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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경찰대학생이 된, 나의 든든한 딸에게

생각이 현실이 되는 삶을 꿈꾸다

by 연강작가 Feb 16. 2025


나의 비타민, 딸 2호에게

"원하는 것을 즉시 얻으면 필요한 것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며 수익률 감소의 법칙에 따라 모든 혜택은 허공으로 증발한다. 무엇이든 감사할 수 있으려면 갈망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인생의 의미,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얼마 전에 너의 스무 살 생일이었잖아.

독일에서 나이의 끝자리에 '0'은 큰 의미가 있고, 화려하게 기념하잖니?

열 살 때와 지금 스무 살.

벌써 두 번의 '0'숫자 생일을 지나게 되었구나.

하필 이 생일에는 뭐가 그리 바쁜지 특별하게 생일상을 차려주지 못한 것 같구나.


너의 열 살 생일에는 엄마가 한국을 방문해서 전화기 너머로만 생일을 축하했었지. 이번에는 엄마가 쓴 희곡의 연극공연 준비로 정신이 없었구나. 그나마 한국에서 온 사촌 예니언니와 함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으니 퉁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괜찮나?

아참, 내가 생일선물은 해줬던가? 얼마 안 지났는데 기억이 안 나네.ㅠ


그러면서 너의 지난 스무 해를 엄마 관점에서 찬찬히 생각해봤어.


변명 같지만, 너를 가졌을 때 엄마는 직장에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단다.


잡지를 내는 과정에서 원고 관련 피해자 소송건으로, 당시 편집장으로서 책임자인 엄마가 수습하느라 힘들었어. 결국 회사측과 고소자와 합의를 거쳐 잘 해결되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너를 임신한 상태로 동분서주했지.


지금이야 고백하건대, 너가 내 안에 작은 씨앗처럼 찾아 왔을 때,  엄마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일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지. 나중에 너가 더 성장하게 되면 자세한 이야기를 글이 아닌 말로 들려주마. 지금 공개적으로 하기엔 좀 이른감이 있다.


네가 세상으로 나올 때가 다 되었을 때, 아빠가 미국 출장 중이어서 홀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단다. 물론 나의 원가족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아빠가 계셨으면 했어.


나의 기도를 하나님과 너도 화답했는지,

다행히도 너는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에 세상으로 나와주었잖니?


물론 아빠가 시차 때문에, 내가 진통으로 고생할 때 옆에서 코를 골고 잤지만 말이야. 어쨌든 아빠가 너의 탯줄을 잘랐으니 그것으로 감사한 일이지.


게다가 예정일 전부터 감기가 심하게 들어 코도 막히고 숨도 못 쉰 힘든 상황이었어. 그러기에 난산이었지. 혹시 네가 잘 못 될까봐 엄마는 두렵고 무서웠다. 너도 엄마의 마음을 읽은 것 같았어. 그래서 그렇게 건강하게 엄마 품으로 왔었잖아.  


아빠가 너에게 걸핏하면 말씀하시지? 너를 낳다가 고생한 엄마를 위해 효도해야 한다고...


헤헤... 그래서일까? 우리 딸2호는 엄마의 비타민이 되어주었잖아. 그냥 너만 보면 미소가 지어지고, 충만해지는지... 엄청난 난산이었지만 그후에 열매는 아주아주 달고 행복하다. 진짜!


사경을 헤매다 태어난 너는 아주 우량아였어.

3.7kg!!

언니가 2.7kg이었으니 말이야.


엄마의 출산을 도왔던 산부인과 원장님도 너의 머리만 보고는 아들인 줄 착각했대. 분명 초음파 상으로는 딸이었는데 말이야.


너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는데 모유수유원이었어. 당시만 해도 사회 분위기가 모유 권장하는 터라 언니를 모유 수유하지 않는 죄책감에 너 만큼은 꼭 모유를 먹이리라 생각했지. 하지만 수유하라고 새벽마다 깨워대는 도우미들 때문에 엄마 몸은 회복이 안 되더라.  


조금씩 자라면서 너는 뭔가 특별한 부분이 있었어. 보통 아이들이 하는, 기는 줄도 모르고  일어설 생각도 안하고 앉아서 이동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였지. 말도 느렸고...


그 모습을 다른 식구들은  귀엽다고 하는데 엄마는 혹시라도 발육에 문제 있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대학병원 소아과에서 발육 상담도 받으면서 혹시 네가 보통의 아이들과 다를까봐 많이 기도하는 시간이었단다.


그래도 너는 참 사랑스런 아이였어. 집에 들어오면 잘 걷지도 못한 아이가 현관의 신발들을 가지런히 모아놓기도 하고, 5살 무렵에는 백화점 문을 사람을 위해 잡아주기도 하고... 뭔가 남다른 너였다.



 

살이 되던 무렵이었지? 


아빠의 직장 때문에 독일에 오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도 잘 걷지 못한 너를 보며 안타까웠어.  


그래도 때가 되니 걷게 되고, 달리는 것을 보면서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렸어. 새벽마다 너를 위해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하나님이 널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자란 네가 스무 살이 되었다니 엄마는 가슴이 터질 듯이 뛰고 감사할 뿐이네.


어제 밤에 네가 엄마 어깨랑 다리 마사지를 해주었잖아. 엄마가 이곳저곳 쑤시다 하니 덥석 해주겠다고 나서니 고맙기만 하더라. 내가 좋아 입이 벌어져서 그랬잖아.

 

"우리 딸, 왜 이렇게 마사지 잘하지?"

 "엄마, 15년 이상 경력이잖아요. 헤헤"


배시시 웃는 너. 그러고보니 엄마가 골골해서 늘 다리를 주물러달라고 했지? 어릴 때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 종아리를 주물렀는데, 이제는 엄마보다 훨씬 키가 큰 176cm의 아가씨가 되다니.

게다가 손 힘도 무지 세져서 너가 한 번 어깨를 주물러주면 어찌나 시원한지 전문 마사지가 따로 없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면서 괜스리 미안해진다. 엄마가 항상 고마워하고 있는 거 알지? 골골한 엄마라도 엄마가 젤 좋아, 라고 해주는 네가 있어서 행복하다.


힘들게 너를 낳았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넌 기쁨이고 지금은 더 없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구나.


경찰대학에 입학해 공부량이 많아 힘들지? 고등학교 때 엄마가 '네가 젤 잘하는 게 뭐라고 생각해?' 물었을 때 넌 그렇게 대답했어.


 '공감과 경청'이라고 하면서 경찰간부가 되어 독일을 평정하겠다고 했던 너.


게다가 넌 지적감수성과 관찰력, 섬세함, 성실함과 정의감, 가장 중요한 유머까지 겸비했으니 다 된 거지.

네가 독일인들이나 한국인들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이유인 것 같구나.


 엄격한 경찰대학의 커리큘럼 속에서 우왁스런 게르만 아이들과의 사이에서 헤쳐나가는 것을 보면 대견하다.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 비슷한 돈으로 엄마 밥도 사주는 네가 이제는 다 컸구나 싶다. 이제는 경제적으로도 엄마 아빠의 품을 떠난 것 같아 아쉬움도 크구나.


하지만 언제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진 너를 보면 독립적으로 잘 키웠나, 나 자신을 칭찬하게 되네. 그래도 되나?



사랑하는 딸2호야!


너의 대학생활, 특히 준법정신과 틀이 강한 경찰대학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원칙이나 규율을 따르는 것을 종용하지만 그게 무조건 부정적이진 않단다.


 타율성은 때로는 나를 바로잡아주는 제동장치라고 볼 수 있지. 그래도 힘든 시간 속에서 자그나마 자신만의 여유를 찾아보기 바란다.


요즘 아코디언 부는 것에 재미를 붙인 것을 안다. 가끔 기타도 치던데 아주 좋아!!

영화 타이타닉 주제곡을 연습하는 모습도 듣기 좋구나.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을 탐닉하고 터득하는 것도 삶의 여유를 배우는 큰 지혜야.


너는 힘든 산고를 거친 아이기에 무엇보다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야. 알고 있지? 네 존재만으로도 엄마는 힘을 얻는단다.


1800년 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우리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만들어진다'고 말했어.


이건 우주의 진리인 것 같아. 가 상상하고 생각하는 대로 인생은 달라질 거야. 미래에 엄마도 함께 걷고 싶다.

엄마 손도 잡아줘~ 알았지?




P.s

딸2호!


1학기 독일애들 제치고 좋은 성적으로 마친 거 축하한다.

이번주에 리스본 가는 비행기표까지 끊어줘서 넘 고마워. 미리 스포 날리자면, 엄마가 리스본에서 밥은 다 살게. 우리, 맛난 거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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