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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Feb 24. 2021

나는 불안할 때 신이 나서 웃는다

미션 클리어를 위해 달리는 수족냉증인


내가 열 살 때쯤인가, 고모댁에서 친척들이 모두 모이기로 한 주말 어느 날이었다. 성인이 된 사촌 언니 오빠들은 친척 모임에 자주 오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내가 전 사촌동생들의 맏이가 되었다. 고모가 다니는 교회의 전도사님께서 우연히 집에 들르셨고, 한편에서 놀고 있던 우리들을 데리고 교회에 다녀와도 되겠냐는 물음에 어른들은 짐짓 괜찮으시겠냐고 물으면서 자유의 미소를 지었다. 젖먹이 아이는 없어도 우르르 몰려다니는 아동들은 계속 어른들의 손길이 필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교회에 가서 이곳저곳 둘러보고 신나게 놀이터에서 뛰어놀다가, 저녁나절 전도사님의 차를 타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때 전도사님께 급한 전화가 걸려왔고, 제일 맏이인 나에게 여기서 내려주면 집에 찾아갈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창문을 내다보니 차가 달리는 큰길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곧 고모댁이었다. 인사를 드리고 골목을 꺾어 들어갔는데 뭔가 이상했다. 이 길의 끝에는 양 갈래 길, 고모댁으로 가는 길의 나무가 보여야만 했다. 나는 길눈이 좋아서 한 번도 길을 잃어본 적이 없었다. '아침에 뛰어놀던 골목길이 곧 나오겠지, 초행길이라 헷갈리는 거겠지' 속으로 혼잣말을 했지만 길은 점점 다른 풍경을 보여줬다.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길을 잃었구나, 어떡하지?' 


일단 내가 아는 길로 나가야만 했다. 동생들이 알아차리면 울 것 같아서 뭐라 둘러댄 후 다시 뒤돌아 걸어 나왔다. 큰 길가에 나래비진 간판들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며 어느 골목길에서 꺾어야 하는지 다시 살펴보는데 옆에서는 동생들이 슬슬 보채기를 시작했다.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프고,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묻는 물음의 연속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려 애쓰며 다리가 아프다는 아이를 업고 다른 동생들의 손을 꼭 붙잡은 채 계속 간판을 읽었다. 아까 내릴 땐 분명 익숙하게만 보였는데 다시 나와 보니 처음 보는 곳 같았다. 우리 동네도 아닌 곳에서 이 아이들을 데리고 미아가 될 순 없다. 옆에서는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었고 해도 막 저물어가니 온갖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지만 침착하자고 나를 다독였다. 드라마에 나오는 소녀가장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십분 쯤 거리를 걸었을까, 눈에 아는 간판이 들어왔다. 잠시 실망했던 길눈이 다시 제 역할을 한 것에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익숙한 골목길에 진입하자 탁 트이는 가슴속 무언가. 우리는 고모댁으로 뛰어 들어가 10분간의 모험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고 저녁을 먹었다. 


처음 길을 잃었던 순간 맏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침착을 유지한 것에, 무사히 동생들과 집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나를 맘껏 자랑스러워했다. 그땐 불안함이 있었지만 내가 그 불안함을 잘 통제했다는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건 인생의 첫 위기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내 영혼이 내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드론처럼 머리 위에서, 내 옆에서 날면서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성인이 된 이후에 맞이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의 침착함이 좀 변질된 걸 느꼈다. 신이 난다. 피가 도는 것 같다. 







대학교 때 매일 붙어 다니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던 친구들과 에버랜드에 놀러 갔다. 아침 일찍 용인에 도착해 저녁까지 놀아보자는 각오를 다지고 들뜬 마음에 입장했다. 우리는 바로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선택하고 사람 없는 아침 시간을 이용해 몇 번이나 되풀이해 탑승하며 긴장과 완화 상태를 넘나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넓은 환상의 나라에서 돌아다니며 체력소모를 하다가, 하도 소리를 질러 쉰소리가 나오는 목을 부여잡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자연스럽게 뒷주머니에 손을 댔다가 곧 휴대폰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가 갖고 있어? 친구들은 내 휴대폰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듣자 직접 내 주머니와 가방을 뒤지며 파랗게 질려갔다. 야, 아까 그 롤러코스터 타다가 밑으로 빠진 거 아니야? 소지품 맡기는 바구니에 둔 거 아니야? 근데 어느 놀이기구? 하도 놀이기구를 많이 타서 어디서 몇 번을 탔고, 어디서 휴대폰과 지갑을 어떻게 보관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뭐 어쩌겠어. 나는 촉이 좋다. 일단 누가 훔쳐간 것 같진 않았고 이 환상의 나라 어딘가에는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 일단 밥 먹으러 가자. 

- 뭐???


배도 고팠고, 옆에서 여기저기를 뒤지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더 정신이 나가는 것 같았다.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는 그냥 회피하기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들뜬 마음으로 놀러 온 날의 추억을 정신없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뭔가 아까보다 더 기분이 좋기도 했다. 휴대폰이 없다면 보관함에 아무것도 안 맡겨도 되는 거잖아? 없어지니 편하네,라고 헤실헤실 웃으며 말하는 나를 보던 친구들은 혀를 끌끌 찼다. 밥을 먹고 나니 이제 부딪혀야 할 현실의 문제에 다시 피가 도는 것 같았다. 탑승했던 놀이기구를 역순으로 찾아가 보관 중인 휴대폰이 있느냐고 물었고, 운이 좋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거 봐, 결국엔 찾는다니까. 승리의 웃음을 지어 보이는 나는 스트레스를 즐기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Unsplash @chuttersnap


그러다 몇 년 전 김포공항에서는 '아 내가 드디어 즐기다 못해 미쳤구나' 했다. 친한 언니와 오랜만에 부산 여행을 가기로 하고 들떠있던 아침. 어젯밤 늦게까지 일하다 퇴근했을 언니가 늦잠을 잘 수도 있겠다는 흐릿한 촉이 왔다. 뭐 설마, 늦기야 하겠어? 다행히도 늦지 않게 일어난 언니는 곧 출발한다며 공항에서 보자는 카톡을 보내왔다. 흠, 일단 불안 1단계는 통과했다. 먼저 도착해 발권을 해두고 언제 오냐며 카톡을 주고받던 중이었다. 


- 야 큰일 났다.

- ?????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불안함)


일찍 일어났다고 늑장 부리다가 약간 밭게 출발한 것이 패착이었나. 아무리 지하철 어플을 새로고침해 봐도 제시간 안에 도착할 수 없다는 스크린샷이 가득 담긴 카톡이 계속 날아왔다. 아 말도 안 돼, 지금이라도 내려서 택시를 타자, 전력 질주해서 환승을 2분 안으로 줄이면 가능할지도 몰라, 등등 둘 다 패닉 상태에서 해결책을 내놓으려 하며 중간중간 카톡창을 'ㅋㅋㅋㅋ'로 뒤덮었다. 그때 출발층 입구에서 발을 동동거리고 계속 돌아다니는 나를 또 드론으로 보는 느낌이 들었다.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자 그제야 내 얼굴에 가득한 웃음을 발견했다.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헛웃음이기도 했지만 몸에 피가 돌고 있다는 걸 느끼는 쾌락의 웃음이기도 했다. 또 불안하고 스트레스받는 상황에 웃고 있네. 비행기를 제시간에 탑승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제일 큰 걱정이었지만, 머릿속 한편에서는 다른 버전의 내가 '그러면 뭐 어때, 어차피 지켜야 할 여행 계획도 없잖아. 비행기 값 날려도 술자리 에피소드 하나 얻는 거지'라고 평소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긍정적인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지하철이 총알택시처럼 달려주기라도 했나, 언니는 미친 듯이 뛰어서 제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었고 우리는 마주 보자마자 헛웃음 담긴 쌍욕을 내뱉은 후 게이트로 달려 비행기에 탑승했다. 김포공항이었기에 망정이었지... 잦은 출장과 시차 적응에 정신없이 바쁜 비즈니스맨처럼 비행기에 탑승해 숨을 몰아쉬어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건 사고에 나는 짐짓 심각한 척을 했지만, 발바닥에 땀이 나게 뛰며 해결하러 다녀도 속으로는 신이 났다. 쉬는 날에도 음식 몇 가지를 동시에 하고 빨래를 돌리고 그 와중에 업무 관련 전화를 받는 등 나를 쉬지도 못하게 괴롭혔지만 착착 끝내면서 희열을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즐기는 건 좋은데 문제가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심리상담을 받다가, 왜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가장 확실한 현재를 포기하려고 하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꾸준한 사랑을 주는 연인과 상처를 주고받을 것이 두려워, 계속 이별을 고하며 밀어내던 시기였다. 그 말을 듣고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도 줄곧 불안함에 살았고 그 불안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불안함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치지 않고 사랑을 주는 연인과의 안정된 관계가 새로우면서도 불편했다. 현대인의 주적이라는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는 것이 엄청난 짜증을 불러일으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상의 동반자인 스트레스가 없는 상황에 오히려 더 불안해하기도 했다. 나는 결국 확실한 현재를 밀어내고 불안함을 좇는 모습으로 돌아갔다상담을 해도 열 살 때의 나보다 나은 게 없는 것 같아서 또 답답해해야 했다. 열 살 때의 나는 불안을 침착으로 달랠 수 있었는데.


불안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해결 방안이 있다. 뭔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일단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이면 된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선 안의 문제라는 판단이 서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돈이 얼마가 들든 최대한 피해를 줄이는 선에서 'Mission Clear'라는 한 점을 바라보고 달리면 된다. 어떻게든 해결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불안할지라도 해야 할 일이 우선이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정도의 문제라면 그저 그러려니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해결방안이다.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어?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후회한다고 해서 과거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불안한 상황에서는 안정이라는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안정된 상태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겨우 이렇게 상황을 다잡아놨는데, 언젠가 또 불안한 상황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정체 모를 두려움이 찾아온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사서 걱정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다는 것을 알지만, 무의식의 나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려고 울타리를 친다. 이 안정된 상황에서는 해결 방안이 없다. 안정된 상태는 내가 유지하고 싶다고 해서 평생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울타리를 치며 마음을 다스려야 할 뿐. 모습을 기민하게 바꾸는 스트레스의 상황이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울타리라도 치지 않고 가만히 안정을 즐기며 누워 있다가는 불청객처럼 찾아온 스트레스가 약한 지점을 건드리고, 취약한 상태에서 무너지면 미션 클리어를 위해 움직일 동력이 부족해진다. 


그래서 나는 뭐든 익숙해지기 전, 조금은 불안한 상황을 좋아한다.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해결 방안을 끊임없이 찾아야만 한다. 피가 도는 느낌이 좋다. 실제로 피가 잘 돈다. 나는 여름에도 손발 끝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수족냉증인이지만, 불안정한 상황이 장작이 되면 심장이 들들 끓어 뜨거운 피를 저 멀리 모세혈관까지 보낸다.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그런 매일이 반복되면 적응의 동물인 나는 또 한 번의 안정기를 맞고, 울타리를 친다. 익숙해지면 지루해지고 긴장의 끈이 느슨해진다. 실수가 생기고 나를 타박하고 이리저리 방법을 바꾸며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려 애쓴다. 하지만 익숙한 틀 안에 한번 갇히고 나면 바꿀 수 있는 것이 크게 없다는 것을 알고 좌절을 거듭한다. 



<The Martian>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 마지막 장면. 불의의 사고로 화성에 혼자 남겨진 우주인 마크 와트니는 아레스 4 탐사대가 오기 전까지 살아남기 위해 감자를 재배해 먹고, 기지에 남은 물품들로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며 지구와 통신하려 한다. 온갖 고초 끝에 무사히 지구로 돌아온 그는 NASA에서 미래의 우주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며 중요한 말을 전달한다.


This is Space. It does not cooporate. At some point, everything is going to go south on you. "This is how I end." Now you can either accept that, or you can get to work. That's all it is. You just begin, you do the math, you solve the problem. Then you solve the next one. And then the next. And if you solve enough problems, you get to come back home.
우주는 아무것도 도와주질 않습니다. 어느 순간 모든 게 틀어지면 '이젠 끝이구나' 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포기하고 죽을 게 아니라면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일단 뭐든 시작해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또 그다음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여러분은 살아서 돌아오게 됩니다. 


화성에서 인류의 발전을 위한 일을 하다가 사고로 남겨진 우주인이 살아남기 위해 해야 했던 생존투쟁과, 일개 작은 지구인인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상황은 비할 바가 못 되겠지. 하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 계속 문제를 해결하고, 또 해결하고, 또 해결해야 했던 과정은 화성에서나 지구에서나 똑같이 벌어진다. 각자가 가진 목표를 향해 내 앞에 나타난 불안을 깨고, 안정을 찾고, 또 찾아온 불안을 깨면서 한 발짝씩 앞으로 나가는 것이 문제 해결이다. 삶은 이렇게 불안과 안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문제 해결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삼십 대에 진입한 나는 열 살의 나보다 덜 침착하고 항상 불안을 쫓지만.. 이제는 이러한 나의 모습이 퇴행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안다. 불안한 상황에서 발만 동동거리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나는 발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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