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 안소니 라자로를 권하며
버스를 탔다.
이어폰을 끼고 안소니 라자로의 음악에 심취했다. 그러다보니 한 정류장 더 가서 내리게 되었다. 늦었는데 이상하게 무덤덤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서일까?. 나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어떤 날은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가다 차고까지 간 적 있다. 책을 읽고 있다가 그만 놓쳐버린 것이다. 칸트가 '에밀'이라는 책을 읽다 평소 나가는 산책시간을 놓쳤다는데 , 칸트와 비교하는 것도 억지스럽지만 그 정도로 과몰입할 때가 있다. 그 당시 험상궂게 생긴 청소하는 아랍계 남자가 나보고 나가라고 해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런 적이 서너 번 있다보니 내가 다니는 지하철 9호선 차고가 그리 낯설지 않다.
버스가 서자, 나와 한뼘 거리 차이로 어떤 독일 아주머니가 먼저 내렸다. 그녀는 밀치듯이 나를 제치고는 잽싸게 한 발을 버스 아래로 내딛었다. 나는 음악에 깊이 감동하고 있었다. 그녀의 육중한 몸이 나를 밀쳐도 온건했다. 평소 같으면 배알이 틀릴 수도 있었는데 한없이 너그러웠다. 음악의 힘이다.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이다 생각했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버스 아래
지구에 착지한 순간이었다.
그녀 옆으로 쌩하니 자전거가 한 대 지나갔다. 자전거와 정면으로 부딪혔으면 상당히 큰 사고가 될 뻔 했다. 아주머니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이어폰 너머로 들려왔다. 하지만 다행히 부딪히진 않은 것 같았다. 내가 먼저 내렸으면 그 비명소리의 주인공은 나였을까? 아니, 음악에 빠져서 어어, 하다 말았을 것 같다.
내가 사는 베를린은 자전거 세상이다.
도시 교통분담률의 20% 가량이 자전거 이용률이다. 그러다보니 자전거 운전자를 위한 법도 잘 정비되어 있다. 법이 잘 구비되어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법의 통제 없이는 힘들다는 의미도 된다. 시민정신을 법으로 규제시켜놓은 이유 또한 그러지 못한 인간들이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보통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아!'라고 하면, 그만큼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자전거 천국인 도시에서 자전거를 탄 이들은 자동차 운전자들의 위협대상이다. 지천에 자전거가 돌출하니 자동차 운전자들의 눈이 사시가 될 정도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동차에서 내려 자전거 운전자가 되면 역지사지가 될까?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모두 자신들의 위치에서만 충실할 뿐이다. 하여튼 베를린에서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에 치여도 자전거가 이긴다.
곧이어 독일 아주머니가 귀가 쩌렁쩌렁하도록 자전거 운전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사람 죽이려고 그래?"
그런 상황에서 평소 같으면 자전거 이용객이 미안해서 쌩 하고 모른 체하고 달려가면 되었다. 사고가 나지 않았으니 뺑소니도 아니다.
그때였다. 자전거 이용객이 갑자기 가던 자전거를 세우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주머니의 앙칼진 소리가 귀에 거슬린 게 분명했다.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흑과 백이 절반 정도 섞인 외형적으로는 외국인 같아 보였다.
"아니, 자전거 도로에서 달릴 뿐인데...나는 제대로 간 거라고!"
그때부터 두 사람의 공방은 이어졌다. 나는 마침 신호등이 대기상태라 그들의 말다툼을 귀를 쫑긋거리며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마치 법원의 판사처럼 들으며 이리저리 저울질해보았다. 말로 쌈박질 잘하는 독일인들이 요즘들어 아주 핏발을 내세우는 경우를 많이 봐온 터라 위태위태한 독일 시민정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육십 대 정도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그동안 쌓인 게 있었는데 소리를 질러대며 퍼붓기 시작했다. 아마도 갱년기 후반기에 들어서 에스트로겐이 극도로 부족한 상태일 수도 있다.
"그래도 사람을 봐가면서 달려야지!"
"여긴 자전거 도로라구요!"
"그래도 사람을 봤어야지. 나 부딪혀서 죽을 뻔 했잖아."
"당신도 버스 내릴 때 옆에도 보고 조심했어야지"
둘의 싸움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 운전자는 독일에서 태어난 게 분명했다. 그의 부모님은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그는 분명 이곳 태생이었다. 독일어 발음과 액센트가 정확했다. 아마도 외국인 발음으로 어눌하게 말했다면 당연히 말다툼은 아주머니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젊은이의 육중한 몸태가 밀릴 기세가 아니어서인지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두 사람 모두 이해가 되긴 했지만, 사실 자전거 운전자가 조금더 배려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을 하던 차였다. 내가 버스 승객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때였다. 독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그도 버스에서 나중에 내린 승객이었던 모양이다.
"버스가 오는 줄 알았으면 조심해야지. 당신이 잘 못 했어!"
자전거 운전자는 그때서야 실실 웃으며 살짝 꼬리를 내리는 양상이었다. 1대1로 할 때는 싸워볼 만하지만 2대1로 붙으면 아무래도 청년이 불리했다.
"나도 버스가 오는 거 보면서
천천히 몰았다구요."
"그래도 사람이 내리는 걸 아니까 멈추든지 해야지. 당신이 잘못이라고"
"오케이, 근데 난 천천히 왔다고"
여전히 청년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때 마지막 한 방이 날아왔다.
"당신, 올 3월부터 법 바뀐 거 몰라?
당신 헬맷 안 썼네. 그거 걸리는 거 몰라? "
중년남자는 금방이라도 신고할 태세다. 나치시대부터 워낙 신고정신이 탁월한 민족이라 충분히 경찰을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전거 탄 청년은 잽싸게 속력을 내어 달렸다. 내가 볼 땐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한 듯 싶었다.
나는 약간 감탄했다. 언제 바뀐 법까지 알아냈담? 상식에 능한 인간이군.
집에 돌아와 정말 자전거관련법이 바뀌었나 찾아보았다. 그런데 법은 만 14세까지 지금까지 헬맷 착용이 권유사항이었는데, 지난 3월부터 의무로 바뀌어 위반하면 벌금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는 14세가 훨씬 넘은 사람이니 법에 저촉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들을 보면서, 어느 한 사람 미안하다 이야기하면 해결될 수 있는데...
끝까지 말로 이겨가며 시간을 낭비하는 모습이 과연 독일스럽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의 공방 사이에 과감하게 끼어들어 질서정리를 해주는 중년남자도 용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전거 탄 청년이 그저 뒤돌아보지만 않아도 아주머니는 그저 개똥 밟았다 생각하고 욕하며 갔을 것이다. 물론 다쳤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요즘 들어 독일 사람들의 분노조절장애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모두가 각박한 세상을 살다보니 여유가 없어진 탓이다. 누가 툭, 하고 건드리면 빵,하고 터트릴 것만 같다. 불안하다.
이럴 때 '안소니 라자로'의 노래를 같이 듣고싶다.
지금 좀 뭉개는 날을 보내는 이가 있다면 지금 이 남자의 감미로운 음색을 들어보자.
분노가 조금 수그리 해질 것이다.
P.s
요즘 벨린 날씨는 늦가을입니다.
벌써 여름이 떠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