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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Jul 26. 2020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파티

반팔 입고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부르기!

더운 날 일 끝나고 보이젠베리 아이스크림 사 먹은 후 강에 첨벙!
새끼 새들이 함께 자라는 빈야드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주일을 보냈다. 중간중간 비를 맞기도 했고, 아주 더운 날에는 열로 뜨거워진 피부를 식히러 일 끝나고 강가에 수영하러도 갔다. 그런데 문득 샤워하다가 깜짝 놀랐다. 거울을 잘 안 보는 편이고 샤워실에도 거울이 없어서 몰랐는데, 얼굴이랑 팔 색깔 보고 기함.. 이 더위에 당연히 타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경계선의 색 차이가 날 줄이야! 3월에 농장 일 할 때도 타긴 탔었지만 그땐 가을이라 그다지 덥지 않아서 긴팔 옷을 입었는데, 지금은 해 나면 옷 벗어던지기부터 해서 반팔티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게다가 피부가 벗겨지고 있어! 따가워서 알로에 젤도 소용이 없다.




우리 페루 에이스와 매니저! 도자기 같이 잘 깨지는 저 오렌지색 판을 던져서 맞추는 시범을 보이는 중


그렇게 일주일이 후딱 지나고 (시간이 점점 빨리 간다. 분명 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시간이 느리네 했었는데) 크리스마스를 앞둔 금요일! 경영진이 파티를 준비해준다고 해서 일주일 동안 잔뜩 기대를 한 상태였고, 덕분에 한 시간 정도 일을 일찍 마치고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역시 일 끝나고 바로 마시는 맥주는 꿀맛.. 바베큐 그릴 위에서 소시지를 굽는 동안 공터에서 슈팅도 했다. 우리는 맨날 옆 빈야드에서 들리는 총소리가 토끼 잡는 건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야?!?!? 하면서 놀람 가득.. 다들 돌아가면서 한 번씩 해봤는데 역시 쉽지 않다. 나는 오락실에서 총 게임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ㅋㅋ) 진짜 총을 들어보니까 무게도 상당하고 발포음은 귀청을 찢는 데다가 발포 후 반작용이 심하게 와서 거의 뒤로 자빠질 뻔.. 빗겨맞거나 우연히 맞추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다 공중으로 슝.. 사냥도 자주 간다는 빈야드 매니저만 손맛 맛봄. 군필 한국 남자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모두를 발랐겠는데? 



맛있게 구워진 소시지와 핑거푸드 스시 (라고 부르는 김밥)를 먹으며 또 한참 수다를 떨다가, 이제 Employee of the week을 선정할 차례라며 오퍼레이션 매니저가 차에서 큰 바구니를 가져왔다.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아주 큰 선물인가, 했더니 이번 주는 크리스마스니까 모두가 Employee of the week, 아니 Employee of the summer 라면서 손뼉 치고 산타처럼 나눠준 선물! 와인이랑 캐드버리 초콜릿 파티팩이 담긴 종이봉투에는 각각 다른 그림이 있었는데, 오퍼레이션 매니저 막내딸이 그렸다고 했다. 귀여운 것. 아이 세명이 다 와서 놀고 있었는데 막내딸은 조용하게 엄마 뒤만 졸졸 쫓아다니더니 이런 그림실력을 갖고 있었구나!



즐겁게 떠들며 맥주와 음식으로 요기를 조금 한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잠시 씻고 쉬는 시간을 가지고 나서 빈야드 건너편에 있는 리조트로 이동했다. 장소를 빌렸다고 해서 나는 당연히 작은 캐빈 같은걸 예상했는데 호수 바로 옆에 있는 깨끗하고 모던한 펜션이었음.. 매니저들 파트너에, 아이들에, 와인메이커, 세일즈 매니저까지 다 와서 신나게 즐김. 날씨가 약간 흐리고 저녁엔 비도 내려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뭐 어때! 음질 좋은 스피커로 노래를 틀고(여기도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대 치고 갔는지.. 퀸 노래 줄줄..) 밖에 테이블을 펼쳐놓고 앉아 여유로운 파티를 즐겼다. 냉장고에는 레드/화이트 와인, 샴페인, 맥주가 가득하고 테이블에는 치즈와 빵, 과일, 크래커들이 끊임없이 리필되는.. 이건 천국이 아닌가?! 다양한 종류의 로컬 와인과 샴페인을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지난번에는 마셔보지 못했던, 프랑스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와인과 좀 더 오래 숙성된 (비싼) 와인들까지..!



오퍼레이션 매니저가 보트를 가져와서 그것도 타 봤다! 북섬은 바다가 예뻐서 집집마다 서퍼가 있는 반면 남섬은 호수가 많아서 집집마다 보트가 있다. 키위들의 취미라고 할까.. 날씨 좋고 주말에 할 일 없으면 강이나 호수로 보트 끌고 가서 놀고 수영하고... 차랑 비교해서 시속으로 따지면 그렇게 빨리 달리는 편이 아니었는데, 바람을 제대로 맞으니까 엄청 빠르게 느껴졌다. 너무 시원하고 호수 물 핵 깨끗하고 주변 풍경 멋지고.. 술 한잔 걸쳐서 그런가 신이 나서 막 미친 표정 지으면서 애들 웃겨주고 돌아왔다. 운이 좋게도 우리가 돌아오자마자 비가 떨어져서 아쉽지만 더 이상의 보팅은 빠이...


지난주에 떡볶이가 또 먹고 싶어 져서 퀸스타운 한인마트에 갔다가 막걸리를 샀었다. 금요일에 파티하니까 같이 먹어야지, 하고 사면서 리쿼샵에 들러 소주도 사려고 했는데 크롬웰 리쿼샵은 소주가 없어.. 달랑달랑 막걸리 한 병들고 가서 먹었는데, 처음 보는 브랜드이기도 하고 국내 여행 다닐 때마다 맛있는 막걸리를 먹어와서 그런가 넘 핵노맛이었다.. 구린내 심하게 나는.. 딱 첫 모금 맛보고 나서 아 이거 괜히 가져갔다 싶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다행이었음. 막걸리 오픈하자마자 저 밖에서 수다 떨던 키위들 모두 슬금슬금 들어와 조심스레 그거 뭐야? 수군수군 웅성웅성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혼자 키득키득거렸다.


아 배불러서 안 먹었는데 사진 보니까 너무 후회된다


해가 진 이후에 밥을 먹으러 옆 레스토랑으로 이동! (그렇게 먹고 또 밥을 먹으러 간단 말이야..? 함) 피자랑 바베큐 모듬 플레이트를 테이블 당 하나씩 시켜서 쉐어했는데 나는 배불러서 먹질 못했다... 입 짧은 사람의 설움.. 아 너무 맛있어 보였는데.. 역시 뭐 먹을 때 맥주는 피해야 한다..


다시 리조트로 돌아와 더 크게 신나는 노래들을 틀어놓고 본격 스탠딩 파티. 우리나라 사람들은 회식을 하든 밥을 먹든 펍에 가든 앉는 게 우선순위라, 영국에서 놀 때 자리가 있는데도 앉지 않는 사람들에게 깜짝 놀랐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외국 문화는 이게 최고인 것 같다. 각자 다들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술을 더 꺼내 마시고 난리를 치기 시작 (ㅋㅋ) 너무 웃겨서 사진을 찍다가 와인잔을 떨어뜨려 깼는데 아 이건 신호다 싶어서 더 이상 술 먹지 않고 바로 차로 돌아와 잤다. 나이를 먹으며 귀소본능이 생긴 건지, 자제력이 생긴 건지. 한국에서는 어디서든 잘 퍼질러 잤었는데 방에 푹신한 킹 베드를 보고서도 들어가지 않은 나.. 새벽에 매니저가 내가 없어진 걸 알아차렸는지 너 어디냐고 집에 걸어갔냐고 (야 차로 20분이야 어떻게 걸어감 제정신이냐) 문자를 했지만 저는 이미 저세상이었답니다... 아침에야 발견.


오랜만의 과음으로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깨질 것 같은 머리. 당연하게도 맥주에 각종 와인에 샴페인에 막걸리까지 숙취가 없을 수 없는 조합.. 정신머리 겨우 붙들고 슈퍼마켓에서 미친 사람처럼 축축 늘어져 걸으며 너구리와 신라면을 집어 들고 품에 넣어 돌아왔다. 라면 먹고 하루 종일 늘어져 뒹굴거렸다. 마침 비도 오는 토요일이고 해서.. 너무 즐거웠던 크리스마스 파티의 끝은 이렇게 요양으로...


내 인생 처음으로 맞은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그 시간을 기가 막히게 메꿔준 사람들. 혼자 여행 중이라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낼 수 없었던 이번 크리스마스는 빈야드의 친절한 경영진과 함께 일하는 백팩커들 덕분에 아주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됐다!



*2018년 블로그 포스팅을 브런치로 옮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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