 것이 안 힘들게 되는 것은 아닐 테니.
나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들이 모르는 사이, 자식들은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를 찾아 동맹을 맺었다.
동생은 다사다난한 나의 연애와 다르게 한 명의 여자를 오래 만났다. 대학 시절부터 취직한 이후까지 만난 여자 친구와 결혼 얘기가 오가던 도중 헤어졌다. 동생이 헤어졌다고 전화가 온 그날 밤, 나도 전화를 끊고 나서 펑펑 울었다. 나조차 당황스러울 정도로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 동생이 이별을 겪어서 힘들어하니까 나도 같이 힘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녀관계란 만나도 보면 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도 슬프고 안타까웠지만 눈물을 쏟을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나는 동생의 이별이 마냥 슬픈 것만은 아니고 은연중에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그것은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부모에 대한 효도를 나와 동생은 함께 짊어졌지만, 은연중에 동생이 그 짐을 더 덜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최대한 부모에게서 독립해 멀리 떨어져 자유롭게 살더라도 동생은 결혼해서 손주도 안겨주고 어떤 부모라도 부러워할 만한 효도를 내 대신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동생이 오래 사귄 여자와 헤어지자, 나는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내 대신 동생이 해 주길 바란 효도를 동생도 못 하게 되었으니까. 결국 나도 다시 그 짐을 짊어져야 할 테니까.
부모로부터 독립해 살더라도 그것이 효도에 대한 강박, 죄책감으로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회피하고 잠시 도망칠 수 있을 뿐이다.
동생에게 미안했다. 내가 편하게 살려고 그 무거운 짐을 떠맡겨 온 것에 대해, 그리고 부모에 대한 책임을 은연중에 받아들이게 만든 것에 대해. 혼자가 되어 외로워진 동생의 삶을 응원했다. 같은 부모에게서 자란 우리는 비슷한 아픔이 있을 것이다. 내가 외로움, 공허함에 취약하듯 동생 역시도 그럴 것이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동생의 이별 앞에, 나는 당당할 수 없었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듯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고 동생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간은 어떤 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저 감정이 무뎌질 뿐이고, 묻고 살아가고 망각할 뿐,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결국 나는 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지도, 동생에게 또 다른 짐을 짊 어지 우지도 않기로 했다. 어쩌면 동생은 나에게서 큰 위로를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조차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같은 아픔을 공유하기에 굳건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는 공동의 목표도 있었다.
지금 나와 동생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부모에게 삶을 의탁해야 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자기 자신만이 책임질 수 있는 각자의 삶이 있다.
나에게 힘든 일이 닥쳤을 때, 누군가 위로해주길 바라고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동생에게 내 아픔을 위로해 달라고, 우린 같은 아픔을 겪었으니 내 아픔도 같이 느껴달라고 애원하지 않듯, 동생 역시 마찬가지다. 그럴 수 없다.
우리는 성인이고, 유년기의 아픔으로 맺어진 동맹은 끊어 내어야 한다. 부모의 삶을 우리가 대신 살아주고 책임질 수 없듯 서로의 삶도 마찬가지다.
동생의 삶이 좀 더 수월하고 덜 아프기를, 평탄하기를 바라지만 그것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아이가 많이 아프더라도 그것에 잠식당하지 않기를, 아픔을 발판 삼아 뛰어오르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 어린 시절, 동생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유년기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