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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강 작가의 독일삶 Sep 25. 2017

전직 독일어교사인 그녀의 일기책

시를 쓰는 독일 할머니

 치매의 양상은 다양하다. 초기에서부터 중증까지....... 또 공격적인 치매와 우울질적인 치매까지. 

그들의 성향을 이해하고 다양하게 대처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나마 로텐발트 할머니는 이미 90세가 넘었지만 비교적 총기가 남아 있는 분이었다.

며칠 전 로텐발트 할머니가 작은 책을 나에게 건넸다. 책이라고 하기엔 조금 엉성한, 프린트해서 간단하게 제본한 묶음이었다. 그 안에는 로텐발트 할머니가 틈틈이 쓴 자작시가 들어 있었다. 직접 그림까지 그린 제법 멋스런 책이었다.


 1930년에 태어난 로텐발트 할머니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뼈아픈 유년시절을 보냈다. 안네 프랑크처럼 감수성이 넘쳤던 그녀는 젊은 시절 특수학교에서 독일어 교사였고 취미로 시를 쓰곤 했다.

늘 자작시를 써서 아이들에게 들려줬다고 한다. 그녀의 시에는 독일의 4계절에 대한 감흥이 단정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었다. 독일친구 말에 의하면 독일어 교사답게 문법도 아주 정확하다고 했다.


그녀는 치매 초기를 지나면서 지나온 추억을 잊지 않고 저장하기 위해 글을 쓰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 내가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까지 나는 글을 쓰는 걸 쉬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눈에 이슬이  비쳤다. 지나온 인생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그녀만의 몸부림이었다.

자신의 기억은 책 속의 시에 흐르고 있었다.


Der Altersabschnitt "die andere Zeit"

Zeigt sich nun im Stillen

Mit den Lücken im bunten Kleid

Und dem eingeschlafenen Willen.


Früher war alles so leicht,

Man machte viel nebenbei.

Heute hat man alles erreicht.


Das Leben bringt allerlei.

Lebensabschnitt? Zeit und Denken.


Ein Tag dem anderen gleicht Tag

Es kann auch sein:

Zeit des Schenkens,

Man trennt sich von allem leicht.


Nun ist alles probiert und gehabt.


Man beginnt die letzte Reise.

Ein jeder ins jenseits trabt

Und jeder auf seine Weise.

..................


노년의 언덕.....

화려한 옷에 난 구멍과 잠들어버린 의욕과 함께

침묵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시간


예전에는 모든 게 쉬웠지

이것저것 많은 일을 했어

이제 모든 걸 이뤘어


삶은 많은 것을 가져오지

삶의 단절, 시간과 사유

다른 날과 똑같은 반복적인 하루


물론 그럴 수 있어

선물 같은 시간

이제 모든 것과 쉽게 결별해야 해

많은 것을 시도하고 품었지

이제는 마지막 여행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어딘가로 떠난다

......

로텐발트 할머니는 자신의 주변정리를 잘하는 이였다. 또한 생활의 루틴이나 규칙이 정확했다. 예를 들어 이불을 개어서 놓는 방법이나, 셔츠를 걸어 놓는 모양이나, 심지어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놓는 장소도 정해 놓았다. 신입 요양보호사가 그것을 잊고 다른 곳에 놓기라도 하면 무척 힘들어하며 끝까지 제대로 할 때까지 가르치는 집요함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동료들은 그를 싫어하는 듯 하면서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은 많았다. 지인들이 들고 온 선물들을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그는 삶이라는 수레바퀴가 지속되는 순간까지 자신의 규칙을 준수하려 애썼다. 죽음의 시간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린 시절부터 루틴처럼 해왔던 일들을 지고지순하게 지키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삶의 마지막에도 장의사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신의 손을 반듯하게 모으고 숨을 거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을 끄고 방문을 나서는데 그가 말했다.

 "커튼이 절반만 열어 줄래요?"

그는 계속 내가 머물러 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방에도 날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있다. 바쁘 방문을 닫고 나오는 뒷모습에 그녀의 눈빛이 느껴졌다. 그것은 진한 외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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