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부동산 계약서를 위하여
나는 좁은 골목에 가게들로 빼곡히 채워진 번화가 한가운데 건물 맨 위 층에 살고 있다. 처음 이사 올 당시만 해도 그리 번잡한 동네는 아니었지만 경쟁이라도 하듯 새로운 가게들은 앞다투어 촘촘히 골목을 채워나갔다. 낡은 건물들은 부서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매일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태어났으며 문을 닫는 가게와 새롭게 생기는 가게들의 암과 명은 하루에도 몇 차례 목격된다. 동네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무섭게 변태를 반복했고, 나는 그 한가운데에 불안한 일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전에 살던 집은 오래된 주택이라 외풍이 세서 석유난로를 켜야만 했다. 겨울이면 매달 석유를 배달시켰는데 난로를 켜고, 끄고, 환기를 시키고, 석유를 옮기는 일은 꽤나 번잡한 일이었다. 그나마 난로를 켜고 있는 순간만은 따뜻했지만 끄는 순간 한겨울 한파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오래된 집의 나무 창틀이 다 틀어져 창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굳이 환기를 시키지 않아도 환기가 된다는 장점 외에 그다지 좋은 게 없었다.
운치가 있는 빈티지한 집은 살기에 힘들다는 사실을 몸소 깨우친 다음 선택한 보금자리는 신축 빌딩 맨 위층인 지금의 집이었다. 거칠고 오래된 나무 창문 집에서 살다가 최신식 하이 새시가 탑재된 신축 빌딩에 살게 되니 삶의 질이 많이 달라졌다. 깨끗한 백색과 뉴트럴한 밝은 나무색이 어우러져 있는 고급 하이 새시는 남방뿐만 아니라 소음까지 완벽히 차단했다. 그뿐만 아니라 바깥에서는 열 수 없는 최신식이라 도둑이 들 걱정도 없었다. 가끔씩 지인들이 놀러 오면 우리 집 고급 하이 새시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곤 했다.
이사를 온 뒤 봄이 시작될 무렵, 집 바로 옆에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전선이 걸려있는 전봇대 사이에 위태로운 까치 식구가 이사를 했다. 까치는 아마 알을 낳았을 테고 주변 이웃이 어떤지 정찰이라도 하듯 주변을 배회했다. 날이 좋아 창문을 열여 둔 어느 날, 까치는 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그는 상위 포식자인 고양이를 향해 위협적인 날갯짓과 울음소리로 맹렬하게 경계했다. '고양이는 절대 너희 집에 갈 수 없어. 아니, 못가!'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기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고양이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공격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까치의 울부짖음은 하루 종일 계속될 뿐이었다. 까치는 창문을 열 때마다 수시로 공격적으로 '깍깍' 되었고 방충망에 머리를 박으며 위협한 적도 있다. 맑은 날씨에도 문을 닫고 살아야 했다. 고급 하이 새시 덕분에 까치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가끔씩 창문 밖으로 보이는 까치의 불안한 모습은 안타까울 뿐이었다. 절대로 그들의 전봇대로 넘어갈 수 없는 구조와 현대사회의 집고양이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까치는 조금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까.
시끄러운 이웃은 밤낮이 바뀐 내게는 그다지 좋은 이웃은 아니었고 매일 아침, 까치의 절규에 가까운 ‘깍깍’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까치 가족은 어찌어찌해서 계절을 보내고 떠났지만 내년에는 다른 곳에 집 짓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요즘에는 까치 사냥꾼이 있데 벌이가 괜찮다는데”
친구에게 까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니 요즘에는 까치가 유해 동물로 지정이 돼서 허가증이 있는 사람이 사냥을 해오면 나라에서 포상금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시의 까치가 전봇대에 집을 지어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와 잦은 정전 때문이란다.
까치는 아마 내가 이사 오기도 전, 그러니까 이 동네가 생기기 전부터 오랫동안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았을 텐데. 부동산 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고향에 접근 금지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다행히 나는 몇 년간은 이곳에 살 수 있는 계약서가 있어서 지금은 안전하게 살고 있지만 나 역시 벌써부터 내년 계약 만기에 또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걱정을 시작했다. 매년 오르는 집세. 난 또 하이 새시가 있는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을까?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있긴 할까? 문득 까치가족은 지금 어디에 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을지가 궁금했다. 살아가기 위해 매 순간 이토록 불안해야 한다는 점에서 까치와 내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겁 많은 집고양이가 아닌 진짜 사냥꾼들로부터는 안전하길,
다음 생애엔 우리 둘 다 부동산 소유 계약서를 들고 태어나길 조용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