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의 진로

by 거문고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남들보다 강한 삶의 틀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과 같다. 어린 시절 친척들이 했던 말들은 아직도 내 마음을 묵직하게 짓누른다. 명절날이면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우리 집에 모든 친척들이 모였다. 친척들은 하나같이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넉넉하게 살았고 가난했던 나의 부모는 그 사이에서 더 큰 결핍을 느꼈다.


친척 어른들은 모두 나에게 착하다고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부모 속 썩이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기 때문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동생에게 친척 어른들은 너희 부모는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다, 힘든 와중에 이렇게 잘 키웠으니 나중에 꼭 효도하라고 했다.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효도하라는 말을 듣기 싫었던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친척 어른들의 눈빛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어리다고 감정의 깊이까지 얕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린 시절에 각인된 어떤 상황과 감정은 성인이 되어 느낀 것보다 더 오래도록 영향을 미치곤 한다.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은 내 부모가 가난하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 그리고 가난을 수치스러워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아무리 용돈을 주고 잘 대해줘도 나는 친척 어른들이 불편했다. 나를 동정하고 안쓰럽게 여긴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가질 수 있는 진로는 크게 두 가지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밝고 꿋꿋하게 자라거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엇나가거나.

첫 번째 경우는 주변 사람들의 동정 어린 응원을 받고 다른 경우는 그럼 그렇지 라는 편견을 마주해야 한다. 어떤 길을 가든 가족이라는 마음의 짐을 덜어버릴 수는 없다.

성인이 되어 직장을 얻고 내 삶을 꾸리면서도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른들이 말한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것은 내가 잘 사는 것보다 나는 희생하더라도 부모가 잘 살도록 해 주라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가난하면 더 웃어야 한다. 기왕이면 더 밝아야 하고 긍정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하고 진득한 결핍의 향을 모두가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는 가난을 부끄러워했다. 조금은 의기소침하고 주눅 든 채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가난을 수치라 생각했다.


누군가는 가난은 그저 불편일 뿐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내가 억지로 나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려 했을 때,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가난은 그저 불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자신을 둘러싸고 어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말들을 감수하는 것이 그저 불편일 뿐일까. 돈 없으면 공부라도 잘해야 한다고 공부를 강요당하는 것이 그저 불편일 뿐일까. 당연스레 부모의 몫까지 감수하게 되는 것이 그저 불편일 뿐일까.


나의 부모를 볼 때면 때로 그들마저 가난하면 밝고 착해야 한다는 프레임에 갇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친척들이 나에게 효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어째서 한 번도 그 말을 막지 않았을까. 내가 고개를 숙인 채 듣고 있는 모습이 그들에겐 어떤 모습으로 느껴졌을까. 역시 우리 딸 착하다고 생각했을까. 안쓰럽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들도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을까.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 가기 전날, 아빠는 나에게 새 옷을 사주겠다며 백화점에 가자고 했다. 당시 유행하던 브랜드에서 옷 한 벌을 입어봤다. 아빠는 바로 입고 가겠다며 계산을 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결재가 되지 않았다. 잔액부족이었다. 당황한 아빠는 이리저리 전화를 하더니 잔금이 아직 입금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종업원이 나를 안쓰럽게 여기는 게 느껴졌다. 아빠는 돈을 뽑아서 올 테니 기다리라고 했고 나는 그 옷을 입은 채 멀뚱히 서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당장 옷을 벗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빠가 마음 아플 것 같기도 했고 여기서 도망치는 게 더 부끄러울 것 같기도 했다. 울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착한 아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그 브랜드를 볼 때마다 그때가 생각난다. 유년기의 가난이란 이런 것이다. 남들은 겪지 않았을 일상의 서러움을 간직하는 것. 그 깊은 감정이 각인되는 것. 결핍은 유년기 전체에 뿌리를 내린다. 밝은 척 행복한 척하며 언제 깨질지 모르는 가정을 모르는 척 살아가는 동안 그 뿌리는 더 굵고 튼튼하게 뻗는다.


가정환경이 어떻든 아이는 자신의 선택을 존중받아야 한다. 이미 힘든 아이들에게 역할극을 강요하지는 말자. 당연스레 부모 몫의 삶까지 대신 짊어지라고 하지 말자. 이미 각인된 깊은 감정을 해소하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들은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

아이에게 효도를 강요하기 전에 기억해야 한다. 어리다고 해서 감정까지 얕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keyword
이전 01화결핍의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