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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씨티 Mar 02. 2023

끊고 싶지만 끊을 수 없을 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야

왜 담배만 나쁜 중독인가?

처음 내 발로 편의점에 걸어 들어가 담배를 샀던 건 스물아홉 살 가을이었다.


처음 담배를 피워봤던 건 아일랜드 어학연수 시절이었다. 가끔 파티에 가서 흡연을 하는 친구들이랑 어울리게 되면 한 대씩 피곤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맨 정신에 내 돈 주고 사서 피울 만큼 간절하게 원한 적은 없었다. 미친 듯이 나를 긴장하게 만든 출장 이벤트가 있기 전까지...


그 해 가을, 나는 한국에 세 번째로 혼자 출장에 보내졌다.

'출장을 왔다'기보다 등 떠밀려서 '출장에 떠밀려 왔다'는 말이 적합했다. 전혀 해본 적 없는 중대한 업무들과 미팅들이 단지 회사에서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모두 내게 맡겨졌다. 사회생활 시작한 지 갓 3년 차, 고객사를 직접 대면하는 경험이 많지 않았던 나는 엄청나게 베테랑인 척 연기했어야 했다. 앳된 얼굴을 가리려고 안경도 사서 쓰고, 화장도 더 진하게 했다. 


미팅 장소가 가까운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업무를 마치니 늦은 밤이 되었다. 

다음날 참석할 미팅 생각만 해도 다리가 후덜거렸다. 일찍 잤어야 했는데 긴장을 해서 그런지 잠이 오질 않았다. 오랜만에 한국 TV도 보면서 긴장을 풀어보려 했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한참 있다가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샀다. 처음으로 콘돔을 샀을 때도 이렇게 두근거리진 않았던 것 같은데...ㅎㅎ 비행을 저지르는 어린아이처럼 죄책감이 올라왔던 것 같다.


로비 앞 벤치에 앉아 담배를 한 대를 피우는데... 온몸을 휘감고 있는 긴장들이 싸악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아무도 몰라주는 내 이 불안함을 얘가 알아주는 기분이었달까. 그날 밤 혼자 벤치에 앉아 한참 멍을 때리다가 들어가 잠이 들었다. 


그 뒤로도 베테랑의 과장급 매니저 정도로는 보여야 하는 출장들은 연이어 계속되었다. 한국 프로젝트들이 늘어나면서 회사에서 내 위치는 안정을 찾아갔지만 동시에 내 스트레스 레벨도 함께 솟구쳤다. 그때 이후로 긴장될 때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흡연은 습관이 되었다. 


싱가폴 회사를 관두고 한국에 돌아와 여행을 하면서 쉬는 동안엔 흡연 욕구가 올라오지 않았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달고 살던 예전의 나에게 흡연은 긴장을 푸는 수단이었던 게 확실해졌다. 


무서웠던(?) 미팅 전날밤과 미팅 당일


담배가 폐암을 포함한 각종 암 발생의 원인이며 기형아 출산의 위험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수명을 단축시키는 백해무익한 기호 식품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흡연자라 할지라도 담배를 피우러 가면서 매번 놀이공원 가듯이 신나게 가는 사람은 없다. 속으론 '아씨, 끊어야 되는데.' 생각하지만 끊지 못해 피운다. 흡연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중독 증상의 하나일 뿐이다.


중독이라 해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커피, 음식, 쇼핑, 스마트폰 중독부터 시작해 문제라 여겨지는 술, 담배, 도박, 마약, 자위, 포르노, 자해까지 중독의 증상 리스트는 끝이 없다. 건설적으로 보이는 일이나 운동 같은 행위들도 지나치게 많이 하면 '일 중독'이고 '운동 중독'이다. 당신은 모든 중독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만하고 싶지만 뭔가 계속 먹고 있다면 음식중독이다.
그만하고 싶지만 술을 계속 마시고 있다면 알코올중독이다.
그만하고 싶지만 약에 계속 손을 댄다면 약물중독이다.
그만하고 싶지만 성적 자극을 계속 탐닉한다면 섹스중독이다.
그만하고 싶지만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서 계속 일을 해야 한다면 일중독이다.
그만하고 싶지만 공허함을 견딜 수 없어 스마트 폰을 끼고 산다면 스마트폰 중독이다.
그만하고 싶지만 아무리 고쳐도 자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칼을 덴다면 성형중독이다.


당신은 무엇에 중독되어 있는가?

경쟁적이고 치열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무언가에 조금씩 중독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중독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중독은 성격적인 결함이나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다. 중독은 스트레스나 내면의 고통에 대응하는 대처기제(coping mechanism)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안도감을 주는 행위를 쉬지 않고 하고 있는 것뿐이다. 



이런 사시을 모르는 사람들은 중독의 증상 자체를 제거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안다.

일 중독이 문제가 된다면 일을 못하게 하는 게 답일까? 아이가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스마트폰을 뺏어버리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하는가? 당신이 중독되어 있는 게 무엇이든 중독 행위는 ‘증상’이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걸 이해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근원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중독 증상만 집중해서 온갖 노력을 다해 멈춰봐짜 다른 중독으로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이다. 담배를 끊고 비흡연자가 됐지만 술에 빠져서 알코올중독자가 된다면? 담배 때문에 아픈 게 나을까 술 때문에 아픈 게 나을까?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 증상 자체가 습관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자신이 왜 그 행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다. 중독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싶다면 한 단계로 전으로 되돌아가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게 흡연이라면 이렇게 물어보는 거다.


 어떤 기분에 대처하려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는가?
 
당신은 어떤 기분을 대처하려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가,
당신은 어떤 기분을 대처하려고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가,
당신은 어떤 기분을 대처하려고 계속 무언가 사기 시작했는가, 
당신은 어떤 기분에 대처하려고 계속 무언가 먹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기분에 대처하려고 계속 스마트 폰을 쥐고 있는가.


나도 극도의 긴장과 불안감을 대처하려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 흡연이 습관이었다.

나도 삶이 무료하고 심심할 때마다 술과 음식을 찾아서 건강에 적색 신호가 왔었다.



이 세상 그 무엇이든 과도해져서 선을 넘으면 문제가 된다. 

고결하고 아름다운 사랑마저도 과도하면 집착으로 변색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무언가에게 지배당하고 있다.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고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박약하고 나약할까'라고 자책하지 않길 바란다. 당신은 그 누구보다 고통에서 벗어나 안도감을 되찾길 절실히 원할 뿐이다. 


중독을 치료하는 건 재밌지만은 않은 작업이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이 피해왔던 감정이나 고통의 세계와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을 피하고 도망 다니는 게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우리는 빠르고 쉽게 안도감을 주는 뭔가를 대신 선택하고 있다. 당신이 선택한 것이 술이든, 담배든, 성이든, 약이든, 뭐든 간에.


아프다고 진통제를 계속 맞고 있으면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없다. 진통제를 끊는 순간 우리는 어디가 아픈지 딱 가리킬 수 있게 된다. 고통은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지표이다. 


당신의 중독 증상 밑에 숨겨진 진짜 문제를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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