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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강 작가의 독일삶 Sep 25. 2017

블라다스 여사와의 마지막 악수

부르고 싶은 화음

 그녀가 일 주일 전부터 식사를 하지 못했다.


블라다스 여사는 치매와 왼쪽 손발이 뇌졸증으로 마비가 온 중증환자였다. 나와는  6개월 정도 함께 했다. 내가 말을 건네면 겨우 ' Ja'(Yes) 라고 대답했고, 자신이 싫은 부분이 있으면 오른손을 휘저으며 거부 표시를 했다.

요거트를 좋아한 그녀는 바닥이 구멍이 나도록 요거트 통을 핥곤 했다. 다행히 블라다스 여사가 먹는 약은 요거트에 섞어서 드시게 했기에 언제나 요거트는 그녀 차지였다. 의사 전달이 안 되고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그녀는 늘 요양보호사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삶에는 의미가 있기에 늘 그녀가 살아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싶었다.

난 가끔 그녀에게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흘러간 독일 동요와 내가 좋아하는 '로렐라이 언덕'을 불러주면, 그녀는 마치 흘러간 옛 추억을 더듬기라도 하듯 눈을 지그시 감곤 했다.


 한 번은 에델바이스를 영어로 흥얼거리며 불러줄 때였다.

블라다스 여사가 흥얼거리며 내 노래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 소리는 참 묘했다. 그녀의 소리는 가끔은 휘파람 같기도 하고 둥둥 울리는 북 같기도 했다. 멀리서 바람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지는 듯한 여운이 있었다.

그후로 난 틈만 나면, 난 말도 안 되는 화음으로 그녀의 음을 맞춰주곤 했다.


 그에겐 가족이 없다. 아니 있다 해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누구나에게 쓸쓸한 노년이 기다리고 있다면 순응해야 한다. 하지만 막상 노인이 되고 나면 그 무게가 더욱 커진다. 


그렇게도 흥얼거리던 그녀가 어느 날부턴가 시름시름 앓고 음식을 거부했다. 아무리 요거트를 들이밀어도 그의 입은 토해내기 시작했다.

식음을 끊으니 그의 안색이 확연히 달라졌다.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얼굴 위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 2인 1실에서 독방으로 그를 옮겼다. 그것은 생의 이별을 준비하는 의미기도 했다. 보통 노인들이 삶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판단되면 방을 옮긴다. 그곳 방문 앞에서 뒤러의 '기도하는 손'의 그림이 붙어 있고, 검은 리본까지 붙어 있다. 방 안에는 그의 죽음의 기약을 묵상하기라도 하듯 장엄한 음악을 틀어놓는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말했다.

"경란! 너, 내일 근무니?"

"아니, 낼 쉬고 모레 근무"

" 그럼 오늘 아무래도 작별인사해야겠네. 블라다스 부인에게."

그녀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담당의사도 말해 주었다.

그의 방에 들어갔다. 입을 반쯤 벌린 채 영혼의 세계를 만끽하는 듯 평온해 보였다.

"블라다스 여사님! 이제 가족이 있는 곳으로 편안히 가시길요."


이틀이 지나 다시 근무하러 왔을 때 이미 그녀는 먼 여행을 떠나고 없었다. 고단했던 삶과의 이별을 끝낸 것이다.

그가 사용했던  테이블에는 그녀에게 전하는, 짧은 인사를 적는 공책이 놓여 있었다.


Gottes segen...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길.)


그리고 소리 없이 문을 닫고 나왔다.

삶의 순간은 참 짧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에게 선물받은 생의 하루는 안개처럼 뿌옇게 기억을 남기고 간다. 상실은 우리의 가슴에 구멍을 남기고 작은 흔적으로 이별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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