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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강 작가의 독일삶 Sep 30. 2017

할머니도 소녀였다

추리소설 할머니와 안개꽃 할머니

 독일 요양시설의 아침은 분주하다. 6시 30분부터 근무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10분 전에 와서 제복을 갈아입고 근무실에 앉는다. 그때부터는 밤근무자들에게 밤 사이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오늘 있을 일들을 상의한다. 눈 아래 다크서클이 충만한 이보네가 밤근무가 피곤했는지 하품을 해댄다. 얼른 집에 가고 싶은지 자꾸 시계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생각난 듯이 나에게 한 마디 툭 던졌다.

"경란! 두우히슈테커 할머니가 너무 우울해 하네. 네가 한 번 가볼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평소에 두우히슈테커 할머니와 난 절친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가깝다. 퇴근 무렵이면 내 유니폼 주머니에 초콜릿을 챙겨주는 그녀. 깜박 잊고 유니폼 주머니에 넣고 있다 집에 와서 꺼내보면 물컹하게 늘어져 있는 초콜릿을 발견한다. 그녀는 나에게 늘 친구,라고 말한다.

전형적인 독일 할머니인 두우히슈테커는 정갈한 옷차림과 소녀같은 머리핀을 꼽고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녀의 방은 2인 1실이다. 창가 쪽은 레너 할머니가 벽쪽은 그녀가 자리했다. 독일 양로원은 좋은 시설인 경우 대부분 1인실이지만 2인실도 더러 있다. 혼자 있는 걸 즐기는 어르신들은 2인실을 불편해하지만 경제적 이유로 불가피하게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레너 할머니는 늘 책을 끼고 산다. 밖으로 나온 적이 거의 없다. 자신의 방에서 책을 읽고 가끔 나오면 보행기구에 의존해 걸어나온다. 그래서인지 배는 불룩 나오고 입는 바지마저 작아져 앞 부분을 가위로 잘라서 품을 늘렸다. 나중에 이 분에 대해서 글을 쓸 기회가 있겠지만, 그녀는 추리소설 광팬이다. 늘 추리소설을 읽는다고 스스로도 말을 했다. 그녀는 독일 추리작가 샬로테 링케의 작품을 즐겨 읽는다. 두툼한 양장본의 책을 돋보기도 없이 읽는 레너 할머니를 보면 젊은 나조차도 혀를 내두른다. 나에게도 몇 권 빌려줬는데 독일어 책을 읽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해 밀쳐두었던 적이 있다.

 반대로 두우히슈테커 할머니는 대화를 좋아하고 무척 감성적인 분이다. 아기자기하게 담소를 나누고 싶어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같은 방에 사는 레너 할머니는 고독을 즐기며 자기 안의 세계 속에 살기에 맞지 않은 건 당연하다.  늘 일어나면 책만 끼고 사는 책벌레기에 대화 상대가 아니다. 그러니 두 사람의 생활철학이 다를 수밖에.

레너 할머니는 그야말로 추리소설에 빠져 현실과 드라마를 구분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밥을 가져가면 겨우 몇 숟갈 뜨지 않고 책 속에 다시 고개를 들이민다. 그리고 지인이 사다주고 간 비스켓을 집어먹고는 허기를 떼운다. 밤이 되면 어김없이 소등한 상태로 책을 읽다 잠자리에 눕는다. 옆에 있는 두우히슈테커 할머니와는 말도 거의 한 마디 정도만 할 정도다.

그래서인지 두우히슈테커 할머니는 늘 누군가와의 소통을 갈구한다. 결국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는 내 품에 안긴다. 그래서 난 그녀의 손을 이끌고 양로원의 큰 홀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노래나 미술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 여러 명이 모인 카페테리아로 오곤 하는데 오늘은 통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방으로 찾아가자, 듀우히슈테커 할머니는 울음부터 쏟아냈다.

너무 힘들어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레너 할머니의 독서에 방해될까 싶어 손을 이끌고 복도로 나오자 다시 하소연을 한다.


"저 여자는 대화를 하고 싶어도 늘 책만 들여다 봐! 난 외로워. 그 사람은 책 읽다 귀신이 되고 말 거라고."


여전히 똑같은 푸념이었다. 그래서 난 그렇게 위로하기로 했다.


"내가 놀아주면 되잖아요. 우리 가서 노래 불러요."


난 그녀의 손을 끌고 카페테리아로 와 노래를 불러줬다. 그리고 우스꽝스런 표정으로 우리 둘다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소녀처럼 금세 헤헤,거렸다.

퇴근을 하며 그녈 한껏 껴안아주고는

"내가 당신 곁에 있으니 외로워 하지 마요!"

외로움에 처절히 몸부림치는 가녀린 영혼.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그녀의 황혼 들녘은 쓸쓸한 바람만 분다. 휙 지나와버린 인생의 뒤안길에서 어느 순간 맞닥뜨려진 고독이 그녀의 삶을 할퀸다. 그래도 고향을 떠나 먼 이국땅까지 달려온 나도 있지 않은가.

늘 사람은 사랑을 원한다. 오늘따라 그녀의 웃는 모습이 안개꽃 같다고 생각했다. 시들 듯 하면서도 여전히 여린 꽃테를 유지하는 안개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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