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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Feb 25. 2023

마음을 정화시킬 땐 조용한 곳으로

전남 구례 천은사 방문기

지리산으로 향했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뭐 하실 거예요?”라는 주변인들의 물음에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템플 스테이 가려고요”라고 여기저기 대답해 두어서, 마음이 바뀐대도 안 가기가 민망할 터였다. 주변에 여기저기 나의 다짐을 선언하는 것이 빼도 박도 못 하게 목표를 실천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건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효과가 좋다니? 살을 빼겠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고 다닐 걸 그랬다.


평창 월정사, 고창 선운사, 양양 낙산사, 예산 수덕사, 대구 동화사 등.. 가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나는 순간이동 마법을 쓸 줄 모르는 뚜벅이 여행자. 이래저래 알아보다가, 유명해서 관광객들이 많거나 템플스테이 규모가 커서 나 같은 여행자가 많으면 여러모로 불편할 것 같아 조금 작은 절을 선택했다. 전남 구례의 천은사. 휴식형 일정에 혼자 사용하는 방으로 신청하여 2박 3일간 강제 묵언수행을 할 마음으로.



“웬 템플스테이?”라고 되묻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음, 그래. 네가 휴식이 필요하구나. 안정이 절실하구나. 스트레스가 많은가 보구나. 끄덕끄덕 하면서 그들은 이런 말을 입밖에 내뱉기도 하고 다 안다는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한 프로젝트를 마쳤고 그러면서 사람이 점점 미쳐가는 게 외부로도 너무 잘 보였기 때문이겠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좋지 않다는데, 기분이 태도가 되는 걸 보면서도 이성을 찾기 어려운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 오랜 시간들을 털어내고 그 오랜 미움을 비워내려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작은 절이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심지어 스님들도 잘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한옥 건물이라 방음은 잘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다른 분들이 모두 나처럼 홀로 휴식하러 온 분들이라 서로에게 피해 주는 일이 없어서 좋았다. 가져간 책들을 쉼 없이 읽을 수 있는 시간에 감사했고, 밤이 되면 가벼운 요가를 하고 따뜻하게 잠들 수 있어서 좋았다. 밥(공양)이 너무 맛있어서 행복하게 웃으면서 먹었고, 주변을 한참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천은사 주변으로는 상생의 길이라고, 저수지와 지리산 초입 자락을 따라 걷는 길이 조성되어 있다. 하루에 두 번씩 그 길을 걸었다. 발걸음 가볍게 쭉 걷다가 쉼터가 나오면 앉아서 쉬기도 하고, 바람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물의 흐름을 보기도 하다 보면 한 시간 안에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걷다 보면 해결되는 것이 있다. 따뜻한 햇볕 아래를 걷다 보면, 태양이 빨래의 물기를 거둬가듯 나쁜 마음이 조금은 증발된다. 나는 나쁜 빨래가 되어 태양에게 많은 것을 가져가달라고 빌며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나오는 날이 되면 후기를 작성한다. 도시를 떠나와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는, 모든 여행자들이 표현만 다르게 썼을 것 같은 문구를 종이에 끄적이면서.. 기대했던 것만큼 “와! 템플스테이 너무 좋아!”라는 소감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였을까..? 머무는 2박 3일 동안 뭔가를 해결하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나는 오랫동안 힘들었던 나의 마음을 치유하고, 마음에 켜켜이 쌓인 미움이란 감정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었는데.. 부처님 곁에만 있는다고 단박에 깨달음을 얻을 순 없다. 하루아침에 생겨난 감정이 아니듯, 하루아침에 없어지기만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미움을 내려놓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신년사주를 봐준 철학관 선생님은 “세월선생을 만나야 한다”라고 하셨다. This too shall pass, 이 또한 지나가리라. 프로젝트 기간 내내 마음속으로 외치고, 보이는 곳에 써 놓으며 되뇌었던 그 말이 끝나고도 유효할 줄은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말 괴로웠던 이것 또한 모두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오리라. 


근데, 이것도 깨달음이구나. 나는 템플스테이에서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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