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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구십칠 Nov 11. 2020

아버지의 양장피와 립스틱 효과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애석하게도 썩 멋지지는 않다.

어린 눈으로 바라본 아버지는 무뚝뚝한 표정의 남자, 어머니에게 친절하지 않은 남자, 그리고 늘 술을 가까이하는 남자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부터 나는 그런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때로는 적개심을 품기도 하며 슬금슬금 피해왔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그를 더 고립시켰을지도 모르겠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해가 어스름해질 무렵이면 아버지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처럼 늘 소주를 찾으셨다.

초록색 유리병에서 투명한 액체를 졸졸졸 따라서는 그대로 입에 털어 넣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안주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어린 나에게는 붉어진 얼굴로 웅얼거리는 아버지의 이야기나 물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소주보다는 술과 함께 놓여 있는 안주가 더 큰 관심사였다.


그 시절의 아버지는 일관성을 중요시하는 남자였는지 일정기간 동안은 늘 같은 안주와 함께 했다. 공표된 행동지침처럼 하나의 안주가 정해지면 한동안은 늘 같은 안주와 함께 저녁 의식을 치르셨던 것이다.

삼겹살을 안주삼아 몇 주, 두부김치를 안주삼아 또 몇 주가 이어졌고 삶은 계란을 안주삼아 몇 개월, 건빵 몇 개를 안주삼아 드셨던 기간이 반년 정도 이어지는 식이었다.


아버지는 두려웠지만 아버지의 술안주에는 깊은 관심을 가졌던 어린 아들은 그의 곁에 슬쩍 누워 그와 보조를 맞춰 술안주를 슬쩍슬쩍 집어 먹었다.

돌이켜보면 매일 밤 홀로 술을 마시는 아버지에게 의도하지 않게 술친구가 되어 드렸던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의 술안주 중 단연 기억에 남는 안주는 양장피였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아버지는 중국집에서 배달시킨 양장피와 함께 소주를 드셨다.

처음 양장피라는 것을 보았을 때는 꽤 충격적이었다. 새우며 고기며 지단이며 알록달록한 재료들이 열을 맞춰 가지런히 놓여있고 그 당시에는 정말 바다에 사는 해파리인 줄 알았던 해파리냉채가 중앙에 놓여 있던 화려한 요리.

그 모습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기에도 그동안의 안주들과는 격이 달랐다.


이것저것 재료들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안에 넣으면 상상했던 맛과는 달리 매운 겨자 향이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새우맛을 보고 싶어서, 고기가 먹고 싶어서 젓가락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어렸던 것이 잔상처럼 남아있다.


이제는 맛집이라고 소문난 중국집을 찾아 양장피와 소주의 맛을 즐길 줄 아는 나이가 되고 나니 그 시절 아버지의 술안주와 경제사정이 일관된 그래프처럼 보인다. 그 시절 안주들은 아버지의 지갑 사정을, 사업 상황을, 마음의 여유를 반영한 상징적 지표들이었던 것이다.


립스틱 효과. 과거 미국의 대공황 시절, 경제가 어려워져 소비심리가 얼어붙었음에도 불구하고 립스틱 판매량은 오르는 현상에서 탄생한 경제학 용어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비싼 명품은 못 사더라도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기호품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썩 좋지 못한 사업수완, IMF, 자기만 바라보는 가족들. 한 번도 제대로 된 호황기를 맞이해 본 적 없는 아버지에게 양장피는 마치 대공황 시절의 립스틱처럼 움츠러드는 마음을 달래주는 작은 사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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