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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May 14. 2021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대충 살면 안 될까요.


연예 기사 말미에 항상 붙는 그 질문.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더 좋은 작품으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항상 여러분에게 웃음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다가가겠습니다.. 등등의 대답. 연예인도 아닌데 최근 나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 아니 취조를 당하고 있다. 


영국에 온 지 벌써 550일이 넘었고, 기한 2년의 비자 만료까지는 앞으로 몇 개월 남지 않았다. 외국에서의 값(질 수도 있었던)진 2년이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가 곧 만 서른이 된다. 팬데믹 가만 안 둬... 나는 6년째 현실을 직시하지 않기 위해 도망을 다니는 중이다. 예상했던 직무와 너무 달랐고, 발전할 미래의 내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던 첫 직장을 그만두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제껏 힘들게 달렸는데 앞으로 몇 달 고민하면서 쉬어도 큰 지장이 없을 거다’라고 안심시켰다. 그런데 실망이 너무 커서였을까. 몇 달 쉬겠다던 나는 그 해를 꽉 채우는 것도 모자라 6년째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마냥 백수로 산 것은 아니다. 생계는 이어가야 했으니 학생 때 아르바이트 경력을 쌓았던 요식업 서비스직 일을 계속했고, 뉴질랜드에 워킹홀리데이도 갔다 왔고, 한국으로 돌아가 관련 업계에 다시 몸을 담갔으나 머지않아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또 사직서를 던졌다. 사회 초년까지는 일과 생활에 묻혀 세상 구경을 할 수도 없었던 우울증이 수면 위로 올라와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고, 고대하던 영국에 워킹홀리데이로 와서는 또 온갖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그리고 더해진 코로나 블루 때문에 일상생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6년 동안 나는 경력도 없고 능력도 없지만 이십 대 때처럼 부조리한 것을 참고 넘길 수는 없는, 애매한 삼십 대가 된 것이다.




너 이제 한국으로 돌아오면 뭐 할 거야?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처럼 나의 다짐이나 가치관을 드러내는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서른도 넘었고 회사다운 회사에 다닌 지도 몇 년이 지났는데, 이제 한참 놀다 돌아왔으니 뭔 대책이라도 마련해 왔겠지?’ 걱정을 빙자한 시비조다. 최근 몇 주간 이 질문을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미묘하게 다른 어감으로 받았는데, ‘너 이제’ 아니면 ’Do you have any p-‘ 까지만 들어도 벌써 스트레스가 몰려와 눈을 껌뻑이며 뒷목을 잡는다. 저도 궁금한데요, 제 계획.


답변 A. 연예인들처럼 두루뭉술하게 다짐이나 가치관을 대답해 본다. “저는 앞으로도 이렇게 방황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이어지는 질문. ‘뭐 해먹고 살려고? 어디 또 가려고? 한국에서 그렇게 살 수 있어?’ 아.. 인터뷰는 여기까진 줄 알았는데요. 후속 질문은 예상 못했습니다.


답변 B. 어차피 욕먹을 거 솔직하게 대답한다. “뭐, 저도 모르겠어요.”

이어지는 질문이 또 뻔하다. ‘서른이 넘었는데 이제는 멀쩡한 직업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 멀쩡한 직업이라.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이제까지 제가 여러 곳에서 풀타임으로 일을 할 때도 그건 멀쩡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나 보군요? 친구들은 종종 위로한답시고 ‘야, 할 일 없으면 우리 회사에 들어와, 내가 일 알아봐 줄게’라고 말하는데.. 연고도 없는 업계에 자리를 내주신다니 대체 이걸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동정이라고 해야 할지요. 욕을 먹은 만큼 아주 삐딱해진다. 


답변 C. 거짓말로 꾸며낸 그럴듯한 계획을 줄줄이 읊어 본다. “비자가 만료되기 전에 유럽을 여행하고, 언제쯤 돌아가서, 가치관이 잘 맞는 작은 회사에라도 들어가 경력을 쌓고, 이직은 언제쯤 할 거며, 공부가 하고 싶으면 유학도 가고요..”

역시나 뻔한 두 갈래의 대답이 따라올 것이다. 첫째는 ‘음, 몇 년간 방황하더니 결국 마음을 잘 잡았구나’ 류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간중간 나이와 성별과 환경과 경제적 상황 등 온갖 장애물을 대면서 태클을 거는 것. 아니, 그럴 거면 뭐 하러 물어봤어요?






사실 나도 대충 되는대로 살고 싶지만 그런 성격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항상 어느 한 점 목표를 지정했다. 지금은 아무런 목표가 없어서 A, B, C 이외에 '솔직한 목표를 진정성 있게 전한다'는 답안지가 없는 것이다. 6년 동안 내가 원하는 것, 목표로 하는 것, 미래에 되고자 하는 모습을 그려보고자 눈물을 한 트럭 쏟으며 가슴 아프게 고민했지만, 아직도 앞날을 생각하면 검은색 도화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 때는 미래의 내 모습을 조금이나마 상상해서 그려볼 수 있었다. 그런데 희미하게나마 뭔가가 보이던 때를 지나, 이제는 우울과 무기력이 도화지 위에 검게 앉았다. 힘을 내어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검은색 크레파스를 긁어내고 나면 밑에 차곡차곡 쌓은 무지개색이 보일까 싶지만, 긁을 힘도 없다. 이루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는 지금의 내가 걱정되는 사람은 나 스스로지, 나를 걱정하는 척하며 비수를 날리는 당신들이 아니다. 


어떤 계기로 번쩍 눈이 열리는 경험을 한 뒤 저는 이걸 해야겠어요! 하고 진로를 트는 사람도 있고, 몇 날 며칠에 걸쳐 조용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도 많다. 나는 6년이라는 시간을 들였지만 마땅한 답을 아직 찾지 못한 것 뿐이다. 그동안의 생각 파편들을 얼기설기 그러모아 산들바람에도 흔들릴 듯이 얄팍한 미래를 만들어본 적도 있다. 용기가 나지 않을 뿐이다. 실행에 옮겼다가 그게 또 실패로 돌아갈까 봐 두려워 현실 직시를 피하고 있다. 내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할까 봐. 실패하면 또 도전하면 되는데 자꾸 시간이 발목을 잡는다. 그러다가 또 6년간 주저앉게 되면 어떡해요? 다시는 이런 고통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사실 작은 거라도 목표가 없겠느냐만은, 나는 남들에게 공유할 의무가 없다. 그들도 나의 인생에 참견할 의무가 없다. 걱정을 빙자한 잔소리를 늘어놓을 거라면 시도도 하지 말고 집어치웠으면 좋겠다. 여기서는 내가 이방인이고 친구가 별로 없으니까 들을 일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한국에 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게 될 것을 뻔히 알기에, 뭔가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남 걱정만 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불법 체류를 할 수도 없으니 원. 몇 개월 안으로 결판을 내거나, 그냥 죽상을 하고 돌아가는 수밖에.


물론 이 모든 것은 나의 피해망상일 수도 있다. A, B, C로 대답을 돌려막기 해도 끝없는 질문이 돌아오니 날이 선 것이다. 좋은 의도로 물어본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나에게는 명절에 폭탄처럼 쏟아지는 성적/취업/결혼/자녀계획/육아/승진 관련 질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오늘도 나는 자신을 돌아보며 알아가기 위한 질문을 하는 한편, 이런 솔직 무례한 질문에 어떻게 적당히 대처하면 좋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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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eilee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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