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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타기 전 두 딸에게 남기는 말

애들아! 용기란 불확실성에 기꺼이 머물고자 하는 것이래

by 연강작가 Mar 03. 2025

나의 사랑하는 딸1호와 2호에게

 엄마가 내일이면 두 달 이상을 너희들과 떨어져 지내는구나. 한 달 정도 한국에 나간 적은 있었지만, 엄마 혼자 이렇게 긴 시간은 처음인 듯 싶다.


막상 결정을 할 때는 망설여졌는데, 너희들이 '기꺼이 다녀오라'고 말해주어서 엄마는 참 고마웠어. 김치도 한 통 담아놓고, 김치양념도 따로 만들어놓았지만 그거야 금방 떨어질 거고 이후에는 너희들의 역할이 커지겠지. 아무튼 아빠랑 먹고싶은 거 아끼지 말고 잘해 먹길!


 이제는 너희도 성인이 되어 믿고 맡길 수 있어서 고맙고 기특하다.


 독일에 온 이후, 우리 가족은 한 번도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내본 적은 없었던 것 같구나. 주변엔 아빠가 한국에 계시는 기러기 가족이나 혼자 사는 유학생들도 많은데  그나마 너희는  태어날 때부터 줄곧 함께 있었던 것도 서로에게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엄마는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있어서 늘 품이 그리웠어. 하지만 위의 이모들처럼 공부를 위해 상급학교로 가야했으니까 불가피한 이별이었지. 주말마다 부모님 집에 반찬을 가지러 갔지만 홀로 돌아올 때는 늘 허전했단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어린 나이였는데 따로 살았으니 말이야. 내 인생의 첫 번째 도전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


엄마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도전의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


무엇보다 독일에 온 것은 가장 큰 터닝포인트였어.

사실 독일이라는 나라는 나에게 생소했어. 물론 독일 출신의 작가들 책을 읽곤 했지만, 그건 상상의 산물이거나 낭만의 덩어리였지.


처음 독일에 왔을 때 아침에 교회 종탑의 '땡땡' 소리를 들었을 때 이국의 시간을 실감했단다. 뭐랄까? 소설 속의 낭만이랄까? 하지만 이런 낭만적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현실로 체감되더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했고, 이방인으로서의 어색함, 불확실성, 상대적 박탈감이 일었다. 그때부터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단다.


마치 흔들리는 버스에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느낌이랄까?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거 말이야. 지금도 그런 느낌이지만 그땐 더 그랬던 것 같아.

브런치 글 이미지 2


한국에 계신, 너희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임종을 보지 못했을 때는 상실감이 정말 컸다.


다행히 한국 가족들이 나를 기다려주어 입관식에는 참여했었지. 할아버지의 눈감은 모습을 보며, 편찮으실 때도 가지 못했던 불효가 생각나 죄책감이 미치도록 몰려왔단다. 하지만 그날 밤 빈소에서 잠시 쓰러지듯 울며 누워 있는데 할아버지가 하얀 옷을 입고 나를 향해 웃고 있는 모습이 정말 평안해 보였단다.

눈을 떠서 그때서야 할아버지가 하나님 나라에 가셨구나, 생각이 들어 안심했단다. 다시 만날 거라는 확신과 함께.

그래서 한국행을 내려놓고 독일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단다.



먼 타국에 살면서 엄마는 다른 길을 갈지, 머무를지 늘 확신이 없었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 설레임은 잠깐이었고 두려웠다. 너희들도 아직 어렸고, 이 거친 땅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어.

마치 신이 나의 눈을 가린 채 어딘가로 데려간다는 느낌이 들었어. 눈을 떠보니 내가 접해보지 않았던 세상이었지.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더라고. 생존하는 법을 배우려고 애를 썼던 것 같아. 3년 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기로 했을 때 불확실성으로 두려움이 일었단다. 하지만 그곳에 기꺼이 머물고자 하자 용기가 생겼단다.


 오쇼 라즈니쉬는 인간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말들은 참 의미가 있어. 그중 용기에 관한 문장이 기억에 남는구나.


"자유는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그 두려움은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인생의 본질은 불확실성이다.  진정한 용기란 그 불확실성에 기꺼이 머물러 있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나는 이 문장이 너무 좋아서 최근에 올렸던 연극 공연 희곡에도 마지막 대사에 인용을 했단다. 인생은 불확실한 게 사실이야. 하지만 용기는 그 불확실성에서 출발한다는 거지. 미래가 예측 가능하다면 삶이 아니란다. 우리는 1분 후의 삶도 예견이 힘들어. 그래서 삶은 가능성과 희망이 있는지 모르겠어. 미래를 알아버리면 더 자포자기하거나, 되는대로 살게 될 것 같아.


나는 언젠가부터 늙어가는 것을 확실히 느낀단다. 너희들은 엄마가 제일 예쁘고 젊어. 라고 해주지만 그게 날 위한 위로인 줄 알고 있어. 하하.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면 기분 좋아!)


아마 오십이 넘어서부터 그런 생각이 더 많았던 것 같아. 하지만 눈에 보이는 실재를, 인식을 바꾸면 다르게 살 수가 있다고 깨닫기 시작했어. 나는 그것을 성장이라 부른단다. 육신은 노화될지 모르지만, 정신은 성장하고 싶은 거야. 우주의 많은 부분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모든 순간마다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내 자신이란다. 버나드쇼의 무덤 앞에는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쓰여있다지? 그게 딱 인생인 것 같아.


 두려움 때문에 뒤로 미룬 날들이 많았지만 인생의 봄날은 내가 행동하는 오늘이란다.   


그동안 우리 딸들 많이 힘들었지?


특히 딸1호는 2019년 아빠가 많이 아프고, 엄마도 수술을 받을 때 아비투어(독일 대학입학 자격시험)를 보는 시즌이었잖아. 제대로 성적이 나와주지 않을 때는 엄마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맘을 끓이는 것을 보았단다. 엄마, 아빠도 너무 힘들었던 때라 도와주지도 못했어. 동생도 있었으니 네가 장녀로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해본다.


딸2호! 너도 인종차별이 심한 학교 선생님 때문에 힘들어했던 것 기억난다. 엄마도 그 선생님 만나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이민자로서 느끼는 감정이 밀려와서 눈물이 나더라.


하지만 딸을 믿었어. 너에게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하잖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의 3개월은 너에게 참 좋은 시간이라고 했지? 네가 태어난 나라에서 오롯이 너를 봐주는 친지가족의 사랑 속에서 치유와 회복하는 시간은 나에게도 큰 위로였단다. 힘듦의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용기를 내어 박차고 나온 너에게 박수를 보낸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류시화 시인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단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다. 모든 과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날개에 매단 돌과 같아서 지금 이 순간의 여행을 방해한다"


엄마는 너의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서 새처럼 날아갔으면 좋겠구나. 지금 넌 아주 잘하고 있잖니?



 

인생은 여러 번의 좌절을 경험하게  되어 있단다. 순탄한 삶이란 그리 존재하지 않아. 매 인생마다 자기만의 상대적 고통 속에서 삶을 살아간단다. 앞으로의 인생에 파도들이 몰아쳤다가 가라앉을 거란다. 삶은 그러한 행위의 연속이지.


그런데 말이지. 그럴 때마다 너는 잃을 것이 없단다. 너는 어차피 바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란다. 그때마다 바다가 된 너는  '파도는 몰아치는 게 제 맛이지. 조금 있다가 고요해질 거야'라고 말하면 된단다.


엄마가 지나왔던 시간을 돌아보니, 내가 받은 행운이나 만남은 뜻밖의 선물이었어. 불확실성에서 존재하는 실재였다. 나는 그것을 '신의 은혜'라고 부르지.


 너도 알다시피, 언젠가 엄마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독일인 게르다 할머니를 통해 직장을 얻었고, 그림전시회에서 잠깐 만난 자연치료사 분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났잖아. 그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한 나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나눠주었단다. 그야말로 귀인을 만난 거야.


삶에서 사람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고 그것을 다시 다른 사람과 나눌 때
그 영역은 더욱 넓어진단다


우연을 가장하지만 사실 신이 나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인 거지. 너희들 인생에도 똑같은 일들이 일어날 거야. 그럴 때 그것을 쉽게 판단하거나 거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지만 기꺼이 머무르고자 하는 용기를 가졌을 때 그 결과물들은 바로 너희들의 것이 된단다. 운명은 때론 의지보다 힘이 세지만, 간절한 염원은 운명도 뚫을 수 있다고 믿는다. 엄마의 지나온 삶이 그런 것 같아.


애들아!

칼 융이 나에게 해준 말을 대신 전한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사건이 되고 밖의 현상으로 나타나며 인격 또한 그 무의식적인 여러 조건에 근거하여 발전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게 된다"


그 무의식이란 불확실성에 직면하는 내재된 용기란다. 그래서 의지와 운명은 하나의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지. 앞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던 일들이 하나하나 체험되는 순간들이 오길 바란다.

오늘 나에게 오는 것을 순응하고 내일의 불확실성을 기꺼이 내 것으로 만드는 노력, 그게 잘 사는 비결인 것 같구나.


사랑하는 너희들의 불확실하고 불안전한 미래를 응원한다.




P.s

내일 또 비행기를 타니 감회가 새롭구나.

엄마는 새로운 도전을 향해 발을 딛는 것 같아. 죽을 때까지 그러겠지. 때로는 불확실성이 두렵지만 부딪혀보는 것도 진정한 용기인 것 같아.


엄마 없다고 울지 말고

밥 잘 챙겨먹고,

아빠랑 좋은 대화의 시간 되길 바란다.

사랑한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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