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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Jul 29. 2020

뉴질랜드야 1년 동안 고마웠어!

차도 팔고 세금 환급도 신청하고. 아쉬운 떠날 준비. 1년을 되돌아보며.



드디어 뉴질랜드 마지막 일자리 빈야드에서의 모든 일이 끝났다. 넬슨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이틀 정도 더 일을 했는데, 언제 또 호수에 뛰어들 일이 있을까 싶어 매일 끝나자마자 호수로 직행해서 훌렁훌렁 옷을 갈아입고 수영을 즐기다 돌아왔다. 천국 같은 뉴질랜드의 여름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게 매일매일 아쉬워서.


까맣게 탄 자리


올드 크롬웰, 호수 근처에서 지는 석양을 바라볼까 싶어 갔다가 긴급 콜도 불러 봤다. 세상에 한국에서도 안 불러본 소방차를.. 최근 한 주간 비가 안 와서 빈야드도 건조한 흙바람이 불곤 했는데, 호숫가 근처에서 놀고 있자니 어디서 타는 냄새가 풍겨왔다. 로컬들이 드럼통에 뭘 태우나 싶었는데 여기저기서 키위들이 뛰어나오기 시작.. 우연찮게 손에 핸드폰을 쥐고 있는 날 발견한 사람들이 빨리 긴급 콜 전화를 하라며 111 번호를 알려줬다. 십 대들은 불이 난 잔디 위를 밟기 바쁘고, 지나가던 셀프컨테인드 캠퍼밴들이 멈춰서 그들에게는 피 같은 20L 물을 들이부었다. 모자라면 호숫물을 퍼다 나르고.. 바람이 워낙 많이 불어서 금방 커질 뻔했지만 발 빠른 키위들의 대처로 금방 진압했다. 그러는 와중 나는 계속 통화를 해야 했는데.. 여기도 공무원들은 질문이 많다. 불이 났다고 하면 일단 출동을 빨리 좀 시켜주라고요. 지척에 소방서 있는 거 뻔히 아는데. 


아름다운 빈야드의 가든, 라벤더 키워보고 싶다


나 말고도 다른 친구 하나가 같이 일을 마쳤다. 나는 크라이스트처치로 떠나고, 록스버러에 있는 체리/블루베리 팩 하우스로 간다는 친구. 한참 맥주를 마시며 마지막으로 수다를 떨었다. 마지막으로 지난번에 한인마트 가서 사 온 빼빼로 한 상자씩을 애들한테 나눠주고, 빠이빠이 인사를 나눈 후 돌아왔다.





빈야드에서 한 주 더 머무를 수 있었던 건, 차 팔기가 수월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박싱데이, 새해 이틀 다 일 안 하고도 돈 받는 날이라 빡빡하게 한주 더 있으면서 크롬웰 근처에서 차 팔아보고 정 안되면 처치 가야지, 했던 계획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온라인에 광고를 올렸더니 이틀 만에 문의가 폭주해, 퀸스타운에서 굳이 크롬웰까지 오겠다고 해서 본 4명의 독일 친구들이 세컨카가 필요하다며 네고도 안 하고 덥석 사버림.. 테스트 드라이빙 끝내고 ‘나는 4일까지 일하니까 5일에 줄 수 있어, 더 궁금한 거 있거나 안 살 거라도 메시지 줘~’ 하고 가려는데 ‘우리 지금 말할 수 있는데 - 살 거야 ㅋㅋㅋㅋㅋ’ 사실 그 전날 뷰잉한 독일 여자애가 있었는데 걔도 엄청 마음에 들어하면서 자기 이체 문제(독일 계좌에서 송금)만 해결하면 된다길래 기다렸더니 여기 또 다른 적극적 구매자가.. 


1년간 벌금 한 푼 걸린 것 없다! 하하 오른쪽 메시지는 먼저 뷰잉한 독일 여자애. 미안하지만 이미 팔렸다는 답장을 ㅠ_ㅠ


내 차는 온라인에 널린 캠퍼밴들 중에 상대적으로 마일리지가 적은 편이다(그렇게 여행을 했는데!). 내가 타는 동안 배터리, 타이어 4개, 와이퍼, 라이트 다 갈았고 체인드리븐에 내부 인테리어 다 해놨고 정기적으로 서비스받은 데다, 매일매일 청소해서 내부도 깔끔하게 사용했고.. 캠프 사이트에서 보는 애들마다 부러워하는 걸 보곤 내 리버티는 뉴질랜드 굴러다니는 그 어떤 캠퍼밴들 사이에서도 꿀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가격 더 내려버리면 문제 있어 보일까 봐 그냥 양심 좀 팔고 가격 받았다. 후-련. 금요일에 만나 명의이전한 후 세차하고 기름까지 꽉 채워서 토요일에 넘겨줬다. 직접 발품을 팔아 마음에 드는 차를 구하고 개조를 거쳐 1년 동안 내 집과 발이 되었던 캠퍼밴을 떠나보내자니 진짜 이런 게 시원섭섭한 마음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리어의 바퀴에 어색함을 느끼면서 나는 버스를 타고 크라이스트처치로..!




누가 대신 운전해주면서 풍경 보는게 좋긴 좋구나;; 덜 피곤하긴 하다.


인터시티 버스 타고 7시간을 달려달려 크라이스트처치의 에어비앤비로. 차 팔기가 미리 끝나버린 바람에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친구/가족들 선물을 사고 세금 환급을 받는 등 귀국 준비를 일주일 간 했다. 지난번에 처치 왔을 때는 차가 있었어서 좀 수월하게 돌아다녔는데, 이번에는 버스 타고 돌아다녀야 해서 아주 고생. 오랜만에 대중교통 이용하니 이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뉴질랜드 워홀 오면 차를 사세요.


우리나라 청년몰이나 청년시장을 연상케 하는 곳인데 힙하기가 하늘을 찌른다. 베이컨브라더스버거 맛있음!


선물을 뭘 살까 고민하다가 우리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와인이 해외배송된다길래, 쓸데없는 키위새 모양 키링 사다 주는 것보단 훨씬 의미 있는 선물일 것 같아서 세일즈 매니저에게 문의했었다. 그런데 배송비가 15병에 450불..! 병당 30불 꼴이다, 야 와인보다 배송비가 더 크면 어쩌냐??!?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결국 기프트샵에서 야금야금 선물을 쟁여야 했다 ㅠ_ㅠ


2020년 현재는 널렸지만.. 2018년 저때는 혁-명 이었던..!


오클랜드에도 있다는데, 지난번에 크라이스트처치 왔을 땐 못 본 e-scooter가 돌아다닌다. 이름은 Lime-S. 마침 세금 환급을 받으러 가야 하는 IRD 센터가 조금 걸어야 하는 위치에 있어서 신나게 앱 깔고 한번 이용해봤다. 생각보다 엄청 빠르고 (시속 30km까지 올라가는 걸 봤다) 바람맞으면서 달려서 엄청 시원함. 1분에 30센트니까 괜찮은 편인 듯, 도보의 사람들과 자전거 도로만 조심하면 아주 훌륭한 교통수단인 것 같다. 버스가 자주 오지 않고 또 정시에 오지 않는 여기에서는 가까운 거리를 갈 때 이용하기에 좋은 것 같다.



세금 환급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의지의 한국인..! 어떻게든 돈을 돌려받고 말겠다!


* 세금 환급(택스 리턴) 절차

센터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한데, 크라이스트처치 지점은 약간 까다롭게 요구하는 것 같다. 오클랜드나 인버카길은 직원이 정보를 다 뽑아주고 IR3 폼 앞 뒷장만 써서 낸다고 하던데, 처치 지점은 온라인 계정에 접속해 총수익, 이것저것 공제한 세금 등을 다 폼에 맞춰 적어서 내야 한다. 처음엔 뭘 써야 할지 감이 안 오는데 (한국어로 된 연말정산도 어려운 마당에) 직원이 상주하면서 도와주기에 큰 문제는 없다. 직원이 몇 명 없어서 쏟아지는 고객들을 다 상대하기 어려운 게 문제지.


회계연도가 4월부터 시작이라, 나는 2017년 4월-2018년 3월에 일한 (그래 봐야 3월 한 달이지만) 2018년 분만 신청하고 돌아왔다. 2018년 4월-2019년 1월은 회계연도가 아직 진행 중이고, 마지막으로 일한 빈야드에서 IRD로 넘긴 택스 정보가 11월까지밖에 없어서 물어보니 (모든 영업장은 매달 20일까지 IRD로 세금 관련 서류를 전달한다고 한다 - 12월 택스까지 확인하려면 20일 이후에 지점을 방문해야 함), 온라인에 현재 나와있는 금액 정보에 12월부터의 페이 슬립을 모두 가져와 더해가며 직접 숫자를 매겨야 한대서 ‘아 다 귀찮다 그냥 4월에 온라인으로 신청할게…’ 하고 포기. 어느 나라나 연말정산이 짜증 나기는 똑같은 법. 일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택스 리턴 신청하시는 분들은 마지막 페이 슬립분까지 온라인에 다 통합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신청하셔야 할 듯. 그냥 어영부영 직원이 뽑아주는 거에 ㅇㅋㅇㅋ 하다 보면 마지막 한 달/혹은 몇 주 분이 빠져있을 수도 있다. 총 따져보니 나는 뉴질랜드에서 2만 불 조금 넘게 벌고, 3500불의 세금을 냈더라. 얼마가 들어올지 궁금한걸?


* 맥 사용자의 슬픔

왜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처음에 가입할 때 내가 평소에 쓰던 아이디를 쓸 수 없었고 그래서 아이디/비밀번호가 약간 달랐는데, 평소의 나라면 그런 경우 메모/캡처를 해 두거나 사파리에 키체인 저장을 해 두지만 하필! 그날은 그냥 넘어갔었다. 그래도 뉴질랜드에 체류하는 1년간 IRD에 접속할 일이 없었기에 괜찮았는데, 몇 달 전부터 꾸준히 IRD에서 메일이 날아왔다. 중요한 서류가 있으니 웹사이트에 로그인해서 보라고. 몇 번 아이디/비밀번호 찾기를 통해 이메일을 받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실패. 내가 자주 쓰는 네이버 계정으로 연결을 해 뒀는데 스팸메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도착하지 않았다. 뭐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겠지 하고 1년을 버티다 센터 온 김에 비밀번호를 새로 세팅해 받았다. 그런데 숙소에 돌아와서 다시 접속하려고 하니 또 불가.. 아니 이번엔 내가 계속 쓰던 비밀번호라 틀릴 일도 없는데 왜 이러냐고. 돌아오는 4월 한국에서 온라인 세금 환급 신청을 하려면 꼭 필요했기에 다시 센터 방문. 전화로 해결하려 했으나, 신원확인을 위해 까다롭게 묻는 것들이 많고, 겨우 다 대답했더니 다시 연결음이 5분 이상 지속되길래 끊었다. 센터에 비치된 컴퓨터로 접속하니 또 당연하게 접속 완료..? 직원에게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사파리 쿠키/히스토리 다 삭제하고도 안 되던 게 다른 브라우저(크롬)로 접속하니 된다. 왜 컴퓨터는 항상 도움을 요청하면 보란 듯이 잘 되는 걸까? 


요약 : IRD 등록할 땐 지메일로, 맥 사용자는 사파리 말고 크롬을 이용하세요.


* 예상치 못한 벌금

게다가 50달러 페널티(벌금)가 있었다. 그게 바로 계속 날아오는 메일의 정체였다. Late filing penalty라고, 위에서 언급했듯 회계연도가 4월에 바뀌면 7월까지 택스 리턴을 신청해야 하는데, 나는 1월에 도착해 3월에 일을 시작했고 4월에 회계연도가 끝나는지도 몰랐기에 신청을 안 했고, 9월이 되어서야 세금 정산이 늦었으니 벌금을 내세요- 라며 메일을 보낸 것이다. 친절한 직원분이 내 계정으로 접속해 모든 걸 해결해 주었다. 모르고 그냥 출국했으면 나중에 세금 돌려받을 것에서 50불 깎일 뻔. 세금 문제에 무지하니 너무 머리가 아파서, 사람들이 왜 돈 주고 회계사 쓰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남아서 할 일이 없길래 영화관 가서 메리포핀스 리턴즈 관람! 보헤미안 랩소디 볼까 했는데 세션이 저녁 아홉 시 하나밖에 없다. 바쁘지 않은 시간대에는 할인 혜택이 있어서 14불에 봤다. 디즈니 뮤지컬 영화는 역시 들썩들썩하는 맛이지.. 끝나고 나서 엔딩크레딧 음악에 애들 다 앞 무대 뛰쳐나가서 춤추고 난리부르스.. 킬링타임용으로 좋다. 에밀리 블런트와 벤 휘쇼 연기력에 한번 죽고, 아이들 귀여움에 또 죽고, 메릴 스트립의 억양에 한번 더 죽고.. 메릴 스트립 나오는 씬 내내 입 못 다물었다. 대배우.




남은 1주일 간 할 일이 너무 없어서, 크라이스트처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생각들을 많이 했다. 지난 2018년 한 해 뉴질랜드에서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한국에 돌아가면 뭘 할지에 대한 생산적인 고민들. 



목표 점검


* 캠퍼밴으로 뉴질랜드 전역 여행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 중고차를 사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개조를 할 것인가, 1년 동안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겨울에 캠퍼밴 생활을 하는 게 춥지는 않을까 등등. 하지만 닥치면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다. 이제 와서 느끼는 건데 중고차 15개 뷰잉은 좀 많았다 싶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성격 상 꼭 맘에 드는 걸 찾기 전까지는 타협하지 못하는 걸 어쩌나. 개조도 순조로웠고, 1년간 큰 문제나 사고 없이 캠퍼밴으로 뉴질랜드 여기저기를 누비며 여행을 다녔다. 이동이 자유로웠던 덕분에 여러 도시에서 살아볼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뉴질랜드 워홀 생활을 캠퍼밴에서 하자고 했던 결심은 죽을 때까지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 필라테스 꾸준히

뭔가를 꾸준히 해서 습관으로 만든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 출국 2-3개월 전부터 체력을 위해 필라테스를 배웠고, 뉴질랜드에 와서도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웰링턴에서는 한 달간 스튜디오 멤버십을 끊어 필라테스+요가를 함께 배웠는데, 다양한 선생님들의 클래스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영어로 수업을 듣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즐거웠다. 날씨가 좋아지면서 침대보다 요가매트에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던 것에 감사한다. 마지막 70일 정도는 물 1.5리터 마시기 + 밀가루 줄이기까지 병행하면서 서른 되기 전 건강한 몸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 여유로운 생활 > 영어 > 여행 > 돈

목표를 세울 때 우선순위를 이런 식으로 잡았었다.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 여행비가 될 수 있을 정도로만 벌고, 이제껏 학교 다니고 사회생활하면서 나에게 휴식을 줄 시간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 최대한 여유로운 생활을 하며 여행을 하겠다고. 만족한다.


* 스카이다이빙

잊지 못할 타우포 스카이다이빙. 12000피트에 만족 못 하고, 1월 말 호주 여행에서 15000피트 예약해 놨다.


* ‘나’를 돌아보는 시간

일을 그만두고 멍한 상태로 있다가 워홀을 오게 된 거라,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기 위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화를 다스리는 법, 조급하게 나를 재촉하지 않는 법을 찾으려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 싫어하는 것들을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솔직하게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명확해진 것도 있고 1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아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것들도 있다. 하지만 상당 부분에서는 길을 찾았고 한국에 돌아가면 외부의 도움을 더 받아서라도 가시적인 답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뉴질랜드여서 좋았던 점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고(키위들은 물론이고, 마오리들 무서워 보이는데 말해보면 세상 친절하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자연에 감사하며, 바다든 호수든 깨끗한 물가 근처에 살 수 있었다는 게 나에게는 가장 좋았던 기억인 것 같다. 워홀 가자,라고 마음먹을 때까지도 나는 뉴질랜드에 오게 될 줄 상상도 못 했고 게다가 뉴질랜드가 어디에 있는지 뭐가 유명한 지도 잘 몰랐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1년을 살게 되다니, 인생 참 알 수 없다. 앞으로의 인생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겠지,라고 생각 중이다. 어떤 책에서 읽은 것처럼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풍선껌으로 방정식을 풀겠다는 것밖에 안되는 것’이니, 현재를 잘 살자고 마음을 먹었다. 


처치에서 운전도 안하겠다 맥주랑 함께한 펍 음식이었는데 맛은 없었음 (ㅋㅋ)


뉴질랜드여서 싫었던 점


예전 영국 문화권이라 역시 음식이 빈약하다는 것. 타운 센터에는 다양한 레스토랑이 있고, 슈퍼마켓도 크기가 상당해 엄청나게 많은 식재료들이 저렴하게 판매되지만 뉴질랜드 전통 음식이랄 건 없다. 그리고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외국 문화로는 길가다가 인사하기. 공원에서 운동하면서 계속 눈 마주치고 하이 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길바닥에 사람이 별로 없긴 하지만. 뉴질랜드만의 이런 점들이 싫었다기보다 그냥 우리나라를 떠났을 때의 불편함인 것 같다. 


한국에서 서비스 안 하는 스포티파이도 이젠 해지 (와서 알게 된 건데 해외 카드로 돈만 내면 서비스됨..)


배운 것, 깨달은 것들


캠퍼밴을 만들면서 스스로 뭔가를 해내는 것에 대한 보람을 오랜만에! 크게! 느꼈다. 계속 운전하고 돌아다니며 자유로움을 만끽했고. 나는 내향형 인간이라 여행을 하면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떠드는 것이 배터리를 방전시킨다는 걸 깨달아서, 가끔은 파트너나 친구와 함께 워홀 생활을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나게 독립적인 사람이지만 함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는 우리나라처럼 미친 듯이 죽어라 일하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중간에 적절한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가 똑같이 8시간 잠, 8시간 일, 8시간 휴식으로 이루어지는데 한국의 24시간은 왜 이렇게 다를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더라. (물론 여행자라서 그렇긴 하지만) 8시간씩만 일해도 기본 시급이 높아 어느 정도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고, 저녁이 있는 삶에 감사했지만 나는 취미가 없어서 책과 넷플릭스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이 아쉬웠다. 역시 안 놀아본 놈은 시간 줘도 못 논다.


다양한 직종에서 일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보카도 농장, 빈야드는 대학교 때 농활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어렵지 않았지만, 팩하우스 생활은 또 새로웠다. 패킹에서 퀄리티컨트롤부스로 넘어가면서 영어를 사용하는 일이 많아져 리스닝/라이팅/리딩/스피킹 모든 부분에서 많은 것들이 늘었고 이러한 대형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좋은 리더들에게 눈치껏 많이 배웠다. 레스토랑 홀에서 일해본 경험은 있었지만 주방에서 일해본 적은 없었는데, 요알못인 키친핸드라 요리를 맡아서 하지는 않았지만 셰프님들이 바쁠 때 조금씩 식재료 준비를 도우면서 음식에 대해 관심을 좀 더 가지게 되었다. 어떤 책에서 읽었다. 경험이 없으면,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고. 초보자는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모르고, 특정한 방식에 얽매여 있지 않기에 ‘그릇된’ 방법이 없다고. 나는 이런저런 일에 주저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다가 나만의 새로운,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데 재미를 붙였다. 


역시 한인잡은 말리는 이유가 있다. 만약에 영어가 잘 안 돼서 한인잡을 할 거면, 시스템이 이상할 경우 확실하게 따질 수 있는 성격이라도 있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시기상의 문제로 한인잡을 두 번 했는데, 한 번은 계약서도 적절한 휴식시간도 없어서 여기가 한국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두 번째는 그 어디에나 있다는 ‘마음 안 맞는 사람’ 때문에 도망쳐 나왔다. 누군가 한인잡에 대해 묻는다면,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배짱이 있는 사람에게만 추천할 것이고, 굳이 굳이 한인잡 할 거면 멀리까지 와서 고생하지 말고 한국에서 카페 알바나 주방 찬모직 알아보세요,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이 밖에도 엄청나게 많은 (개인적) 깨달음이 있었고, 생각이 한 뼘 더 자랐다는 생각이 든다. 서른이 되기 전 이렇게 많은 것들을 알게 된 것에 참 감사하게 되는 뉴질랜드 워홀 생활이었다. 




이렇게 일 년을 마무리한다. 한국에 들어가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들을 만나며 1주일 간 즐기다가, 24일부터는 엄마와 호주로 여행을 가는 것을 시작으로 서른의 첫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려고 한다. 물론 항상 즐거웠던 것은 아니고 후회가 되는 일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나의 2018 뉴질랜드 워홀은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었고 앞으로도 살아가는 데 큰 버팀목이 되어줄 것 같다. 여전히 서른 이후 불안한 삶에 대한 고민은 멈추지 않지만, 그건 내가 뉴질랜드에 있든 한국에 있든 영국에 있든 변하지 않고 계속 나를 쫓아다닐 것이며 짠! 하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나의 이십 대를 뉴질랜드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진학하면서 나를 둘러싼 세상이 엄청나게 바뀌었듯, '또 하루 멀어져 가는' 서른이 되면 병약해지고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으나 나는 신체적/정신적으로 더 건강해졌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삼십 대의 날들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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