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내는 내가 아는 지구인 중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과장의 표현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동면을 앞둔 날다람쥐처럼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날렵하게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신기한 것, 재미있는 것들을 부지런히 모아 담는 타입의 사람인 것이다.
그녀와 달리 나는 나무늘보과의 사람으로 날다람쥐와는 극명히 다른 습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 많은 곳으로 외출하는 일은 딱 질색. 일정기간 동안의 행동반경을 측정하여 행동반경이 좁은 순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지역 대표쯤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웬만하면 집 주변을 잘 벗어나지 않는 정적인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스타일의 두 사람이 만났으므로 연애 초반의 우리는 함께 보내는 주말을 위해 자신과 반대되는 습성에 부합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모르는 사람 만나는 일을 극도로 꺼려했던 나는 그녀의 친구들 (대체로 그녀와 비슷한 습성을 가진) 모임에 따라나가 필사적으로 대화에 참여하였고, 사람 많은 곳은 질색이었지만 함께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에 찾아가 수많은 소녀팬들과 함께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하였다.
물론 나만이 이런 노력을 했던 것은 아니다. 폭주한 외부활동으로 인해 내가 지쳐갈 때쯤에는, 그녀가 나의 생활 행태에 동참하여 정적인 주말을 함께 해주었다.
조용하고 사람이 적은 카페를 찾아가 함께 책을 읽거나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리는 식이었다.
그 당시 '활자 알레르기'가 있다고 주장했던 그녀에게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독서 시간은 아마도 견디기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경제학 용어 중 '샤워실의 바보'라는 말이 있다.
샤워를 할 때 물의 온도를 맞추려고 꼭지를 급하게 돌리다가 너무 뜨거운 물이 나오거나 차가운 물이 나와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경제학자들은 시장개입이 너무 과하거나 급작스러우면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샤워실의 바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연애 초반 우리 부부가 함께 보낸 주말의 모습은 샤워실의 바보를 닮아 있었다.
반대의 성격을 가진 서로에게 빨리 맞춰야 한다는 배려, 혹은 조급함으로 인해 자신의 성격과는 다른 패턴의 생활을 급작스럽게 시도하였고 그로 인해 지쳐가기도 했던 것이다.
바보 같았던 연애시절을 지나 어엿한 5년 차 부부가 된 우리의 주말은 이제야 적절한 온도를 찾은 것처럼 한결 평화롭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함께 적당히 산책을 하고 오후에는 조용한 카페를 찾아 각자의 일에 몰두한다.
때로는 각자가 고른 단편영화를 연속으로 함께 감상하기도 하고, 영감을 얻은 아티클을 공유하며 서로의 취향과 생각을 배워나가고 있다.
샤워실의 바보와 같은 경제정책도,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부부의 주말도 극적 변화를 위한 성급함보다는 시간을 두고 조금씩 보조를 맞춰나가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게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가장 적절한 온도를 맞이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