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공동묘지는 주로 거주지 근처에 자리한다. 삶과 죽음은 하나의 연결선에 있기에 받아들이라는 주문처럼 여겨진다. 보통 묘지를 선정하면 25년까지 계약하고 돈을 내야 한다. 이후에 가족들이 관리하지 않으면 묘지는 자연스레 없어지는 존재가 된다.
망자와 산 자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만나는 도시의 공동묘지. 난 누군가와 무언의 약속을 한 탓에 어김없이 이곳을 찾는다.
먼저 간 이들을 추억하기 위해 찾아든 산 자들은 자신 또한 한 평 자리에 몸을 누일 것을 알기에 잔뜩 겸허해진 심장을 안고 묘지를 나선다.
"Gibt es ein Leben nach dem Tod?"(죽음 후에 삶이 있는가?"
난 묘지를 찾는 산 자들에게 말을 걸고 더불어 축복의 메시지도 잊지 않는다. 처음엔 숙제를 할 것처럼 드나들었던 이곳은 어느새 운명처럼 내 삶으로 들어왔고 이제는 바쁨, 이라는 내 일상에서 또다른 쉼,이라는 선물로 다가왔다.
오래 된 묘비명에는 시간의 풍화작용으로 빗바랜 자욱만이 남겨 있고, 기억 속에 잊혀져간 망자들은 무성해진 풀자락으로 흔적을 대신한다.
도시 한복판에 고요한 묘지가 있다는 것은, 늘 살아 있는 자에게 언제든지 그곳으로 갈 수 있다는, 그래서 인간의 유한성을 상기시키는 존재다.
묘지 숲....
떨어지는 빗방울을 머금고 있다 내가 지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머리 위에 쏟아내는 앙증스러움도 반갑다. 그들도 내가 왔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독일에 살고 있지만 이곳에 내가 묻힐 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한다. 아마 이곳에 사는 많은 파독 1세대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언젠가 자신의 육신은 고향산천에 가서 묻힐 거라는 상상을 하며 돌아갈 날을 꼽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맘대로 되진 않은 것 같다. 인생의 가장 근원적 불안은 자기의 의사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또한 대부분 자기의 의지에 반하여 죽어가야 한다는 것에서 비롯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