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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구십칠 Feb 07. 2021

그래서 메디치 효과를 노려 보기로 했습니다

 

 흡연실에서 동기들과 부장님 욕을 하던 파릇파릇한 신입사원은 어느덧 꼰대라는 호칭이 찰떡같이 어울리는 아저씨로 성장하였다.

흡연실 퀘퀘한 연기 속에서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업무지시와 유머 코드를 잘근잘근 씹으며 짧은 휴식시간을 보내었던 10여 년 전의 나. 그 당시엔 부장님을 나와 다른 종족쯤으로 생각했었고 그와 나의 연결고리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에 나 역시 그와 같은 포지션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고 이제는 족히 띠동갑 차이가 나는 팀원들과 함께 합을 맞추어 일해야 하는 연차가 되었다.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팀원으로서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하는 주체들이지만 아주 가끔은 나에겐 당연한 일들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팀원들의 표정을 살피며 '아차차 내가 또 꼰대 티를 내었나 보군' 하며 주춤하곤 한다.


10여 년 전의 부장님과 지금의 나.

입장은 크게 다를 것 없지만 그래도 조금 다행인 점은 젊은 사원들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나마 엿볼 수 있는 훌륭한 교보재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다.

서점에 가면 'Z세대'로 시작하는 업무지침서나 자기 계발서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SNS를 휘휘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말 하는 당신은 꼰대'라며 친절하게 가이드를 주는 컨텐츠들이 넘쳐난다.


'명..령..문..으로 말하지..않는다'

'먼..저..말하기..전에..조언..하지..않는다'

'추억팔이..를 하지..않는다'


오늘도 '꼰대가 되지 않는 7원칙' 같은 컨텐츠를 꼼꼼히 읽으며 마음속 가이드라인을 점검하는 나. 조금 서글픈 심정과 함께 과연 이런 금지사항들만이 유일한 해결책일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해서는 안 되는 것' 말고도 '어떻게 함께 일하면 더 좋을지'를 골몰하다 보니 문득 '메디치 효과'가 떠오른다.


이질적인 분야가 서로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고 창조적 결과물로 이어지는 것을 '메디치 효과'라고 한다.

과거 이탈리아 피렌체에 철학, 과학, 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던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같이 오늘날 잘 알려진 예술가들도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모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영역의 벽을 넘어 활발하게 교류하였고 결국 르네상스 도래에 큰 공헌을 하게 되었다.


메디치 효과는 멀고 먼 이탈리아에서 아주 오래전 벌어진 일에서 기인했지만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전공분야의 팀원들이 만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창출하기도 하고 상이한 장르의 음악이 만나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청각적 충격을 주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항상 새로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아이디어 회의가 일상적 업무이다. 이런 아이디어 회의가 매일 이어지다 보면 각자의 아이디어는 고갈되어 버리고, 나오는 이야기들은 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것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생각의 파편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

누군가 무심코 던졌던 '새롭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은 아이디어'와 또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했던 '현실적이지만 새롭진 않은 아이디어'를 조합하다 보면 1+1=2 이상의 아이디어로 재탄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재발견과 조합의 과정은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꼰대..아니 고연차의 직원에게 어울리는 역할이다.


살아온 배경과 탐닉해온 문화가 다르므로 같은 회사 안에 있어도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긍정적인 점은 과거에 비해 서로 다른 생각을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많아졌고, 많아져야만 하는 사회적 공기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나는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10년 차이나는 후배의 생각을 오롯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말하기보다 경청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배척하기보다 조합하여 시너지를 만드는 역할을 계속해서 제련하려고 한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노력이 모든 세대가 공감하는 메가히트 컨텐츠를 탄생시키는 발화점이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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